명료한 방들의 표지

임시 전문 열람

명료한 방들

통치의 부드러움

Pab San

미발표 원본 원고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지 않은 미발표 원고입니다. 이 작품은 저작권으로 보호되며 SGDL의 작품 보호 서비스 HUGO를 통해 법적 보호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 임시 HTML판은 출판사를 찾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검토를 위해 일시적으로 제공됩니다. 저자의 서면 허가 없이 전체 또는 일부의 복제, 추출, 각색, 배포, 2차 색인화를 할 수 없습니다.

번역 안내

이 글은 프랑스어로 쓰인 미발표 원고의 편집 품질 완역본입니다. 프랑스어 원작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으며 출판사를 찾고 있습니다. 이 열람판은 전문 독자가 한국어로 작품의 목소리와 리듬, 서사의 흐름을 평가할 수 있도록 마련했습니다. 향후 출판사의 제작 방침에 따른 조정이 더해질 수 있으나, 이 판본은 한국어로 완결된 하나의 문학 작품이 되도록 다듬었습니다.

제1부

바라보는 평온

제1장

7번 방

헌법이 내림나장조로 연주된 아침


헌법이 내림나장조로 연주된 그 아침, 항구 하나와 법원 하나와 산부인과 하나가 서로 모순되기를 멈췄다.

6시 12분, 이리아 다노는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확신과 함께 7번 방으로 들어섰다.

생나제르 항구에서는 예인선 세 척이 두 시간째 부두에 묶여 있었다. 낭트 행정법원은 새벽녘, 밤사이 내려진 도지사의 징발 명령을 정지시켰다. 변전소 화재 이후 비상 전력에 의지하고 있던 지역 공동 산부인과는 여섯 시간, 어쩌면 일곱 시간은 더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통보해 왔다.

산부인과를 버티게 해 줄 경유는 바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유조선은 먼바다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예인선 없이는 항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리아는 코르크 벽에 가방을 기대 놓고 방을 둘러보았다.

7번 방에는 성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창문 없이 천장이 낮은 흰 방. 등받이가 곧은 의자 열세 개와 소리 없는 시계, 정수기 하나, 그리고 중앙의 의도적인 공백. 행정기관은 마침내 그곳을 ‘중립 지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명료한 방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불렀다. ‘구멍.’

참가자는 열세 명. 규정은 단 한 명의 가감도 허용하지 않았다.

당직 판사. 항만 부소장. 해상 헌병대 지휘관. 산부인과 당직 책임자. 눈이 충혈된 항만 관제사. 도청 에너지 담당 간부. 기술 담당자 둘. 도지사 비서실에서 온 남자.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 모두 그날 아침, 결정이 부러지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선택된 이들이었다.

8년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일부 위기 상황의 조정을 명료한 방을 거치지 않고 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어디서나 모든 일에 적용되는 규칙은 아니었다. 통상적인 반사작용이 헛돌고, 부처별 이해관계가 굳어지며, 법과 돌봄과 질서와 물류가 서로를 물어뜯는 방식으로밖에 대화하지 못할 때만 적용됐다.

공식적인 목적은 단순했다. 결정하기 전에 소음을 조금 덜어 내는 것.

실제 목적은 사람마다 달랐다.

가장 정직한 이들은 마음이 처음 눈에 띈 번뜩이는 해법으로 달려드는 것을 막고 싶어 했다. 가장 야심 찬 이들은 누구도 감히 눈멀었다고 부를 수 없는 권위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리아는 명료한 방 관리청에서 일했다. 선임 계약직.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먼저 들어올 만큼은 조직에 편입되어 있고, 회의가 잘못됐을 때 퓨즈로 쓰일 만큼은 쉽게 옮겨질 수 있는 자리. 조직도에 적힌 정확한 직함은 건조한 두 줄이었다. ‘주의 무결성 평가관.’

현실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현실에서는 이리아가 방이 거짓말하는 순간을 감지한다고 했다.

이리아는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덜어 내는 것


첫 아홉 분 동안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경건해서도,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너무 일찍 모든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들을 가라앉혀야 했다. 자신이 옳고 싶은 욕망, 양보한 부서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책임을 제대로 짊어지지 못한다는 수치심, 마침내 절차로 상대를 옭아맸을 때의 자그마한 쾌감.

이리아는 좌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것을 지켰다.

그녀는 호흡을 살폈다. 턱을. 어깨를. 허벅지 위에 지나치게 단정히 올려놓은 손을. 평온을 가장하며 굳어지는 등을. 남들에게 보여 줄 만한 진실을 꾸미기 시작하는 얼굴을.

그녀가 처음으로 포착한 사람은 테시에였다. 비서실 부실장, 마흔다섯 살, 이 시간치고 지나치게 말끔한 회색 정장. 길고 규칙적이며 거의 모범적으로 보이는 그의 호흡은 정작 아무것도 실어 나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기 초상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두의 말을 들을 만큼 열린 사람, 그런 다음 결단을 내릴 만큼 단호한 사람.

이리아는 아무 설명 없이 수첩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그의 오른쪽에 앉은 항만 관제사 모드 드렌에게는 그런 우아함이 없었다.

당직용 스웨터 차림에 대충 다시 묶은 머리, 밤샘으로 움푹 팬 눈. 오른쪽 다리는 거의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 반면 두 손은 아주 고요했다. 이리아는 그녀를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다른 것이었다. 버텨야 하므로 아직 버티고 있지만, 온몸은 이미 그 대가를 치르기 시작한 여자.

걷기는 6시 23분에 시작됐다.

열세 사람은 일어나 서로를 보지 않은 채 같은 방향으로, 바닥에 그어진 어두운 타원 위를 돌았다. 코르크가 그들의 발걸음을 소리 없이 받아냈다. 판사는 너무 빨리 리듬을 찾았다. 이미 무엇을 보여 줄지 알고 있었다. 산부인과 책임자는 너무 늦게 찾았다. 무언가를 연기하기에는 잠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리아는 벽에 남았다.

그녀의 일은 그들의 평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이미 평온을 이용해 아무것에도 다치지 않으려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돌 때 테시에가 턱을 아주 조금 치켜들었다. 미세한 동작이었다. 다른 누구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리아에게 그 의미는 분명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이미 방을 나갔다. 벌써 그 이후에 가 있었다. 기자회견에. 장관에게 올릴 보고서에. 도청이 어떻게 냉정을 유지했는지 그럴듯하게 들려줄 방식에.

그녀는 예정된 지점에서 걷기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물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자신이 무엇을 잃고 싶지 않은지 아주 정확히 아는 분은 누구죠?”

절차서에는 없는 질문이었다.

판사가 곁눈질로 그녀를 보았다. 테시에도 그랬다.

모드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항로요.”

산부인과 책임자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는 신생아들.”

판사는 두 박자 늦게 대답했다.

“명령의 적법성입니다.”

이리아가 말했다.

“좋아요. 이제 다시 시작하죠. 다만 이번에는, 자기 문장을 믿기 전에 그 문장 속의 자신을 조금쯤 잃어 보세요.”

판사는 하마터면 항의할 뻔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오래 붙든 음


그들이 다시 앉았을 때 방은 힘주기를 멈췄다.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산부인과 책임자가 먼저 말했다.

“이미 금이 간 그릇처럼 버티라고들 해요.”

아무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미지는 모두의 눈앞에 보이면서도 아직은 쓸 수 없는 채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판사가 눈을 내리깔았다.

모드는 입을 세게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방 안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릇이 아니에요. 음이에요. 한 음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거죠. 그래서 모든 게 뒤틀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테시에의 몸에 짜증이 미세하게 스쳤다.

“음악 용어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군요…….”

이리아가 그의 말을 끊었다.

“끝까지 듣죠.”

모드는 두 손을 허벅지 위에 평평하게 얹었다. 그 동작만으로라도 아직 미끄러지는 세상을 붙잡을 수 있다는 듯이.

“법원의 정지 결정을 너무 오래 붙들어서 그 결정이 더는 순수할 수 없게 됐어요. 항구를 너무 오래 멈춰 세워서 그 정지가 더는 신중할 수 없게 됐고요. 산부인과를 비상 전력에 너무 오래 매달아 둬서 더는 안전할 수 없게 됐어요. 우리는 저마다 옳은 음을, 자기 몫의 음을 지키려 해요. 이미 틀린 음이 되었는데도.”

판사는 처음으로 모드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정지 결정을 그대로 지키면, 판사님은 너무 오래 옳게 될 거라는 말이에요.”

이어진 침묵은 처음의 침묵과 전혀 달랐다. 평온하지도 고결하지도 않았다. 무게가 자리를 옮겼고, 책임은 다시 무거워졌다.

해상 헌병대 지휘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쉽게 말하면요?”

이리아는 모드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모드가 말했다.

“쉽게 말해서, 이제 세 가지 문제를 따로 다루는 게 아니에요. 하나의 순서를 다루는 거예요.”

그녀는 판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지 결정을 철회하세요. 두 시간 동안만, 그 이상은 안 돼요.”

이어서 테시에를 향했다.

“도청은 그 시간대에 한해서만 예인선을 징발하고요.”

그리고 산부인과 책임자에게 말했다.

“첫 수송대는 항구가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요. 유조선이 수로 입구를 통과하고 저장 탱크가 열리는 즉시 출발하는 거예요.”

판사는 꼬박 5초 동안 침묵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는 있겠군요.”

테시에는 자신을 거치지 않고 해법이 태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목소리로 드러나기 전에 눈빛에서 먼저 보였다.

“법적으로 우아한 방법은 아닙니다.”

산부인과 책임자는 생명 경보 장치에서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점잖은 논평을 내놓은 남자를 바라보듯 그를 보았다.

“나도 우아하진 않아요.”

방은 전과 다른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더 나은 방식은 아니었다. 더 진실한 방식이었다.

6시 58분, 판사는 정지 결정의 한시적 철회 문서에 서명했다.

7시 4분, 예인선들에 출항 명령이 떨어졌다.

7시 11분, 도선사가 유조선에 올랐다.

7시 18분, 산부인과는 우선 재보급에 대한 서면 확인을 받았다.

7시 31분, 부처 합동 위기대응실은 이를 성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말은 빠르게 퍼졌다. 너무 빠르게.

되풀이하려는 것


8시 9분, 내무부 보좌관이 방으로 전화를 걸었다. 축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회의 기록과 퇴실 기록지, 전환이 일어난 정확한 시각, 참석자들의 신원, 매듭을 풀어낸 표현을 요구했다.

이리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무엇이 시작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인정이 아니었다. 반복이었다.

복도에서는 산부인과 책임자가 지나치게 크게 웅웅거리는 커피 자판기에 기대선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모드는 순전히 오기로 아직 두 다리로 버티고 있었다. 판사는 방금 자신이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에 손을 댄 사람 특유의 창백한 목소리로 벌써 법원 사무국에 전화하고 있었다. 테시에는 행정가의 얼굴을 되찾은 뒤였다.

그가 이리아에게 다가왔다.

“보셨죠? 효과가 있다면 체계화해야 합니다.”

이리아는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평온했다. 목소리도 그랬다. 그는 참사를 피한 것이 기쁜 게 아니었다. 도구 하나가 태어나는 것을 목격해 기쁜 것이었다.

“아니요.”

테시에가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이리아는 그의 뒤로 천천히 저절로 닫히는 7번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도어클로저가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이제 방은 비어 있었다. 의자 열세 개. 텅 빈 중앙. 아직 조금 달라진 공기.

“효과가 있을 때야말로 경계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테시에가 거의 미소 지었다.

“반대파다운 말이군요.”

“아니요.”

그녀는 수첩을 집어 가방에 넣고 덧붙였다.

“업무를 아는 사람의 말이죠.”

바깥 항구에서는 예인선들이 출항해 있었다. 낭트에서는 법원이 잠시 비틀린 적법성 속에서도 여전히 서 있었다. 그리고 어느 당직 산부인과에서는 공법에 아무것도 요구한 적 없는 아이들이 다른 모든 아이와 똑같이 정치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이 세상에 계속 도착하고 있었다.

9시 3분, ‘음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장관 비서실까지 올라갔다.

11시 20분, 누군가 처음으로 ‘내림나장조 헌법’을 입에 올렸다.

12시 13분, 이리아는 파리 출석 통보를 받았다.

문구는 이랬다.

‘출석 필수. 절차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평가.’

그녀는 두 번 읽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넣어 두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듣는다는 데 있지 않았다. 이 나라가 다시 해 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문제가 시작됐다.

제2장

소음

최초의 거짓 요약


14시 22분, 파리행 고속열차 안에서 이리아는 그날 아침에 관한 최초의 거짓 요약이 휴대전화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모르는 보좌관이 보낸 메시지였다.

‘항만 및 보건 사안에 관한 명료한 방의 탁월한 성과. 기관 관계자들 사이의 합리적 합의 회복.’

이리아는 다시 읽고 화면을 잠갔다.

산부인과는 ‘보건 사안’이 아니었다. 한 여자가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는 신생아들과 언제 끊길지 모르는 비상 전력 곁에서 여섯 시간을 보낸 뒤 커피 자판기에 기대 울었다. 항구는 ‘항만 사안’이 아니었다. 모드 드렌은 탈진에 맞선 순전한 오기로 서 있었다. 합리적 합의라는 것은 세 사람이 올바르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를 그만두었을 때 비로소 시작됐다.

객차가 가볍게 떨렸다.

두 줄 앞에 앉은 아이가 작은 숟가락으로 빈 주스병을 두드리고 있었다. 엄마가 숟가락을 빼앗자 아이는 손톱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리아는 2초 동안 눈을 감았다.

낭트를 떠난 뒤로 휴대전화는 쉬지 않았다. 관리청, 내무부, 발신번호 표시 제한 전화, 벌써 기자 둘. 테시에가 보낸 지나치게 단정하고 짧은 메시지도 있었다.

‘파리에서는 사실만 말씀하십시오.’

이리아는 답하지 않았다.

열차는 눈에 보이는 무엇도 적시지 않으면서 유리창 전체에 사무실 같은 피로를 입히는 잿빛 비를 뚫고 달렸다. 이리아는 생나제르에서부터 수첩을 무릎 위에 올려 둔 채였다. 다시 읽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7번 방은 온전한 채 그녀의 몸 안에 남아 있었다. 코르크와, 살짝 옮겨진 공기와, 자신이 본 것으로 출세할 만한 언어를 갖지 못한 당직 여자의 입에서 나온 정확한 문장까지.

검표원이 지나가며 물었다.

“몽파르나스까지 가십니까?”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17시부터 목적지는 더 이상 파리가 아니라 그날 아침을 서술할 언어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4B 회의실


16시 50분, 정부 사무총국 직원이 바렌가 별관 건물의 창문 없는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방 이름은 4B였다.

회색 카펫. 물병 세 개. 이미 켜져 있는 벽면 스크린. 이동식 탁자 위에 줄지어 놓인 붉은 서류철. 권력 가까이 다가간 모든 조정 회의실에 끝내 배게 되는, 오래 끓인 커피와 깨끗한 냉방 장치의 희미한 냄새.

네 사람이 있었다. 이리아가 거의 모르는 명료한 방 관리청의 보고관. 선례 하나가 너무 빨리 판례로 굳는 것을 막는 대가로 급여를 받는 사람 특유의 꼼꼼한 불신을 품은 내무부 법률가. 평온한 얼굴로 펜을 준비한 총리실 홍보 담당 여자. 그리고 총리 산하 국가조정국 부국장 에르베 마레스코.

아마 예순 살쯤. 키가 크고 마른 데다 과장된 몸짓이 없었다. 눈에 띄려고 조금도 애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류의 남자였다. 재킷은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셔츠 소매 단추는 풀지 않았다. 앞에는 노트북 대신 흰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리아가 들어서자 그가 일어났다.

“기한을 맞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기한이라는 것이 이미 여러 사람의 몸을 가로지르고 난 뒤 얼마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아는 듯했다.

이리아는 자리에 앉았다.

총리실 여자가 말했다.

“무엇이 전환을 가능하게 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마레스코는 동료를 보지 않았다.

이리아를 바라보았다.

“방이 거짓말하기 시작했다고 알아차린 순간부터 말씀해 주시죠.”

그 말은 적어도 이리아의 눈길을 들게 했다.

그는 방법론의 효과도, 집단의 정렬도 말하지 않았다. ‘방이 거짓말하기 시작했을 때’라고 했다.

이리아는 닫힌 수첩을 앞에 놓았다.

“그러기 전에 각자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부터 짚어야 합니다.”

법률가는 벌써 펜을 들었다.

“말씀하시죠.”

그녀는 꾸미지 않고 되짚었다. 항로. 신생아들. 명령의 적법성. 이어서 걷기, 호흡, 움직이지 않고 이미 밖으로 나가 버린 테시에, 일부 자세에 깃든 지나친 순수함, 다른 이들에게 깃든 진짜 피로.

모드의 이름을 말하자 마레스코가 물었다.

“직책은요?”

“항만 관제사입니다.”

“피로 상태는?”

“극심했습니다.”

“그런데도 발언하게 두었습니까?”

이리아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네.”

법률가가 고개를 들었다.

마치 그 대답이 덜 자명할 수도 있었다는 듯이.

마레스코는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계속하시죠.”

평화가 아니다


모드의 말에 이르자 몇 초 동안 아무도 필기하지 않았다.

‘한 음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거예요.’

이리아는 연기하지 않고 그 말을 되풀이했다.

마침내 법률가가 물었다.

“명료한 방에서는 정확히 무엇을 덜어 내는 겁니까?”

그는 거의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 처음부터 또 하나의 전례 의식을 떠먹이려 한다고 의심해 온 듯했다.

이리아가 너무 빨리 대답했다.

“갈등은 아닙니다.”

그러고는 말을 고쳤다.

“두려움도 아니고요. 이해관계조차 아닙니다.”

총리실 여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뭐죠?”

이리아는 탁자 한가운데 놓인 물병을 바라보았다.

그 옆의 유리잔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것처럼 깨끗했다.

“각자가 자신의 형상을 구하는 데 쓰는 시간입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계속했다.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해법만 방어하지 않습니다. 자기 직무의 올바른 이미지를 방어하죠. 판사는 법이 비틀리는 걸 방치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도지사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요. 의료인은 부족한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더 이상 상황을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신이 계속해서 어떤 사람으로 남으려 애쓰는지를 바라보게 되죠.”

법률가가 말했다.

“그걸 소음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아니요.”

이리아는 한 박자 기다렸다.

“소음이라고 해도 아직 지나치게 말끔합니다.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 두죠.”

마레스코가 마침내 펜을 들었다.

“그렇다면 평온이 그저 더 세련되게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총리실 여자가 쓰기를 멈췄다.

그 질문은 방을 발가벗겼다.

이리아는 턱을 아주 조금 치켜들던 테시에를 떠올렸다.

반대로 자신의 문장이 버티다가 물러섰던 판사도 떠올렸다.

“누군가 더는 아무것에도 다치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평온이 아닙니다. 윤이 나게 닦아 놓은 갑옷이죠.”

법률가는 거의 짜증처럼 보이는 몸짓을 했다.

“실무에 적용하기는 어렵겠군요.”

“아니요.”

이리아가 덧붙였다.

“오히려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마레스코는 손가락 사이에서 천천히 펜을 굴렸다.

“다시 표현해 보십시오.”

이번에는 시간을 들였다.

“제대로 된 명료한 방은 합의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거짓말하기를 더 어렵게 만들죠. 결정은 그다음에야 가능합니다.”

총리실 여자는 그 말을 전부 받아 적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리아는 자신이 싫어하는 오래된 충동이 솟는 것을 느꼈다.

아직 두려움은 아니었다. 짧고, 거의 수치스러운 자부심에 가까웠다.

이 방에서 나온 정확한 말 하나가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아 자신이 갈 수 있는 곳보다 멀리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레스코는 그 감정이 스쳐 가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그는 이리아가 방금 한 말을 더 오래 감당하도록 강요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들이 간직하려던 것


총리실 여자가 가장 먼저 그 순간을 망가뜨렸다.

“이 사안을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면 얼굴이 필요할 겁니다. 관제사가 좋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산부인과 책임자.”

이리아의 몸은 대답하기도 전에 굳었다.

그러나 마레스코가 먼저 말했다.

“안 됩니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단지 다른 이들이 자기 제안의 외설스러움을 듣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말했다.

“죽음을 막기 위해 자기 직무를 비틀어야 했던 사람들을 전시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그들의 얼굴도, 그들의 문장도. 오늘은 안 됩니다.”

법률가가 눈을 내리깔았다.

홍보 담당자는 아무렇지 않은 몸짓으로 수첩을 덮었다.

이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에르베 마레스코가 평범한 기회주의자보다 증오하기 어려운 사람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더 위험했다. 오늘은 그 사람들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면서도,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결국 국가의 방법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다만 오늘 아침 일어난 일을 전수할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국장님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또 하나의 절차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법률가가 말했다.

“국가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또 하나의 절차가 됩니다.”

이리아는 그를 응시했다.

“네. 바로 그게 문제죠.”

잠깐 이어진 침묵은 마레스코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마침내 노골적으로 나온 반박이 오히려 그를 안도시키는 듯했다.

“이 나라는 지쳤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빨리 결정하거나 너무 늦게 결정하죠. 모두가 터무니없는 지경까지 자기 부서의 울타리를 지키다가, 끝내 기적을 일으킬 중앙을 요구합니다. 순수한 반사작용이 아닌 무언가를 끌어낼 방법을 찾았다면, 우리가 무엇을 내세워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조금도 감상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주장은 위험했다.

이리아가 물었다.

“국장님이 ‘다른 무언가’라고 부르는 것이 대규모로 되풀이되어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마레스코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그녀가 바렌가로 나왔을 때는 밤이 내려앉은 뒤였다.

파리는 모든 행정 건물이 이미 너무 많은 말을 들어 버린 듯 보이게 하는, 조금 지저분한 누런 빛에 잠겨 있었다. 자전거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등 뒤 건물의 창문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는 전화에 대고 벌써 필요 이상으로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새 메시지였다.

이번에는 관리청에서 보낸 것이었다.

‘향후 48시간 파리에서 대기할 것. 오전 7시 30분 원칙 수립 회의 예정.’

이리아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러고는 4층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이 나라는 아직 새로운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곳곳에 명료한 방을 요구할 때 사용할 어조는 벌써 찾아낸 뒤였다.

제3장

위신

화면 위에서


다음 날 7시 29분, 관리청 원칙 수립 회의실에서는 벌써 따뜻해진 종이와 너무 짧은 밤의 냄새가 났다.

몇 년 전만 해도 공식 체계에서 그 냄새를 거의 몰아낸 상태였다. 모든 것이 인증된 정보 흐름과 공유 표, 말끔한 기록을 거쳐야 했다. 서류로 가득한 캐비닛이나 터무니없는 결재철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매끈한 몇몇 결정은 잘 관리된 정보의 흐름이 그 안의 망설임을 얼마나 빨리 흡수해 버리는지 일깨워 주었다. 종이는 가장자리부터 돌아왔다. 초안, 퇴실 기록지, 당장 데이터가 되기에는 너무 구체적인 상황에 얽힌 메모들.

이리아는 마시고 싶지도 않은 커피를 들고 들어갔다.

타원형 탁자 주위에는 열다섯 명가량이 앉아 있었다. 관리청 상근자 셋, 부처 소속 법률가 둘, 평가실 소속 사회학자 한 명, 테시에. 그리고 탁자 끝에는 이미 제목이 투사된 화면이 있었다.

‘생나제르 사례 — 합의 도출 과정’

이리아는 화면을 보고, 이어서 탁자를 보았다.

그 표현을 불편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다음 슬라이드에는 누군가 세 문장을 따로 뽑아 놓았다.

‘이미 금이 간 그릇.’

‘한 음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다.’

‘당신은 너무 오래 옳게 될 것이다.’

문장들은 누구에게도 피로나 두려움이나 책임을 치르게 하지 않은 것처럼 흰 사각형 한가운데 떠 있었다.

명료한 방 관리청 부청장 엘렌 라스쿠르가 서두 없이 시작했다.

“여기 전형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회의에서 무엇이 절차 자체에서 비롯되었고, 무엇이 재현 불가능한 인간적 우연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재현 가능이라는 말이 차가운 외풍처럼 방 안을 가로질렀다.

이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테시에는 벌써 서류를 펼친 뒤였다.

“장관 비서실은 9시 45분까지 보고서를 원합니다. 아주 단순해요. 무엇을 안정화할 수 있고, 무엇을 안정화할 수 없는가?”

법률가 한 사람이 물었다.

“이 사례는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게 맞습니까?”

이리아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산부인과는 전력 공급이 끊기기 전에 연료를 보급받았습니다. 예인선 세 척이 출항했고요. 명령은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비틀렸습니다. 네, 원하신다면 성공이라고 부르세요.”

이어진 침묵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조심스러웠다.

엘렌 라스쿠르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보다 정확하게 말하는 겁니다.”

이리아는 다시 화면을 보았다.

그러고는 물었다.

“이 세 문장은 누가 골랐죠?”

테시에가 너무 빨리 대답했다.

“전환을 요약하는 문장들입니다.”

“아니요. 전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요약한 문장들이죠.”

마레스코는 방에 없었다.

그의 부재는 테시에의 윤곽을 더 또렷하게 했다.

덜 유연하고.

더 확신에 차고.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더 굳게 믿게 했다.

“그럼 평가관님은 뭘 원합니까? 모든 것을 번역 불가능한 경험으로 남겨 두자는 겁니까?”

이리아는 모드를 떠올렸다.

거의 보이지 않게 떨리던 다리.

피로 속에서도 정확성을 잃지 않았던 여자.

“그 문장들이 특정한 사람들의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방법론의 구름 속에서 나온 게 아니니까요.”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감히 웃지도 않았다.

이 나라가 벌써 사랑한 것


10시 12분, 건물 로비의 무음 화면에는 벌써 실시간 뉴스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생나제르 사태 이후, 명료한 방이 공공 대응의 중심이 되는가?’

다른 방송사는 ‘새로운 국가적 숙고 방식’을 이야기했다.

좀 더 신중한 세 번째 방송사는 ‘일부 중대 위기에 활용된 아직 기밀에 가까운 제도’를 언급했다.

화면에는 항구와 관청 복도, 회색 건물 정면, 서류에 서명하는 손의 클로즈업이 나왔다.

7번 방은 없었다. 얼굴들도 없었다. 그 점에서 마레스코는 약속을 지켰다. 실제 대가가 드러날 만한 것들을 화면 밖에 두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리아는 자신이 원했던 것보다 오래 화면 앞에 멈춰 섰다.

한 여성 논평가가 소리 없는 자막 뒤에서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끊임없는 즉각적 대응에 지친 나라에서, 한층 차분한 결정에 대한 약속은 벌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리아가 싫어하는 감각이 몸속에서 차올랐다. 동의도, 희망조차도 아니었다. 짧은 기쁨이었다. 그 기쁨이 정당했기에 더더욱 타협적으로 느껴졌고, 맛을 들였다는 수치가 거의 곧바로 뒤따랐다.

속도를 힘과 혼동하는 대신 결정의 정신적 질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 나라가 모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

그녀는 그 감각이 찾아오도록 내버려 둔 뒤, 방에서 다른 이들을 살피듯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밑바닥에는 남들보다 먼저 옳았다는 만족과, 중요한 형식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본 소수에 단 한 순간이라도 속해 있다는 쾌감이 있었다.

이리아는 눈길을 돌렸다.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진동했다.

어머니의 메시지였다.

‘항구에서 벌어진 네 일, 텔레비전에서 봤어. 그 방이라는 게 네가 하는 일이니?’

이리아는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세 단어를 썼다가 지웠다. 어머니는 자기 주제를 지나치게 잘 보호하는 대답을 싫어했다. 한 시간 안에 다시 전화해, 이리아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부터 물은 다음 오직 하나뿐인 중요한 질문을 던질 것이었다.

이리아에게는 어머니 앞에서 단순해질 용기가 없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위신은 선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었다. 마침내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자기 안의 한 부분이 정확히 일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합리적인 사람들


11시, 그들은 이번에는 화면이 없는 더 작은 방에 다시 모였다. 마레스코도 있었다. 엘렌 라스쿠르도 있었다. 내무부 법률가와 테시에도 있었다.

아무도 소개하지 않은 중앙행정부의 한 국장도 있었다. 마치 직책만으로 그 사람을 충분히 읽어 낼 수 있다는 듯이.

마레스코는 각자의 앞에 종이 한 장씩 놓았다.

제목은 한 줄이었다.

‘제한적 확대 시행 가설’

“여기서 전면적 일반화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섯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확대 시행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항만. 에너지. 병원 물자 부족. 위기 사법. 지역 대피. 식량 물류.”

그는 너무도 합리적인 어조를 택했기에, 그 안의 폭력을 들으려면 애써 귀를 기울여야 했다.

중앙행정부 국장이 말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공통 언어입니다. 각 부처는 아직도 자기들이 느끼는 공황만이 유일하게 심각한 것인 양 굴어요.”

법률가가 덧붙였다.

“명료한 방이 서로 모순되는 결정의 과잉 생산을 늦추기만 해도 그 이익은 이미 막대합니다.”

틀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방은 숨 막혔다.

이리아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느 방이 다른 방보다 더 명료해서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누가 결정하죠?”

엘렌 라스쿠르가 대답했다.

“바로 관리청입니다.”

“어떤 기준으로요?”

“우리의 기준으로.”

잔인할 수도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잔인하지 않았다.

엘렌 라스쿠르는 뒤늦은 순진함에 내어 줄 시간이 더는 없는 사람 특유의 정중한 피로를 담아 말했다.

“당신은 이미 인증하고 있어요. 이미 평가하고 있고요. 본질을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규모를 감당하자는 것뿐이에요.”

테시에는 자기 종이를 이리아 쪽으로 밀었다.

한 문단이 노란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목표: 제한된 시간 안에 방어성은 낮고 부문 간 소통은 원활하며 공익에 더욱 부합하는 발언을 끌어낼 것.’

이리아는 다시 읽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게 아닙니다.”

법률가가 한숨을 쉬었다.

“실례지만, 우리가 문서에 쓸 수 있어야 하는 내용은 정확히 이것입니다.”

“네. 잘 알아요.”

마레스코는 끼어들지 않고 이리아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명료한 방은 공익에 부합하는 발언을 만들어 내는 기계가 아닙니다. 이렇게 적어 놓는 순간, 사람들은 바로 그 부합성을 연출하러 방에 들어오게 될 거예요.”

중앙행정부 국장이 물었다.

“그래서요? 나라에 그게 필요하다면요?”

그 대답에는 냉소가 조금도 없었다. 책임감에서, 거의 돌봄에 가까운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진심으로 피해를 줄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싸우는 일은 언제나 더 어려울 터였다.

마레스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 표현은 쓰지 않겠습니다.”

테시에는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마레스코가 덧붙였다.

“그러나 계획은 그대로 추진합니다.”

이번에는 이리아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구를 둘러싼 이 작은 승리가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한 또 다른 것


12시 40분, 회의가 마침내 흐트러지기 시작할 때 마레스코가 이리아에게 남아 달라고 했다.

테시에는 필요 이상으로 느리게 서류를 챙기는 척했다.

마레스코가 단 한 번 그를 바라보았다.

테시에는 나갔다.

문이 닫혔다.

마레스코는 곧바로 말하지 않았다.

옆에 놓인 회색 서류철을 열고 복사된 종이 여섯 장을 꺼냈다.

오래된 회의 보고서들이었다.

마르세유, 리모주, 됭케르크, 브리앙송에서 열린 방들의 기록.

각 페이지 여백에는 낱말이나 이미지 하나가 손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문턱

매듭

사하중

좁은 문

너무 오래 붙든 선

너무 일찍 거둔 손

이리아가 의식하기도 전에 등이 곧게 펴졌다.

“이게 뭐죠?”

“단순한 우연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마레스코는 종이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지난 3년간 일부 방에서 비슷한 이미지가 되풀이됐습니다. 완전히 같은 단어는 아닙니다. 같은 사람들도 아니고요. 하지만 형태가 닮아 있어요. 전환점을 붙잡아 내는 공통된 방식입니다.”

이리아는 종이에 손대지 않았다.

법률가라면 의미론적 반복이라 불렀을 것이다.

테시에라면 전략적 자료라 불렀을 것이다.

마레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것이 언어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방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고요해졌다.

벽 너머에서는 나라를 소화하고 있는 국가기관 건물의 일상적인 두께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리아가 물었다.

“제게 무엇을 바라시는 거죠?”

“읽어 주십시오. 우리가 또 하나의 행정적 미신을 상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확대 시행하기 전에 이해할 가치가 있는 현상을 상대하는 것인지 말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 요구는 압박보다 더 두려웠다. 이리아가 차라리 더 단순하게 맞서고 싶었던 대상에게도 지성이 있음을 인정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마레스코를.

그리고 다시 종이들을 보았다.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위험에는 분명한 얼굴이 있었다. 벌써 말라붙은 평온을 지닌 테시에, 도구의 탄생을 목격해 기뻐하던 남자. 이제 위험은 자신이 확대하려는 대상을 먼저 제대로 이해했는지 물을 만큼 진지한 남자의 모습을 함께 갖게 되었다.

이리아는 회색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표지 날개에는 누군가 검은 펜으로 이렇게 적어 놓았다.

‘공통 이미지 — 내부용’

복도로 나왔을 때, 이리아는 위신만으로는 벌써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위신은 자기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어 했다.

제4장

공통의 이미지

회색 낱장들


13시 17분, 이리아는 아직 가져서는 안 되는 서류라도 되는 양 회색 파일을 품에 꼭 끌어안고 8호선을 타 라투르모부르로 갔다.

파리 위의 하늘은 비와 갬 사이에 걸린 채 결정을 내리지 못한 흰빛이었다. 객차에서는 중학생 둘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영상 이야기를 지나치게 큰 소리로 떠들었다. 정장 차림의 한 여자는 가슴에 턱을 묻고 손에는 여전히 화면이 켜진 휴대전화를 든 채 세 정거장을 잤다. 이리아는 불편을 즐겨서가 아니라, 주위에 움직임이 필요해서 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

명료한 방 감독청은 아무 개성 없는 석조 정면 뒤편, 공공기관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말끔히 다시 칠한 옛 보험회사 건물을 쓰고 있었다. 복도에서는 종이 상자와 식은 커피, 지친 프린터 냄새가 났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피로보다 정확한 직무가 늘 조금 더 추상적이었다.

그녀의 사무실에는 탁자 하나, 의자 둘, 철제 캐비닛 하나, 아주 작은 싱크대 하나, 그리고 거리라기보다 행정기관에 배당된 하늘 한 조각을 보여 주는 너무 높은 창문이 있었다. 이리아는 문을 닫고 파일을 탁자 위에 놓은 뒤, 곧바로 열지 않고 선 채 머물렀다.

생나제르 이후로 그날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소집. 4B실. 원칙. 화면. 확대 시행. 그리고 이 낱장들.

여백을 더 이상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낡아 보이는 문서들이었다.

이리아는 마레스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게 언어라면 말입니다.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그것은 잘 믿는 사람의 대답이 아니었다. 국가가 복제하고 싶은 것을 너무 성급히 명명하는 순간부터 탈선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파일을 열었다. 가공하지 않은 보고서 여섯 건.

현장에서 나온 원본, 혹은 거의 원본이었다. 여백의 주석, 일부만 남은 서명, 시각, 방의 상태, 집단 구성, 회의 중 돌발 상황. 마르세유. 리모주. 됭케르크. 브리앙송. 크레테유. 포스쉬르메르.

프랑스가 머리보다 몸으로, 다급히 결정을 내리던 곳들.

첫 번째 서류는 급히 보강한 공동주택 아래의 가스관 파열 위험으로 마르세유의 한 구역을 대피시킨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여백에 한 참가자가 적어 놓았다. “좁은 문.”

두 번째는 세기관지염 유행 당시 리모주에서 중증 병상을 징발한 일에 관한 것이었다. 한 시설장이 이렇게 썼다. “너무 일찍 거둔 손.”

세 번째는 됭케르크에서 곡물 저장소가 오염된 뒤 벌어진 철도와 항만 봉쇄에 관한 것이었다. 동그라미가 쳐진 단어는 매듭.

네 번째는 브리앙송에서 산길을 폐쇄해 양쪽에 사람들이 고립된 사건이었다. 동그라미가 쳐진 단어는 문턱.

다섯 번째 크레테유 보고서는 건조한 열네 쪽과, 존재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듯한 한 줄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하중.”

마지막 포스쉬르메르 보고서는 일곱 달 전 것이었다. 이리아는 나머지를 읽기도 전에 그 표현부터 보았다.

“지나치게 팽팽한 선”

그녀는 앉았다. 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한순간, 누군가 이곳에 어떤 존재가 아니라 집요함을 하나 더 들여놓은 듯한 물리적 감각이 들었다.

그녀는 수수께끼를 찾으려 하지 않고 펜을 든 채 낱장들을 순서대로 다시 읽었다. 명료한 방은 이미 기이한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끌어들이고 있었다. 거기에 신비를 더 지어낼 필요는 없었다.

마르세유. 주택 담당 부시장은 “우리가 통과시키려는 모든 것을 담기에는 너무 좁아진 문”을 말했다.

리모주. 한 진료과장은 사람들이 등을 받쳐 줄 만큼 받쳐 줬다고 기관이 자화자찬했지만, 실은 동행하기를 막 그만두었을 뿐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의 등에서 손을 너무 일찍 거뒀다”고 말했다.

됭케르크. 임시직 하역 노동자는 말했다. “당신들은 범인을 찾지만 진짜 문제는 매듭이에요. 저마다 제 밧줄만 잡아당기면서 그걸 분석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브리앙송. 한 부지사는 “이미 구역이 되어 버렸는데도 계속 선으로 취급하는 문턱”을 말했다.

크레테유. 스무 시간 당직을 마친 마취과 의사는, 옮길 수 없는 “사하중”의 이름을 바꿔 용기를 내 보려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직업도, 지역도, 사용하는 언어의 계층도 달랐다. 옳음을 주장하는 방식까지 달랐다. 그런데 이미지들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시적 감흥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결정을 붙들거나, 거두거나, 잘라 내거나, 너무 오래 보호하는 바람에 더 이상 올바르지 않게 되는 바로 그 지점을 말하려는, 지친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노력으로.

14시 9분, 누군가 문을 한 번 두드리더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왔다.

사라 로름이었다.

감독청의 조사보고관. 아마 서른다섯쯤. 묶어 올린 머리, 가느다란 안경, 기억에 남을 색이 없는 옷. 남의 공간에 불쑥 들어오도록 만들어진 사람은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그 일을 감수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탁자 위의 낱장들을 보고 멈춰 섰다.

“아.”

에는 이미 결백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이리아는 파일을 슬며시 덮었다.

“이제는 형식상으로라도 노크하는 거야?”

사라는 웃지 않았다.

“라스쿠르가 세 시까지 생나제르 종합 보고를 달래.”

그러고는 잠시 뒤 덧붙였다.

“마레스코가 결국 그걸 보여 줬구나.”

이리아가 눈을 들었다.

“그럼 너도 알고 있네.”

“우리 기록실에 난처한 표현들만 묻힌 작은 공동묘지가 있다는 건 알아.” 사라가 말했다. “어느 부처든 그 존재를 발견할 때마다 누군가 ‘집단적 통찰의 어휘 출현’에 관한 실무단을 제안한다는 것도 알지. 그러면 또 누군가 제목이 외설스럽다고 하고, 이름을 바꾸고, 수치스러운 짓이 다시 시작돼.”

이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그저 언어일 뿐이라고 생각해?”

사라는 두 번째 의자를 끌어당겨 묻지도 않고 앉았다.

“지친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걸로 말한다고 생각해.” 그녀가 말했다. “몸. 도구. 문. 매듭. 하중. 선. 신비로울 건 없어.”

“그런데도?”

사라는 이라는 단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아주 다른 방들에서, 결정이 내려지기 전, 거짓말이 더는 버티지 못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같은 일이 올라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무 빨리 말하진 않아.”

이리아가 물었다.

“왜 지금까지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지?”

사라는 복도 쪽으로 손을 작게 내저었다.

“단순한 언어라면 활용하기 어렵고, 다른 무엇이라면 정치적으로 폭발성이 있으니까.”

아무에게도 아첨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 대답이었다.

이리아는 낱장들을 파일에 정리해 넣었다.

“가공 전 기록은 누가 볼 수 있어?”

“지하 기록실.” 사라가 말했다. “지하 2층. 뒤팽에게 부탁해.”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이리아.”

“응?”

“실마리를 찾더라도 똑똑한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지 마.”

그러고는 들어올 때와 똑같은 메마른 신중함으로 나갔다.

14시 18분, 이리아는 이론에서 출발하기를 포기했다.

자료를 향해 가기로 했다. 진짜 자료를.

지하 기록실


지하 2층은 어떤 내부 안내 책자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출입증과 업무용 열쇠, 그리고 행정부가 나중에 더 말끔한 이야기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들의 물적 증거를 온종일 보관하는 남자의 지친 승인이 필요했다.

뒤팽은 목수 같은 손과 정직한 배를 가졌고, 행정 용어란 스테이플러로 찍어 묶은 힘의 관계 말고는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믿어 온 사람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리아의 신청서를 받아 맨 위에 적힌 마레스코의 이름을 읽은 뒤 눈을 들었다.

“이걸 직접 서명했다면, 배우고 싶거나 겁먹고 싶다는 뜻이겠군요.”

“둘 다일지도 모르죠.” 이리아가 말했다.

뒤팽은 직업적으로 찬성한다는 듯 투덜거렸다.

지하 기록실에는 고상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학구적인 어스름도, 종교적인 침묵도 없었다. 빽빽한 이동식 서가, 회색 상자, 코드, 가까스로 억눌린 먼지,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에 끼워 넣지 못한 것들을 보관하는 장소 특유의 한결같은 서늘함뿐이었다.

뒤팽은 낮은 운반대에 상자 여덟 개를 실어 왔다.

“파일에 없는 사례 두 개를 더 넣었습니다. 리옹과 생브리외. 같은 부류의 기이한 것들이죠.”

그는 상자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일반 보고서는 위에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무결성 확인표, 몸짓 기록, 호흡 이상, 자유 기술 기록이 있고요. 한마디로 궂은일이죠.”

이리아는 그가 말없는 빈정거림과 함께 건넨 종이 장갑을 꼈다.

두 시간 동안 그녀는 이미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을 아는 장치를 해체하듯 읽었다.

리옹. 한 사립 병원과 공공 투석센터, 노후 전력망에 매달린 공공주택 지구 사이에서 벌어진 전력 배분 분쟁. 참가자 네 명에게서 되풀이된 말.

“부하를 덜어 내는 건 선택하는 게 아니다”

생브리외. 어업, 위생 관리, 수산물 경매장의 행정 폐쇄가 충돌한 사건. 한 조사관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직접 다시 벌리는 상처를 계속 씻고 있다”

마르세유. 좁은 문은 처음에도 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방이 재입주 권리를 논하는 일을 멈추고, 바로 그날 밤 누가 바깥에서 자게 될지를 마침내 바라본 직후에 정확히 나타났다.

크레테유. 사하중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었다. 부서도, 환자도, 잘못도 아니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우선순위 세 가지를 하나의 대기 줄처럼 다루게 만드는 편리한 범주를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행위를 가리켰다.

이리아는 읽어 갈수록 상징을 덜 보게 되었다. 행정적 추상이 지닌 마취력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생겨난 언어의 동작들이 보였다.

환영이 아니라 붙잡을 곳이었다.

어떤 사람이 한 방에서 결정을 앞두고, 공식 문구가 거짓말하기 시작하는 지점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형태를 돌연 찾아냈다.

16시 36분, 뒤팽은 첫 모금을 마시기도 전에 배은망덕한 손가락부터 데게 할 만큼 얇은 종이컵에 탄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열린 상자들을 보았다.

“그래서요?”

이리아는 장갑을 벗었다.

“같은 이미지들은 아니에요.”

“고맙군요.” 뒤팽이 말했다. “완전히 겹쳐지는 기적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걱정했는데.”

“같은 작용이에요.”

그가 커피를 내밀었다.

“무슨 뜻이죠?”

그녀는 말을 다듬지 않고 찾아냈다.

“거의 언제나 누군가가 입장을 명명하기를 멈추고 실질적인 제약을 명명하기 시작할 때 나타나요. 지위에서 긴장으로 넘어가는 거죠. 사람들은 더 이상 권리, 안전, 역량, 기한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문턱, 매듭, 무게, 음, 손이라고 말해요. 무엇을 잘못된 곳에서 붙들고 있는지 바로 이해하게 되죠.”

뒤팽은 너무 일찍 한 모금을 마셨다가 입을 데었다.

“그건 벌써 장관에게 올릴 보고서에 쓰기 썩 유쾌하지 않겠군요.” 그가 입김을 불며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그는 닫힌 상자 위에 종이컵을 놓았다.

“그걸 내놓으면 저들이 뭘 원할지 압니까?”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저런 식으로 말하도록 훈련하려 들 겁니다. 문턱 진행자, 매듭 탐지자, 사하중 전문가를 만들어 내겠죠. 그러고 여섯 달 뒤면 천 유로짜리 구두를 신은 고위 간부들이 ‘좁은 문’이라고 말하고 있을 겁니다.”

이리아는 마르세유 상자를 바라보았다.

“알아요.”

뒤팽은 생나제르 낱장들을 향해 굵은 손가락을 뻗었다.

“항구에서 온 그 여자 말입니다. 왜 그 말은 힘이 있죠?”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고 온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거죠.”

그는 종이컵을 다시 집어 들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적절한 말을 찾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미리 원하는 법을 배우는 순간 문제가 시작되죠.”

그 말은 이렇게 일찍 건드려지기를 원치 않았던 이리아의 한 지점에 닿았다.

아직 결론은 아니었다. 다만 그 그림자였다.

17시 8분, 이리아가 뒤팽에게 물었다.

“초기 서류에 참가자 명단도 있나요?”

“물론이죠.”

“됭케르크 쪽과 연락하고 싶어요.”

뒤팽은 왜 하필 그곳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부속 파일을 열어 종이 한 장을 그녀 쪽으로 밀었다.

이름. 말로 바세.

사건 당시 직책. 부두장 대리.

회의 관찰 기록. 말이 적음. 뒤늦게 정확히 봄. 용어를 너무 일찍 말끔히 손질하는 것을 견디지 못함.

업무용 휴대전화 번호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고, 손으로 고쳐 쓴 번호가 그 아래에 있었다.

이리아는 수첩에 번호를 옮겨 적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말로 바세


여섯 번 신호가 간 뒤 그가 받았다. 등 뒤에서 디젤 엔진과 바람 소리, 제대로 닫히지 않는 철판 소리가 들렸다.

“바세입니다.”

“바세 씨, 명료한 방 감독청의 이리아 다노입니다.”

짧은 침묵.

이어서 그가 말했다.

“전 이제 대리가 아닙니다. 서식 문제면 항만 쪽에 알아보셔야 해요.”

“서식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뒤편 소리가 자리를 옮겼다. 이리아는 그가 전화기를 어깨와 뺨 사이에 끼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11월 14일 됭케르크 회의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곡물·오염·철도 건입니다.”

이번에는 침묵이 더 길었다.

“오래전 일이군요.” 바세가 말했다.

“네.”

“왜 이제 와서요?”

이리아는 주위의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시작하기 전에 제가 이해하고 싶은 대목이 그 서류에 있어서요.”

그가 코로 숨을 내뿜었다. 예상보다 나은 말을 들은 남자의 소리였다.

“어떤 문장이죠?”

“‘매듭’이요.”

수화기 너머에서 철문이 쾅 닫혔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더 맨몸으로 돌아왔다.

“표현을 지어낸 게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진절머리가 나서 나온 말이죠.”

“그래도 직접 듣고 싶습니다.”

바세가 물었다.

“파리에 있습니까?”

“네.”

“그럼 제대로 듣기는 어렵겠군요.”

이리아는 재촉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여섯 사람이 저마다 자기만의 깔끔한 중단안을 원했어요. 위생 당국은 저장소 전체를 봉쇄하려 했고, 항만은 오염되지 않은 물류를 살리려 했죠. 철도 쪽은 순서를 바꾸면 운행을 끊겠다고 했고, 보험사는 경계 구역을 원했습니다. 전부 자기 구간만 나머지를 찢지 않고 떼어 낼 수 있는 것처럼 말했어요.”

“바세 씨는요?”

“난 부두에 있는 사람들을 봤죠.”

과장 없이, 스스로를 키울 필요 없는 것의 자명함으로 대답이 떨어졌다.

“그들은 뭘 기다리고 있었나요?” 이리아가 물었다.

“어느 부서가 제일 말끔히 서명하느냐가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짓을 그만두길 기다렸죠. 화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어요. 방수포는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고, 작업조는 교대 중이었죠. 곡물은 방수포 아래에서 열과 냄새와 오물을 내며 계속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 안에서는 구간별로 사고했어요.”

이리아는 두어 초 기다렸다.

“매듭은요?”

바세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 단어가 아직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매듭은 서로 떨어진 결정이 여러 개 있다고 믿는 척하던 순간이었어요. 실은 결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더 넓게, 더 빨리 막고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인정하든가. 아니면 각자 제 절차를 구하려고 자기 밧줄을 계속 당기면서 그걸 정교함이라고 부르든가.”

이리아는 눈을 감았다.

바세의 목소리가 모드의 목소리를 되살렸다. 직업도 성별도 피로도 달랐다. 매끈하게 분절하려는 힘에 맞서는 싸움은 같았다.

“그 말을 언제 하셨나요?” 그녀가 물었다.

“걷고 난 뒤요.”

“왜 하필 그 단어였죠?”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이 거세졌다.

그러고는 바세가 말했다.

“한 시간 전부터 몸으로 느껴졌으니까요. 모든 게 한꺼번에 잡아당겼습니다. 어깨도. 목소리도. 기한도. 그 사람들은 정확한 걸 원했지만, 정확한 말이 거짓말을 했어요. 그래서 ‘매듭’이라고 했습니다. 잘난 척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게 매듭이었으니까.”

이리아는 모두 적었다.

정확한 말이 거짓말을 했다.

“그 뒤에 다시 연락받으셨나요?”

“두 번요.” 바세가 말했다. “한 번은 보고서 확인차. 또 한 번은 교육에 와서 증언할 수 있느냐고.”

“그래서요?”

이번에는 그가 정말로 웃었다.

“사흘 동안 곡물 먼지를 폐로 들이마신 부두 노동자들도 부를 거냐고 물었죠. 그건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바세가 이었다. “사람들이 당신의 통찰은 원하면서 그 통찰에 든 대가는 원하지 않는다면, 일을 좀 어렵게 만들어 줘야죠.”

지하 기록실에서 뒤팽은 엿듣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삼 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란 듯이 다른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리아가 물었다.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하세요.”

그러고는 잠시 뒤 덧붙였다.

“하지만 그날보다 말끔한 말을 시키려고 전화하진 마십시오.”

전화가 끊겼다.

이리아는 한동안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있었다.

매듭은 표지가 아니었다. 다시 하나가 된 제약에 붙인 임시 이름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너무도 명료하게 알아버렸다. 그 명료함이 준 안도 때문에 두려워질 만큼.

현실이 맑아지기 시작할 때면 위험은 언제나 그리 멀지 않은 뒤편에 있다.

불가능한 첫 보고서


18시 20분, 라스쿠르는 퇴근하기 전에 자기 사무실에 들르라고 했다.

부위원장의 사무실은 다른 방들보다 넓었지만 호화롭지는 않았다. 밝은 목재. 흠잡을 데 없는 정리 상태. 낮은 조명. 건조한 건물 공기를 온갖 가능성에 맞서 견디는 초록 식물 하나. 엘렌 라스쿠르는 늘 꼿꼿이 앉았다. 피로를 완전히 아끼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한 편의 장면을 만들기는 거부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자세였다.

마레스코는 이미 와 있었다. 앉지 않고 창가에 서 있었으며 눈에 보이는 서류는 없었다.

이리아는 그들이 평범한 중간 보고가 아닌 다른 것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렸다.

라스쿠르가 의자를 가리켰다.

“읽어 봤습니까?”

“네.”

“그래서요?”

이리아는 회색 파일을 탁자 위에 놓았다.

“아마 두 분이 생각하시는 의미에서의 공통된 이미지들은 아닙니다.”

마레스코가 말했다.

“듣겠습니다.”

방의 함정이 거의 물리적으로 느껴졌다. 최악인 점은 그것이 영리하고 열려 있으며 거의 정직한 함정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말이 나중에 다른 곳에서 쓰일 만큼 충분한 공간을 스스로에게 내주게 하는 함정.

“안정된 어휘처럼 되풀이되는 게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같은 계열의 작용으로 되풀이됩니다. 문턱, 매듭, 무게, 선, 손. 매번 누군가가 제도적 문구가 거짓말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실제 제약을 명명합니다.”

라스쿠르는 두 손을 모았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네.” 이리아가 말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마레스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두 눈에만 주의가 조금 더 모였다.

“왜죠?” 라스쿠르가 물었다.

“그 말들이 나온 진실한 자리는 되찾지 못한 채 어휘만 흉내 내는 법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으니까요.”

짧은 침묵.

그러고는 마레스코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형식들은 신뢰할 만한 징후이지만 방법론으로 전수할 수는 없다고 보시는군요.”

“작업으로 전수되기 훨씬 전에 희화화된 형태로 전파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라스쿠르가 물었다.

“경고 지표로만 사용한다면요?”

이리아는 웃을 뻔했다.

오직이라는 말은 거대한 행정 용어죠.” 그녀가 말했다.

마레스코는 처음으로 진짜 피로를 내보였다. 이리아에게 향한 피로라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일을 이미 안다는 데서 오는 피로였다.

“그래도 보고서는 필요합니다.” 그가 말했다. “신화도, 원칙도 말고 보고서가.”

이리아가 물었다.

“누구에게 보여 줄 건가요?”

“내일 아침부터 당장 이걸 전문화하려 들 사람들에게요.”

그 솔직함은 어떤 연설보다도 그녀의 무장을 풀었다.

라스쿠르가 말했다.

“최소한 경계는 정해 주세요.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이리아는 파일을 보았다. 그런 다음 맞은편의 두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직한 엄격함을 지녔으나 규모 때문에 이미 타협한 라스쿠르.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는 대신 위험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지성을 지닌 마레스코.

그녀는 더 천천히 말했다.

“방에 이미지를 만들어 내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참가자들에게 명료함의 어휘를 알아보도록 훈련해서도 안 되고요. 어떤 표현의 정확함과 그 반복 가능성을 혼동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제약을 더 아름답게 말한다고 해서 방이 더 명철해졌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라스쿠르는 벌써 받아 적고 있었다.

마레스코는 이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계속하세요.” 그가 말했다.

주고 싶은 말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말들이 올라왔다.

“되풀이되는 것은 더 우월한 언어가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이 마침내 자기 직무의 보기 좋은 기하학을 보호하기를 멈췄을 때 말 속에 남는 흔적입니다.”

침묵이 꼭 필요한 만큼 이어졌다.

라스쿠르가 펜을 내려놓았다.

“아주 강렬하군요.” 그녀가 말했다.

또다시 짧은 자부심이 이리아를 가로질렀다. 다른 사람에게서도 자신에게서도 그녀가 혐오하는 바로 그 자부심.

위험은 거기서도 시작됐다. 어떤 문장이 곧바로 유용해지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안도에서.

마레스코가 물었다.

“그 표현을 인용해도 되겠습니까?”

거의 우아한 질문이었다. 아마 그에게서 가장 위협적인 점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가져가기 전에 먼저 물었다.

이리아가 대답했다.

“뒤에 이어지는 말까지 빼놓지 않는다면요.”

그는 기다렸다.

“그 말을 만들어 낸 상황에서 떼어 내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그 표현은 자기가 고발하던 바로 그것이 될 겁니다.”

이번에는 마레스코가 눈을 내렸다. 지적받은 사람처럼이 아니라, 자기 문제의 정확한 형태를 방금 건네받은 사람처럼.

그녀가 사무실을 나왔을 때 안뜰에는 완전히 밤이 내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형광등이 켜졌다. 위층에서는 누군가 지나치게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빈 사무실에서는 프린터가 계속 종이를 토해 냈다.

이리아는 이제야 조사가 진정 시작되었다는 감각을 품고 복도를 걸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이미지들이 되풀이되는지 찾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미리 의도하지 않아야만 정확하게 나타나는 언어를 권력이 무엇에 쓰려 하는지 찾아야 했다.

제2부

권력의 다정함

제5장

공공의 평온

탄탄한 인물들


스물사흘 뒤 8시 4분, 이리아는 받은 편지함에서 참가 요청 열두 건, 언론 문의 세 건, 그리고 이런 제목의 공유 표를 발견했다.

“명료한 방 인물군 - 노출 가능성”

마침내 더 느리게 결정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믿자 나라는 빠르게 움직였다.

감독청 복도의 벽 지도에는 새 압정들이 빼곡히 늘었다. 르아브르. 메스. 클레르몽페랑. 타르브. 리옹의 전력 관제센터. 일드프랑스의 병원 대책본부 두 곳. 평온한 방 하나가 좋은 기사를 안겨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의견을 물어본 적 없던 해안 지역 도청 한 곳.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면 확대가 아니었다. 어디서나 선택된 용어는 같았다. 확대 시행. 신중하고 형광빛을 띤 말. 팽창을 안전 지침처럼 보이게 하는 말이었다.

사라 로름이 노크도 없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표 봤어?”

“응.”

“G열을 봐. 거기서부터 시늉을 그만두거든.”

이리아는 파일을 다시 열었다. 평범한 채용 절차라도 되는 듯 항목들이 평평하게 이어졌다. 이름, 직책, 방 참여 경험, 과거 노출도, 발화 능력, 외관 적합성, 감지되는 갈등성, 방송 적합성. 그녀는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정말 감히 이런 것을 적었는지 확인하려고 다시 읽었다.

32번째 줄에는 모드 드렌이 이런 평가와 함께 올라 있었다.

“판단 매우 정확, 카메라 앞에서 지나치게 경직”

그다음 줄에는 크레테유의 응급의가 있었다.

“경험 탁월, 피로가 드러남, 전국 방송에서는 제외 권고”

아래쪽에는 브리앙송의 전직 부지사.

“자세 양호, 첫인상부터 안심시킴”

이리아가 물었다.

“누가 시작했어?”

사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컨설팅 회사였던 것 같아. 그다음에는 홍보실. 그다음에는 두 부처. 그러고 나서는 아무도 아니게 됐지. 훌륭한 외설은 언제나 끝내 혼자 돌아다니니까.”

이리아는 더 아래로 내렸다. 이름 옆에는 더 자유롭고 더 노골적인 말들이 쌓여 있었다.

“사람을 가라앉히는 목소리”

“애쓰지 않아도 신뢰감을 줌”

“노조 색채가 지나치게 강함”

“눈빛이 다소 강경”

“능력은 뛰어나지만 주장보다 분노가 먼저 느껴짐”

그녀는 노트북을 닫았다.

“얼굴들을 고르고 있어.”

사라는 권하지도 않은 의자에 앉았다.

“아니. 입을 열기도 전에 믿게 만들 수 있는 몸들을 고르는 거야.”

검어진 화면 뒤에 모드의 이름이 남았다.

이리아는 모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문구 너머로 그녀를 다시 보았다. 카메라 앞에서 지나치게 경직. 새벽 네 시부터 경유를 기다리며 서서 항구를 버틴 피로와 정확함은 사라졌다. 이미지상의 결함만 남았다.

이리아는 모욕을 상상해 낸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만 파일을 다시 열었다.

그 말은 거기 있었다.

32번째 줄.

표가 이미 받아들인 것들 특유의 평평한 평온함 속에.

9시 8분 전, 이리아의 전화가 울렸다. 공공서비스 담당 장관실에서 텔레비전 원탁 토론에 내보낼 “탄탄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편 가르지 않는 두세 명”을 원했다. 9시 14분에는 한 행정학교가 “현대적 분별력을 체현할 수 있는 대표 실무자”를 요청했다. 9시 29분에는 한 일요 주간지가 이런 특집을 제안했다.

“나라가 포화될 때 우리가 부르는 사람들”

이리아는 전화를 거절한 뒤 다음 전화도 거절했다.

옆 개방형 사무실에서는 누군가 기사를 낮은 소리로 읽으며 웃었다. 자기 일이 위신으로 변장하는 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짧고 기쁨 없는 웃음이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사실은 분명해졌다. 이제 그들은 방을 떠받칠 수 있는 실무자를 요구하지 않았다. 화면을 떠받칠 수 있는 사람들을 요구했다.

보여 줄 수 있는 것


10시 47분, 테시에는 사무총국 4층의 시청각 준비실에 여덟 명을 불러 모았다.

통유리창, 가지런히 늘어선 생수병, 지나치게 새것인 카펫 타일, 이미 켜진 벽면 화면. 첫 슬라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공개 시연 방송 - 명료한 방 장치”

실제 방이 아니라 보여 줄 수 있는 예행연습이었다.

최근의 여러 위기를 본뜬 가상 사례로, 저녁 8시 뉴스와 두 차례의 교육용 재방송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테시에는 빛을 다루는 전시를 소개하기라도 하듯 차분하고 거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경거리를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국민에게는 자신이 이해할 권리가 있는 업무 방식을 볼 권리도 있습니다.”

이미지 자문위원이 후보 참가자 명단을 띄웠다. 각 이름 옆에는 회색 배경에서 오려 낸 사진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복장 지침 몇 가지가 붙었다. 어두운 재킷. 무늬 금지. 빛이 반사되는 안경은 피할 것.

이름은 여섯이었다. 행정법 판사, 전직 구조작전 지휘관, 병원 진료과장, 전력망 기술자, 부시장, 지역 조정관.

이리아는 몇 초 기다렸다가 물었다.

“가장 힘든 방들을 실제로 통과한 현장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

테시에보다 이미지 자문위원이 먼저 대답했다.

“방법론을 흐리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인물들을 우선했습니다.”

“누구에게 흐리지 않도록요?”

그는 선별을 배려처럼 보이게 할 줄 아는 남자들의 직업적인 미소를 유지했다.

“대중에게요.”

테시에가 곧바로 이어받았다.

“쓸데없는 수고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인물들이 필요합니다. 형식이 불안감을 주면 내용은 들어가지 않아요.”

이리아는 명단을 보았다.

지나치게 거친 이름도, 피로가 너무 선명한 사람도, 성공한 결정이 치른 구체적인 대가를 너무 빨리 떠올리게 하는 얼굴도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모드 드렌은 보여 줄 수 없는 사람이군요.”

자문위원이 인쇄된 메모를 확인했다.

“드렌 씨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대답하기 전에 턱을 심하게 굳힙니다.”

이리아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야간 항구를 지켜 냈습니다. 그 끝에는 산부인과가 있었고요. 그래서 턱을 굳히는 겁니다.”

방 안의 침묵이 미묘하게 방향을 틀었다. 테시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바로 그래서입니다.” 그가 말했다. “대중에게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수는 없어요. 숨을 쉬며 들어올 입구를 내줘야 합니다.”

탁자 반대편에서 한 프로듀서가 덧붙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나한테 너무 무거운 결정이라면 저런 사람들에게 맡기겠다고.”

아마 모든 순간 중 가장 적나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리아가 물었다.

“정확히 보는 사람들이 저런 모습이 아니라면요?”

테시에는 서류를 덮었다.

“그렇다면 나중에 나라가 그들을 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죠.”

회의는 프레임과 리듬, 역광, 재킷 깃, 탁자에 비치는 반사광 같은 세부 사항으로 끝났다. 복도에서는 두 보좌관이 브리앙송 전 부지사의 사진 세 장을 태블릿으로 벌써 비교하며 정면과 살짝 비튼 4분의 3 각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 고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방법론은 자기만의 캐스팅 사무실을 얻었다.

시범실


시연은 엿새 뒤 국가위기지원센터의 유리벽 방에서 열렸다.

벽 너머에는 삼각대에 올린 카메라들, 기자 둘, 연출자 한 명, 헤드셋을 쓴 보조 인력들, 출입증을 나눠 주는 인턴, 지나치게 잘 다려진 재킷 깃에 마이크를 고정하느라 바쁜 음향기사가 있었다. 방에서는 건조한 냉방 공기와 식은 커피, 조명에 데워진 천 냄새가 났다.

가상 사례는 폭염기 물 부족 사태였다. 지역 병원 하나, 채소 재배 지구 하나, 관광도시 세 곳, 노인요양시설 하나, 생수 공장 하나. 모두에게 충분한 양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나 금세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리아는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단순 참관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와 함께 유리벽 뒤에 남을 수 있었다.

“뭘 보는 거야?” 사라가 물었다.

“모든 게 그럴듯하게 맞물리기 시작하는 순간.”

회의가 시작됐다.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었다. 자세도, 침묵도, 말을 되받는 방식도, 발언과 발언 사이에 남긴 호흡도. 시간 자체가 지시를 받은 듯했다.

판사는 말을 잘했다. 기술자는 더 잘했다. 병원 진료과장은 나라에 닿기 전에 유리벽을 하나 더 통과해야 하는 말처럼 단어 하나하나의 무게를 쟀다.

14분째, 지역 조정관이 말했다.

“이 문턱을 계속 단순한 평균으로 취급한다면, 물의 양보다 먼저 사람들을 잃게 될 겁니다.”

유리벽 뒤에서 한 기자가 노골적인 기쁨과 함께 눈을 들었다.

18분째, 부시장은 너무 일찍 거두어서는 안 될 지지선에 대해 말했다. 연출자는 진행표 여백에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이리아의 배가 조여 왔다.

말들이 지나치게 매끄럽게 나왔다. 거짓도 공허도 아니었으나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회색 낱장들의 어휘는 제대로 이해되기도 전에 기록실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회의가 진행될수록 문제는 선명해졌다. 아무도 어설프게 말을 끊지 않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모습을 지나치게 드러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말 속에서 자기 일부를 거는 듯한 사람도 없었다.

최종 결정은 깔끔하고 포괄적이며 논거를 갖춰 거의 모범적이었다. 관광용수의 일시 감축, 중증 치료 우선 유지, 고립된 노인들을 위한 물류 지원, 손실 기준치 이하의 채소 재배 농가에 대한 일부 보상.

유리벽 뒤에서 연출자가 중얼거렸다.

“아주 명확하네요. 전부 이해돼요.”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벽가 접이식 의자에는 자료 준비를 위해 온 전력망 기술자 한 명이 촬영되지 않은 채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네별 단수, 고층의 온도 상승, 멈춘 엘리베이터, 일부 건물에서는 직접 들고 올라가야 할 물통에 관한 현장 보고서를 쓴 사람이 그였다. 서비스 연속성이 거론되자 그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앉았다.

아무도 그에게 말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맞는 역할이 없었다.

옆 의자에 놓인 비닐봉지에는 샌드위치 두 개와 짓눌린 바나나 하나, 고무줄로 감은 휴대전화 충전기가 들어 있었다. 이리아는 뒤늦은 수치심과 함께 그 세부를 알아차렸다. 그의 보고서와 수치, 비상 우회망에 대해서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가 몇 시부터 기다렸는지, 누가 불렀는지, 무언가를 먹기 전에 돌아가게 될지는 알지 못했다.

방은 이미 그를 써 버렸다.

시연이 끝나자 참가자 여섯은 조용한 감사와 연달아 터지는 카메라 셔터, 그리고 나라가 벌써 다른 칭찬보다 더 좋아하기 시작한 이런 찬사를 받았다.

“정말 안심이 됐습니다.”

이리아는 유리벽을, 테이블을, 얼굴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 진실은 이미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저녁의 여자


그날 저녁 이리아는 오랫동안 냉방된 공간과 막지 못한 문장들의 마른 맛을 입안에 품은 채 늦게 귀가했다.

싱크대 위의 작은 조명만 켜고 부엌에 서서 식사를 했다. 그러고는 결국 텔레비전 소리도 켰다.

한 뉴스 채널의 토론 프로그램은 과거 개방형 국민경선이나 시민회의, 전략위원회를 말하던 방식으로 명료한 방을 다루고 있었다. 이해하기도 전에 대상을 띄워 올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와 대체재를 향한 희망이 뒤섞인 방식이었다.

패널 중앙에서는 한 여자가 누구도 재촉하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틀어 올린 머리, 어두운 재킷, 모든 동작이 조금도 넘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거의 평범해 보이는 얼굴.

이름 아래 자막이 떴다.

“야엘 세르 - 전 실무자, 공공 숙의 자문위원”

진행자는 명료한 방이 새로운 행정 종교가 될 위험은 없느냐고 방금 물은 참이었다.

야엘 세르는 웃지 않고 대답했다.

“종교는 자신이 치르는 대가를 보지 않아도 되게 합니다. 그 이름에 걸맞은 명료한 방은 반대로 그 대가를 더 오래 바라보도록 강제하죠.”

나쁜 의미로 번드르르하지 않은 좋은 대답이었다. 정확함 이외의 것은 추구하지 않았다.

한 국회의원이 늘 하던 비판을 내놓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일반 국민에게 여전히 너무 추상적입니다.”

야엘은 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추상적인 것은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 누가 생수 묶음을 4층까지 올릴 것인지 묻지도 않으면서 수자원 조정을 말하는 겁니다.”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이리아도 조용해졌다.

바로 그 순간, 시연 내내 벽가에 남아 있던 기술자가 다시 떠올랐다. 야엘은 몇 마디로 그를 방 안에 다시 들여놓았다.

가장 불안한 것은 그녀가 말을 잘한다는 점이 아니었다. 방송에서만이 아니라 사실관계에서도 옳다는 점이었다.

그 생각에 앞서 이리아에게는 어디에도 적어 두지 못할 더 낮고 더 빠른 생각이 스쳤다. 야엘이 4층이라고 말할 때의 입술과 목 가장자리에서 잠깐 드러난 힘줄, 누구에게도 아무것을 요구하지 않는 듯 팔걸이 위에 펼쳐 둔 왼손을 바라보았다. 감탄만은 아니었다. 정신보다 몸이 먼저 믿기 시작하는, 한 문장의 정확함을 그 말을 품은 사람 가까이에 있고 싶은 욕망과 잠시 혼동하는, 판단의 난처한 부분이 거기 있었다.

이리아는 곧바로 그것을 혐오했다. 그 충동이 비열해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동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방들만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얼굴과 목소리, 스튜디오 조명 속에서 곧게 세운 목선은 방법론이 몇 달에 걸쳐 조직하는 일을 단 2초 만에 해낼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다른 이들보다 무질서를 더 잘 떠받칠 것이라고 믿고 싶게 만드는 일.

진행자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국회의원은 다시 주도권을 잡으려 했지만, 프로그램의 중심은 이미 옮겨 가 있었다.

화면 아래로 시청자 메시지가 흘러갔다.

“드디어 진지한 사람이 나왔네.”

“저런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

“마음이 놓인다.”

이리아는 소리를 껐다.

메시지들은 침묵 속에서도 계속 미끄러졌다.

전화기가 진동했다.

마레스코의 메시지였다.

“내일 12시 30분. 바렌가에서 점심. 야엘 세르도 참석합니다.”

이리아는 두 번 읽었다.

그러고는 전화기 화면이 탁자를 향하도록 엎어 놓았다.

검은 화면 속에서도 스튜디오는 어딘가에 불을 밝힌 방처럼 계속 남아 있었다.

다음 날이면 저 얼굴이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을 터였다.

제6장

투명한 사람들

바렌가


12시 23분, 이리아는 지나치게 가벼운 가방을 들고 가장 무거운 것을 잊어버렸다는 우스운 기분 속에서 첫 번째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바렌가는 침묵하는 정면과 지나치게 절제된 대문, 지면 아래로 들어가는 차단봉 가까이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 속에 역사를 담아내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방식을 지닌 거리였다. 어느 것도 권력을 외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이곳의 권력은 복종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터득했다.

한 직원이 태블릿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다노 씨. 업무 오찬, 대기실 B입니다.”

점심을 먹는 일과 일하는 일이 늘 같은 행정적 계보에 속하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안뜰에는 검은 차 두 대가 시동을 끈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자가 서류철 세 개를 팔에 끼고 전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댄 채 옆 계단을 내려왔다. 저쪽에서는 정원사가 젖은 낙엽을 담은 손수레를 밀면서 아무에게도 눈을 들지 않았다. 이리아는 그를 한순간 너무 오래 바라보았다. 자갈 위를 구르는 쇳소리가 복도의 희미한 금빛 장식보다 그녀를 더 안심시켰다.

마레스코가 안쪽 창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처럼 말씀하시진 않았잖아요.”

그의 입가 한쪽이 짧게 움직였다.

“그랬죠.”

전날보다 더 피곤해 보이거나, 회의 테이블이 없는 탓에 보호막을 덜 두른 것처럼 보였다. 어두운 넥타이, 평범한 양복, 손에 든 얇은 서류철. 극적인 구석은 없었다. 그가 내보이는 다정함에는 늘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야엘 세르는 벌써 와 있나요?”

“대기실에 있습니다.”

“그녀를 만나 보라고 부른 겁니까, 아니면 검증하라고 부른 겁니까?”

마레스코는 기다렸다. 복도에서는 안내 직원이 문을 열고 보좌관 둘을 통과시킨 뒤 소리 없이 다시 닫았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녀가 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잘 본다면요?”

그는 자기 서류를 향해 눈을 내렸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다노 씨를 불안하게 하는지 알아봐야겠죠.”

말끔한 문장이었다. 지나치게 말끔한지도 몰랐지만 부정직하지는 않았다. 바로 그 점이 마레스코를 까다롭게 했다. 그는 국가가 눈을 덜 멀게 만드는 올바른 방법만 찾아낸다면 아직 나라를 떠받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들은 두 개의 전실을 지났다. 첫 번째 방에서는 데운 종이와 오래된 커피 냄새가 났다. 더 작은 두 번째 방은 직원용 계단과 이어졌다. 콘솔 위에는 누군가 유리잔을 올린 쟁반과 물병 세 개, 불필요할 만큼 정확하게 접은 냅킨들을 놓아 두었다. 파란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걸어 다니며 보고서를 다시 읽고 있었다. 읽기를 멈추지 않은 채 그들이 지나가도록 비켜섰다.

이리아가 물었다.

“누구죠?”

마레스코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카미유 아르토. 장관실 소속입니다. 시범 시행 현황을 담당하죠.”

“우리와 함께 식사합니까?”

“아닙니다.”

퉁명스럽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빠른 대답이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기실에는 야엘 세르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전화기는 없었고, 마시지도 않는 찻잔 양쪽에 두 손을 놓고 있었다. 마레스코가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일어섰다.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방송 때보다 덜 매끈해 보였다. 더 연약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덜 내맡겨진 얼굴이었다. 입가에는 아주 가느다란 긴장, 규율로 붙들어 온 오래된 피로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이리아는 곧바로 거짓 평온과 결함, 두려움이 시작될 무감각의 지점을 찾아 나섰다.

야엘이 손을 내밀었다.

“이리아 다노.”

마침내, 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나고 싶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기 전에 이름을 제자리에 두려는 듯, 그저 그녀의 이름만 말했다.

손은 따뜻했다. 악수는 단단하고 짧았으며 과시가 없었다.

“야엘 세르.” 이리아가 대답했다.

“알아요.”

마레스코가 옆방에 차려진 테이블을 가리켰다.

“셋이서 식사할 겁니다.”

야엘은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아뇨.” 그녀가 말했다. “넷입니다.”

마레스코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뭐라고요?”

“카미유 아르토가 시범 시행 현황을 담당하죠?”

“필요하면 나중에 합류시킬 수 있습니다.”

“그 전에 필요할 겁니다.”

침묵의 밀도가 달라졌다. 위계의 작은 기계가 다음 톱니를 찾는 것을 이리아가 느낄 만큼만.

마레스코가 물었다.

“왜죠?”

야엘은 찻잔을 들었다가 똑같은 자리에 다시 놓았다.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실 테니까요. 방들을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일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리아는 마레스코를 보았다.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선수를 빼앗긴 듯했다. 그럴 때면 그는 한층 더 움직이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문을 열어 안내 직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야엘은 정확히 옳은 행동을 했고, 그것을 이리아보다 먼저 했다.

흰 접시들


테이블은 의식을 치르기에는 너무 작았고 소박하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차려져 있었다.

흰 식탁보, 무광 은색 바구니에 담긴 얇게 썬 빵, 이미 놓인 접시 세 개. 이내 네 번째 접시가 급히 추가되었다. 뜻밖의 일조차 아침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여야 하는 집안 특유의 완벽한 속도였다.

카미유 아르토는 지나치게 꼿꼿한 불편함을 안고 테이블 끝에 앉았다. 서른이 채 안 된 듯도 했고, 잠을 적게 자고 제대로 먹지 못하며 두려움을 다 떨치기도 전에 요약 보고서처럼 말하는 법부터 익힌 보좌진 특유의 분간하기 힘든 나이로도 보였다.

“이 정도 논의에 제가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야엘이 대답했다.

“대개는 그 반대라는 신호죠.”

마레스코는 넘어갔다. 이미 평정을 되찾은 뒤였다.

“이 장치가 스스로 하나의 계급을 만들어 내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다. “어젯밤 방송을 보셨겠죠. 국민이 무엇을 기억했는지도 아실 테고요.”

“국민은 늘 자신에게 가장 적은 수고를 요구하는 얼굴을 기억하죠.” 이리아가 말했다.

야엘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것만은 아니에요. 어제 국민은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지 않은 첫 문장도 기억했습니다.”

이리아는 그녀가 옳다는 사실이 싫었다.

첫 번째 요리가 나왔다. 훈제 생선 한 조각과 허브 몇 잎, 크림 한 줄, 국가적인 통제력의 증거처럼 배열된 무 세 조각이 놓인 차갑고 아주 밝은 접시였다. 종업원은 소리 없이 접시를 내려놓았다. 카미유는 마레스코가 포크를 만질 때까지 자기 포크에 손대지 않았다.

야엘은 그것을 보았다. 이리아도 반초 뒤에 보았다.

“아르토 씨.” 야엘이 물었다. “시연 뒤에 올라온 보고를 다시 검토했습니까?”

카미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네.”

“전달된 보고서에는 무엇이 빠졌죠?”

마레스코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런 지성이 있었다. 잘못일 수 있는 일이 윤곽을 드러낼 때면, 그것이 끝까지 제 모습을 보이도록 가끔 내버려 두었다.

카미유는 망설였다.

“사례에 인용된 지역의 행정기관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서요?”

“주로 현장 부서들이었습니다. 노인요양시설장들, 상수도 사업조합 두 곳, 재가 돌봄 협회 한 곳. 가상 사례의 일부를 알아봤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물론 아니지만, 각각의 조각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한 거죠.”

이리아가 물었다.

“자기들이 재료로 쓰였다고 항의합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카미유는 마레스코를 본 뒤 야엘을 보았다. 이리아는 보지 않았다. 이리아는 아직 질문할 권리는 있으면서 대답의 대가는 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진영에 속한 듯했다.

“시연에서 나온 결정이 수많은 실제 결정들보다 낫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기한과 인력으로 그 결정을 실행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래요. 엘리베이터는 이미 고장 나 있고, 직원들은 결근하고, 차량은 공동 배차되고, 노인들은 낯선 사람에게 문 열기를 거부하니까요.”

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겁니다.”

“뭐가 말입니까?” 마레스코가 물었다.

“결정이 지닌 명료함은 보여 줬습니다. 그 무게는 보여 주지 않았죠.”

그 말은 문구라며 밀어낼 수 없을 만큼 정확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날 유리벽 뒤에서 이리아는 전력망 기술자를 떠올렸다. 그를 보았고, 그가 방에 빠져 있다는 사실까지 이해했으면서 그 통찰의 맛만 입안에 품은 채 집으로 돌아가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야엘은 현장 반응을 요청했다.

“촬영 원본을 봤습니까?” 이리아가 물었다.

“네.”

“방송 전에요?”

“국회의원에게 대답하기 전에요.”

카미유는 자기 접시를 향해 눈을 내렸다.

마레스코가 말했다.

“실제 방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야엘이 대답했다. “행정적 허구는 자신이 낳는 죽음에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우리의 선호를 드러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예상보다 세게 테이블을 쳤다. 마레스코는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일찍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아직은요.”

종업원이 물을 들고 돌아왔다. 그가 잔들을 채우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리아는 야엘을 살폈다. 떨림도 눈에 띄는 경직도 없었다. 하지만 왼손 엄지가 테이블 가장자리 아래로 들어가 검지의 손톱을 거의 고통스러울 만큼 세게 누르고 있었다.

텅 빈 여자의 몸짓은 아니었다.

이리아는 그것이 쓸모가 될 수 없을 만큼 늦게 알아보았다.

투명한 사람들


마침내 마레스코가 서류를 열었다.

“우리가 찾는 것은,” 그가 말했다. “공적 노출에 관한 원칙입니다. 명료한 방을 비밀리에 확대해 놓고 우리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나중에 믿어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원칙만 찾는 게 아니잖아요.” 이리아가 말했다. “인물들을 찾고 있죠.”

“그렇습니다.”

그는 그 단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 장치를 배경 장식이나 유행, 혹은 새로운 통치 의례로 축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떠받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국민은 지쳤어요. 모든 것을 의심합니다. 때로는 그럴 만하기도 하죠. 얼굴들이 필요합니다.”

카미유는 메모를 했다. 펜이 종이를 아주 가볍게 긁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로 가득한 방에서 그 작은 소리는 아직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은 반론처럼 이리아에게 들렸다.

야엘이 물었다.

“얼굴을 원하시는 겁니까, 증인을 원하시는 겁니까?”

마레스코가 눈을 들었다.

“차이가 뭡니까?”

“얼굴은 말하기 전에 안심시킵니다. 증인은 일어난 일을 외면할 수 없게 하죠.”

이리아는 공유 표 속 모드를 떠올렸다. “판단 매우 정확, 카메라 앞에서 지나치게 경직.” 모드는 얼굴이 아니었다. 두 발로 선 결과였다.

“증인은 두려움을 줍니다.” 마레스코가 말했다.

“그렇죠.”

“국민은 이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야엘은 빵 한 조각을 집어 둘로 뜯고는 먹지 않은 채 접시 가까이에 놓았다.

“두려움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보지 못하게 만드는 두려움. 그리고 너무 빨리 거짓말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

카미유는 쓰기를 멈췄다.

야엘의 힘이 차츰 선명해졌다. 다른 사람보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온기로 매혹하지도 않았다. 그저 편안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조금은 덜 품위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지점까지 논의를 옮겨 놓았다.

가공할 힘이었다.

마레스코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당사자들을 더 노출하자는 제안입니까?”

“아뇨.”

“하지만 방금은…”

“가시성과 존재를 혼동하는 일을 그만두자는 겁니다.”

대답이 지나치게 단정했다. 이리아는 하마터면 눈을 치켜뜰 뻔했다. 그때 야엘이 카미유 쪽으로 몸을 돌렸다.

“보고된 반응 중 4층을 말한 사람은 누구였죠?”

카미유는 서류를 넘겼다.

“전력망 기술자입니다. 시연 현장에 있던 사람요.”

“이름도 있습니까?”

“제롬 켈리앙입니다.”

야엘은 이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를 보셨죠.”

질문이 아니었다.

이리아는 생각보다 날카롭게 대답했다.

“네.”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참가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건 이유가 아닙니다. 절차죠.”

분노가 치솟았다. 정확히는 야엘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말이 정확히 찌른 자리를 향한 분노였다. 이리아는 자신이 시연을 설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유리벽 뒤에 있었다고. 이미 참가자 구성을 문제 삼았다고. 테시에와 이미지 자문위원들, 재현을 위한 온갖 작은 기계가 이리아보다 먼저 테이블을 골랐다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엘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빨리 투명해집니다.” 그녀가 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짊어진 상황을 그들의 몸 너머로 봅니다. 그러고는 그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잊죠.”

투명하다는 단어가 공중에 남았다.

서류들이 부여하던 순수함은 더 이상 없었다. 맑고 이해하기 쉬우며 혼탁함을 걷어 냈다는 뜻이 아니었다. 꿰뚫렸다는 뜻이었다.

마레스코는 서류를 덮었다.

“무엇을 권고하시겠습니까?”

“다음 공개 방송에 대해서요?”

“전체에 대해서요.”

야엘은 빵 두 조각을 바라보았다.

“공적 결정을 도출하는 모든 명료한 방에는 물리적 실행을 책임지는 사람 한 명을 두고, 그에게 중단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카미유가 고개를 들었다.

“중단권이요?”

“네. 장식용 증언도, 일이 끝난 뒤의 서술도 아닙니다. 문장이 지나치게 말끔해지는 순간 멈춰 세울 권리죠.”

이리아에게 거의 미소가 떠오를 뻔했다. 그러다 마레스코가 난점과 반발을 계산하는 모습을 보았다. 통제 불능이라고 외칠 부처들, 책임의 혼란을 들먹일 도지사들, 현장 직원이 촬영 중인 조정 절차를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을 장관실들.

“그렇게 하면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방들도 있을 겁니다.” 그가 말했다.

“아뇨. 팔아먹을 수 없게 되는 연출들이 생길 뿐이죠.”

이번에는 카미유가 기다리지 않고 적었다.

이리아는 야엘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불신을 훼손되지 않은 채 말끔하게 유지해 앞으로를 위해 남겨 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끔함은 이미 무너졌다. 야엘은 이 장치가 보기조차 하지 않고 관통하기 시작한 사람들을 이리아보다 더 잘 변호했다.

그런데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리만 바뀌었다.

빈자리


디저트는 낮은 그릇에 담겨 나왔다. 익힌 배와 가벼운 크림, 잘게 부순 헤이즐넛. 제대로 배가 고픈 사람은 없었다.

마레스코는 카미유에게 남아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양보한 수정이 아니라 온전한 결정처럼 말했다.

“공적 노출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실행 책임자에 관한 항목을 따로 넣죠.”

카미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 반응을 18시까지 반영할 수 있습니다.”

“아뇨.” 야엘이 말했다.

카미유가 눈을 깜박였다.

야엘이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하세요. 18시에 쓰면 잠을 자기도 전에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오늘 밤 읽게 됩니다. 그들은 당신의 신중함은 남기고 피로는 지울 겁니다.”

젊은 여자가 아주 작고 거의 부끄러운 웃음을 흘렸다가 금세 거두었다.

“제 피로는 보고서와 상관없습니다.”

“보고서의 질과 상관있습니다.” 야엘이 말했다.

이번에는 이리아도 마레스코가 그 말을 받아내는 순간을 보았다.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카미유를 조금 새롭게 발견하기라도 한 듯 바라보았다. 이전까지 무심해서가 아니라, 이 건물 전체가 사람보다 직무를 먼저 보도록 그를 훈련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그가 말했다. “아홉 시.”

카미유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무런 장면도, 노골적인 안도도 없는 단순한 감사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깨에서는 억지로 유지하던 긴장의 일부가 풀렸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인간적인 도움이라고 이리아는 생각했다. 거창한 구조도 칭송할 행동도 아니었다. 피로해서는 안 되는 몸으로 정확함에 관한 보고서를 써야 할 사람에게 한 시간을 돌려준 것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설득력 있지 않기를 바랐다.

마레스코는 옆 대기실에서 전화를 받으려고 일어났다. 카미유는 서류들을 모으고 이리아에게 시범실 기록을 보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리아는 오후가 끝나기 전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카미유 뒤로 문이 닫히자 야엘과 이리아는 몇 초 동안 둘만 남았다.

밖에서는 정원사가 빈 손수레를 밀며 다시 창문 앞을 지나갔다.

이리아가 말했다.

“방송 전에 촬영 원본을 요청했군요.”

“네.”

“왜요?”

“방송은 언제나 가장자리에서 거짓말하니까요.”

“명료한 방은요?”

야엘은 냅킨을 접시 옆에 정확히 반으로 접어 놓았다.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는 점심 자리에서 받은 최초의 진짜 선물이었다. 완전한 고백은 아니었지만, 나라가 그녀를 재료 삼아 만들기 시작한 이미지에 난 균열이었다.

이리아가 물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이용할지 압니까?”

야엘은 웃지 않았다.

“물론이죠.”

“그런데도 옵니다.”

“네.”

“왜요?”

야엘은 카미유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있든 없든 그들은 그렇게 할 테니까요. 그리고 때로는 이용당함으로써 어떤 것이 완전히 거짓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이리아를 안심시켜야 했다.

정반대의 효과를 냈다.

“위험한 합리화예요.”

“그렇죠.”

야엘은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당신 것도요.”

이리아의 목덜미가 굳었다.

“내 것이요?”

“명료함이 섬기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장치 안에 남아 있잖아요. 사실일 수도 있죠. 어쩌면 당신이 붙잡혀 있다는 사실에 붙인 명예로운 이름일 뿐인지도 모르고요.”

한순간 이리아는 7번 방의 테시에를 다시 보았다. 아주 살짝 든 턱은 이미 방 밖으로 나가 있었다. 이어서 창가의 마레스코, 회색 파일 앞의 라스쿠르, 자기 사무실의 사라, 공유 표 속의 모드, 유리벽 뒤 접이식 의자에 앉은 제롬 켈리앙이 떠올랐다. 생명을 구하는 일로 시작된 무언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모두 붙잡힌 사람들.

이리아가 대답했다.

“그럼 당신이 붙잡혀 있다는 사실에는 어떤 명예로운 이름을 붙였죠?”

야엘은 처음으로 진짜 침묵을 흘려보냈다. 능숙함을 내세우는 대신 대답이 제 가장자리를 찾는 침묵.

“너무 늦게 보게 될까 하는 두려움.” 그녀가 말했다.

무엇을 너무 늦게 보았느냐고 이리아가 묻기도 전에 마레스코가 돌아왔다.

그는 첫 번째보다 두꺼운 새 서류철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눈에 띄는 로고 하나 없는 흰 표지. 맨 위에 인쇄된 제목만 있었다.

“지역 조정 - 병원 진료 연속성 및 시설 일부 폐쇄”

다음 방은 문을 열 필요조차 없이 이미 실내로 들어왔다.

마레스코가 자리에 다시 앉았다.

“내일 10시. 제한 명료화 회의입니다. 두 분 모두 참석해 주십시오.”

야엘은 서류에 손대지 않았다.

이리아는 그것을 열었다.

첫 페이지에는 의료기관 세 곳, 계곡 두 곳, 교통망 지도, 이동 시간, 그리고 세상에 요구할 것을 벌써부터 말끔하게 만들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종합 안전 제약하의 합리화.”

이리아는 투명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곧 명료하게 보기 위해 꿰뚫어 버릴 사람들을.

제7장

깨끗한 결정

세 곳의 병원


아홉 시 삼십칠 분, 이리아는 최종 참석자 명단을 받았다.

그녀는 복도에 선 채 커피를 들고 명단을 읽었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엘렌 라스쿠르. 에르베 마레스코. 지역보건청장. 중앙 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 두 계곡 지역의 선출직 대표 두 명. 직원 대표 한 명. 야엘 세레스.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 그럴듯한 직함도 없이 덧붙은 이름 하나.

“라시드 메지안, 야간 후송 실무 조정관.”

이리아의 시선은 그 이름에 머물렀다.

전날 야엘은 공적 결정을 도출할 방이라면 실행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사람 한 명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며, 그에게 발언 중단권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마레스코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 진영을 옹호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말할 사람을 찾아 달라고 비서실에 요청했을 뿐이다.

그들은 라시드 메지안을 찾아냈다.

아니면 짧게 말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를 골랐을지도 몰랐다.

소규모 명료한 방은 누구도 정식 명칭으로 부르지 않는 건물의 삼 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영토 연속성 지원을 위한 부처 합동 센터. 출입증에는 그저 CIAC라고 쓰여 있었다. 약어에는 사물이 냄새를 풍기기도 전에 말려 버리는 장점이 있었다.

이리아는 여느 때처럼, 가능할 때면 늘 그랬듯 가장 먼저 들어갔다.

회의실은 7번 방보다 넓고 새것이었다. 코르크는 없었다. 바닥에는 무광 회색 마감재가 깔려 있었고, 분해할 수 있는 타원형 탁자와 의자 열두 개, 꺼진 화면 두 대, 이동식 패널에 이미 고정된 벽지도가 있었다. 지도에는 생브레뱅데오, 라로크살린, 발두르의 세 병원이 파란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갈색 산괴 양쪽으로 두 계곡이 뻗어 내려갔다. 도로는 야간 소요 시간에 따라 주황색, 빨간색, 보라색으로 그어져 있었다. 어떤 구간에서는 선의 굵기가 거의 상처처럼 보였다.

이리아는 앉지 않고 수치를 읽었다.

발두르: 완비된 의료 기술 시설, 중환자실, 야간 영상의학과, 인력 채용을 전제로 유지되는 수술실.

생브레뱅데오: 이십사 시간 응급실, 위기 수준으로 부족한 비예정 수술 인력, 비상근 마취과 의사.

라로크살린: 명목상의 야간 접수, 불연속적인 의료진 상주, 이차 후송 삼십팔 퍼센트 증가.

서류 어디에도 폐쇄라는 말은 없었다.

조정된 연속성, 수용 역량의 집중, 진료 경로의 안전 확보, 영토별 응급 의료 단계화라는 말만 있었다.

이리아는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문이 열리고 엘렌 라스쿠르가 들어왔다. 짙은색 정장에 장신구 하나 없는 흰 셔츠 차림이었다. 꼿꼿한 피로가 서린 모습은 그녀를 차가운 여자라기보다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는 여자로 보이게 했다. 엘렌은 지도를 본 뒤 이리아를 바라보았다.

“잤어요?”

“조금요.”

“나쁜 징조네요.”

“저한테요, 아니면 이 안건에?”

엘렌은 의자 위에 가방을 놓았다.

“문장에요.”

더 설명하지 않았다. 피로가 때때로 문장을 지나치게 아름답고, 지나치게 단단하고, 밤을 건너왔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진실이라 믿게 만든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마레스코는 야엘과 함께 뒤이어 도착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친밀함에서 오는 침묵은 아니었다.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대화가 막 끝난 뒤의 침묵에 가까웠다.

야엘이 고개를 움직여 이리아에게 인사했다.

“다노 씨.”

“세레스 씨.”

전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명예로운 일격을 한 번씩 남기고 헤어졌다. 오늘 그들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몸이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를 빨간 도로들로 설명하려는 지도 앞에서 다시 만났다.

나머지 사람들이 두셋씩 무리를 지어 들어왔다.

지역보건청장의 이름은 드니 오브레였다. 창백한 얼굴, 훤히 드러난 정수리, 가는 안경. 그는 수년 동안 ‘불충분하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부끄럽다’고 말하지 않는 법을 익혔을 법한 사람이었다.

중앙 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엘리즈 노르망은 짧은 머리에 눈 밑이 갈색으로 그늘져 있었다. 휴대전화를 화면이 탁자를 향하도록 내려놓는 모습은, 세상이 언제라도 다시 전화해 회의에 참석한 것을 책망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생브레뱅데오 시장 뤼시앵 마르는 편지로 부풀어 오른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모직 재킷, 두툼한 손, 머릿속으로 이미 똑같은 싸움에 여러 번 패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라로크살린 시장 오딜 가르상은 거의 무례하게 느껴질 만큼 부드럽게 모든 사람과 악수했다. 거의 웃지 않았지만 얼굴은 열린 채였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는 장면 속으로 들어가기를 아직 거부하는 것처럼.

직원 대표 티에리 카펠은 먼저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상대가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렸다. 가운을 벗고 짙은색 스웨터를 입은 그는 어깨가 넓고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희미하게 병원 비누와 식은 담배 냄새가 났다.

라시드 메지안은 정확히 정시에 마지막으로 도착했지만, 제대로 된 방에 들어올 허가를 받기 전에 다른 일을 마무리해야 했던 사람처럼 보였다. 쉰쯤 되었을까. 검은 점퍼, 지친 구두, 짧은 수염. 서류철 대신 아주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뒤따라온 비서가 뒤쪽 의자를 가리키려 했다.

야엘이 그 모습을 보았다.

“메지안 씨는 탁자에 앉습니다.”

비서가 얼어붙었다.

마레스코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덧붙였다.

“내 오른쪽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주 미세한 변화가 방 안을 스쳤다. 승리는 없었다. 불편함의 자리만 옮겨졌다. 라시드 메지안은 마레스코의 오른쪽에 앉아 작은 수첩을 앞에 놓은 뒤 지도를 바라보았다. 등과 다리와 피로로 이미 느껴 본 길을 보는 듯했다.

엘렌 라스쿠르가 문을 닫았다.

“시작하겠습니다.”

밤길


첫 삼십 분은 명료한 방 같지 않았다.

명료한 방이 막기 위해 만들어진 바로 그것과 닮아 있었다.

지역보건청장은 흠잡을 데 없이 신중한 태도로 수치를 제시했다. 의료진 결원율. 채우지 못한 당직. 이차 후송. 세 병원이 공식적으로는 모두 문을 열었지만 실제로 완전한 의료진을 갖춘 곳은 하나뿐이었던 밤의 수.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더 나빴다.

시장들은 죽을지도 모르는 자기 지역 사람들을 내세워 답했다.

뤼시앵 마르는 트랙터에서 떨어진 아이, 호흡곤란에 빠진 전직 광부, 고갯길이 파리 기술자의 농담으로 변해 버리는 겨울에 관해 말했다. 오딜 가르상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지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마을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퐁라즈. 레보리. 오트푀이유. 급류 위쪽의 오래된 요양원.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정말로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때에야 구조를 요청하는 노인 여성들이 사는 레팽 지구.

티에리 카펠은 그 말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뒤 입을 열었다.

“우리 팀은 쓰러지고 있습니다.”

지쳤다고 하지 않았다. 전선을 말하듯 쓰러진다고 했다.

“우리는 누더기 같은 근무표와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전공의들, 다른 곳에서 당직을 마치고 백이십 킬로미터를 달려오는 의사들로 밤을 버팁니다. 세 병원이 존재하는 척하고 있어요. 표지판에는 존재합니다. 복도에는 없습니다.”

표지판이라는 말에 방 안에서 소리 없는 떨림이 일었다. 마음속으로 한 걸음 물러서는 움직임이었다.

이리아는 손들을 보고 있었다.

지역보건청장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 손가락은 깍지를 낀 채였고 엄지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뤼시앵 마르는 자신도 모르게 편지 한 귀퉁이를 구기고 있었다. 오딜 가르상은 두 손을 탁자에 평평하게 놓았지만 새끼손가락이 아주 희미하게 떨렸다. 엘리즈 노르망은 지도를 거의 보지 않았다. 출구들을 보았다. 문, 유리 너머 복도, 뒤집어 놓은 전화기.

라시드 메지안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야엘도 마찬가지였다.

열 시 사십이 분, 이리아가 걷기를 요청했다.

소규모 방의 절차에는 없는 일이었다. 엘렌이 그녀를 보았다. 마레스코도 보았다.

“삼 분만요.”

지역보건청장은 놀란 기색이었다.

“일정이 상당히 빠듯합니다만.”

“그러니까요.”

친절한 대답은 아니었다. 이리아는 곧바로 후회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때문에. 그 대답에 지나치게 큰 만족을 실었기 때문이다.

야엘이 가장 먼저 일어섰다.

그다음은 라시드 메지안이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달리 선택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리아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천천히 탁자 주위를 걸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심오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몇 분 동안만이라도 몸이 서류 뒤에 숨기를 멈추게 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에 방은 저항했다.

뤼시앵 마르는 자신이 불신하는 의식에 끌려 들어가기를 거부하듯 걸었다. 드니 오브레는 시장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바닥만 보았다. 티에리 카펠은 살짝 절었다. 오래된 부상 때문일 수도, 복도에서 너무 오래 서서 기다린 탓일 수도 있었다. 엘리즈 노르망은 곧바로 걸음을 찾았지만 호흡은 여전히 지나치게 짧았다.

이리아는 야엘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걸음에는 특별한 우아함이 없었다.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초자연적인 존재감도, 사람을 감싸는 평온도 없었다. 다만 아주 낮게 몸을 낮추고 모은 듯한 집중이 있었다. 말해지지 않은 말보다 각자의 몸이 아직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지점을 듣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바퀴에서 라시드 메지안은 지도 앞을 지나다 속도를 늦췄다.

반걸음.

그뿐이었다.

이리아도 보았다. 야엘도 보았다.

세 번째 바퀴에서 이리아는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무도 바로 앉지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

“어디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죠?”

이번에는 아무도 질문에 놀란 듯 보이지 않았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명료한 방의 문장들이 벌써 널리 퍼지기 시작해, 누구나 자신에게 어떤 형태의 진솔함이 기대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지역보건청장이 먼저 답했다.

“지도는 시간에 관해 거짓말합니다.”

“어떻게요?”

“평균 소요 시간을 보여 줄 뿐, 실제로 보장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눈, 안개, 여름철 정체, 공사, 차량 부족까지 고려하면 현실의 편차가 훨씬 큽니다.”

그는 진실을 말했지만 부록처럼 말했다.

오딜 가르상이 덧붙였다.

“두려움에 대해서도 거짓말해요.”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오트푀이유에서 혼자 사는 여자는 진료 단계화 도표를 읽지 않아요. 그저 길 끝에서 응급실의 파란 불빛을 더는 볼 수 없으리라는 것만 알죠. 실제 치료는 다른 곳에서 더 낫다 해도, 자신이 아직 의지하던 증거 하나를 빼앗기는 거예요.”

그 말은 예상보다 부드럽게 방 안에 닿았다.

뤼시앵 마르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감사를 담아 한 말은 아니었다. 상처를 건드리되 곧바로 붕대를 대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 건네는 고마움이었다.

마레스코가 라시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메지안 씨는요?”

라시드는 수첩을 본 뒤 지도를 보았다. 수첩을 펼치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관해 거짓말합니다.”

“무엇이 돌아오는 길이죠?” 엘렌이 물었다.

“팀들요.”

그는 방의 어조를 흉내 내려 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데려가는 시간은 계산합니다. 하지만 다시 출동 가능한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은 덜 계산해요. 구급차 한 대가 발두르까지 올라간다는 건 환자에게 사십팔 분이 걸린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차가 두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 곁에 없다는 뜻이죠. 밤에 이 지역 전체에 두 대밖에 남지 않았을 때는 모든 게 달라집니다.”

지역보건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용성 모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시드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거친 말투는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내주지 않으려는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칸 하나에는 들어가 있죠. 밤 속에는 없습니다.”

서류의 윤기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중단할 권리


열한 시 이십 분, 첫 번째 결정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에 띄운 사람은 없었다. 엘렌이 메모를 보며 소리 내어 읽었다. 적어도 비겁함이 완전히 숨어 버리는 것만은 막아 주는, 메마른 정직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생브레뱅데오와 라로크살린 병원의 야간 비예정 환자 접수 중단. 중증 응급 환자를 발두르에 집중. 간호 인력 중심의 전진 시설 두 곳 유지, 주간 의료진 상주 강화, 이동 대기 체계, 겨울철 도로 우선 관리, 육 개월 후 재평가.”

침묵이 뒤따랐다.

텅 빈 침묵이 아니었다. 방금 단어 하나하나가 지워 내는 법을 익힌 것들로 가득했다.

폐쇄는 중단이 되었다.

밤은 야간이 되었다.

병원은 시설이 되었다.

두려움은 육 개월 후 재평가가 되었다.

뤼시앵 마르는 눈을 감았다.

오딜 가르상은 눈을 뜬 채였다.

티에리 카펠이 숨을 내뱉었다. 웃음에 가까웠다.

“됐네요. 성공하셨습니다.”

“무엇을요?” 엘렌이 물었다.

“폐쇄라는 말 없이 폐쇄하는 데.”

드니 오브레가 말을 꺼냈다.

“용어는 수정할 수 있습니다만…….”

“문제는 용어가 아닙니다.” 야엘이 말했다.

모두가 그녀를 향했다. 회의가 시작된 뒤 그녀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폐쇄라고 하면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을 겁니다. 중단이라고 하면 거짓말한다는 비난을 받겠죠. 문제는 어느 비난을 받아 마땅한가입니다.”

마레스코는 웃지 않았다. 이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말이었다. 폭력에 고결해질 수도 있는 형태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엘렌은 종이 위의 문장 하나를 그었다.

“그렇다면 야간 폐쇄.”

뤼시앵 마르가 눈을 떴다.

“그걸 진전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아니요.” 엘렌이 말했다. “조금 덜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부릅니다.”

말이 제대로 들어갔다. 엘렌은 다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첫 번째 쓸데없는 거짓말을 거부했다.

논의는 더 거칠게 이어졌다.

차량 이야기가 나왔다. 제설 우선순위. 전공의 숙소. 후속 치료 병상. 소방대와의 협약. 라로크살린에 혼자 남은 의사가 호흡곤란 환자 곁에 있을지, 이십 킬로미터 떨어진 교통사고 부상자를 보러 갈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 이 년 전 죽은 열일곱 살 소년 이야기도 나왔다. 병원이 너무 멀어서가 아니라, 그를 제대로 받아 줄 능력이 없는 병원이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죽은 소년이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엘리즈 노르망이었다.

미리 준비한 말이 아니었다. 들으면 알 수 있었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는 지역 응급실이 아무 소용 없었다고 쓰고 싶어 하지 않아서 우리 병원에 십오 분을 붙잡아 뒀어요. 십오 분입니다. 그 뒤 발두르로 이송했죠. 수술실에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뤼시앵 마르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 짐까지 우리에게 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엘리즈 노르망이 대답했다.

“시장님께 지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제가 지고 있어요.”

침묵이 달라졌다.

이리아는 명료한 방이 아직 스스로를 꾸미지 않을 때의 모습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긴장이 가라앉는 장소가 아니라, 더는 엉뚱한 대상을 향하지 않는 장소.

마레스코가 오 분간 쉬자고 했다.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모두 서 있거나 앉은 채, 아무에게도 휴식이 되지 않는 휴식 시간 특유의 기묘한 불편함 속에 머물렀다.

라시드 메지안이 작은 수첩을 집었다. 처음으로 펼쳤다. 이리아가 보니 문장은 거의 없었다. 시간, 이니셜, 도로 번호, 짧은 메모뿐이었다. 어는 비, 지원 불가, 가족 현장 대기, 들것 끼임.

회의가 재개되자 엘렌이 문안을 고쳤다.

“생브레뱅데오와 라로크살린의 야간 응급 접수 폐쇄. 간호 인력이 담당하는 전진 구조 거점 두 곳, 강화된 이동 근무 체계, 발두르 우선 출동 절차를 동시에 마련. 사십팔 시간 안에 대국민 발표. 도지사 권한 아래 지역 지원 시행.”

더 나은 문안이었다.

동시에 더 날카로웠다.

이리아는 라시드를 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메지안 씨.”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에게는 중단할 권리가 있어요.”

방 안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날 정해진 원칙이 갑자기 현실이 된 데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라시드는 마레스코를 보았다.

마레스코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러자 라시드는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렇다면 중단하겠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폐쇄를 중단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타협안을 중단하겠습니다.”

뤼시앵 마르가 몸을 세웠다.

“뭐라고요?”

라시드는 시장을 보지 않았다. 지도를 바라보았다.

“전진 거점 두 곳은 실제 인력과 거리, 없는 숙소, 사람들이 이미 맡기를 거부하는 야간 근무를 생각하면 유지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거점 두 곳을 발표하겠죠. 석 달 동안은 어떻게든 때울 겁니다. 넷째 달에는 한 사람이 모자랄 겁니다. 다섯째 달에는 다른 곳에서 이미 한 주 내내 일한 직원들을 돌려 쓸 테고요. 여섯째 달이 되면 두 개의 큰 거짓말 대신 두 개의 작은 거짓말을 다시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지역보건청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전망 자료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전망 자료가 운전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말은 지금까지의 어떤 말보다도 날카롭게 잘라 냈다.

라시드가 말을 이었다.

“야간 전진 거점은 하나여야 합니다. 이동식으로. 두 곳이 아니라요. 날씨, 계절, 행사, 가용 인력에 따라 위치를 바꿔야 합니다. 직접 출동 명령 권한도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두 병원의 야간 접수는 정말로 닫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안심시키겠다고 불을 켜고 그 뒤에 누군가를 앉혀 두면 안 됩니다.”

오딜 가르상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뤼시앵 마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 불빛을 일부러 꺼 버리자는 말입니까?”

그제야 라시드가 그를 보았다.

“네.”

그 말이 끔찍한 것은 잔인해서라기보다 너무도 말끔해서였다.

“거짓말하는 불빛은 사람들을 엉뚱한 곳으로 끌어들입니다. 두려우니까 그곳으로 와요. 이십 분을 잃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길에 올려 보내죠. 저는 차라리 사람들이 집에서 두려워하고, 우리가 곧바로 올바른 곳으로 출발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말은 벌써 나라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리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할지 보였다. 누군가는 용기라 부를 것이다. 누군가는 버림이라 부를 것이다. 방송 토론은 거짓말하는 불빛을 좋아할 것이다. 제목은 쉽게 뽑힐 터였다. 도표는 완벽할 것이다.

야엘은 다정함 없이 라시드를 바라보았다.

매서움도 없었다.

자신은 내놓고 싶지 않았을 어떤 형태의 진실을 알아보는 듯했다.

티에리 카펠이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사람 말이 맞습니다.”

뤼시앵 마르가 상처받은 얼굴로 그를 향했다.

“너까지?”

“저니까 더 잘 압니다. 동료들은 거점 두 곳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할 수 있다고 말하겠죠. 그러다 부서질 겁니다. 그들이 부서지면 길도 가족들도 모르는 임시 인력으로 대체될 테고요. 더 나빠질 겁니다.”

오딜 가르상이 물었다.

“그럼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하죠?”

방 안의 시선이 지도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야엘이 말했다.

“상징적인 안전이 실제 안전을 해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을 거둬 간다고 말해야죠.”

이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옳은 말이었다.

견딜 수 없었다.

깨끗한 결정


최종 결정은 열두 시 십팔 분에 내려졌다. 표결한 것도, 억지로 빼앗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려졌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두려운 점이었다.

강행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다. 아무도 승리를 자축하지 않았다. 방을 나가겠다고 위협했던 뤼시앵 마르조차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딜 가르상은 거의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첫 공식 설명회를 도청에서 열지 말고 같은 날 두 계곡에서 똑같은 말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레스코는 받아들였다.

엘렌은 비서가 옮겨 적기 전 손으로 종합안을 작성했다.

“생브레뱅데오와 라로크살린 응급 접수처의 실질적인 야간 폐쇄. 중증 응급 환자를 발두르에 집중. 실무진이 직접 조정하며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야간 이동 거점 신설. 도로 및 기상 대응 우선순위 강화. 만성질환 환자와 고립된 주민을 위한 지원 전담반. 삼 개월 후 공개 평가.”

뼈 주변에 군살은 거의 남지 않았다.

이리아는 거짓말을 찾았다.

자신이 바랐던 것보다 적게 발견했다.

가혹한 결정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패배로 받아들여질 터였다. 아직 자신들이 산 사람들의 편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던 파란 불빛을 두 도시에서 앗아 갈 것이다. 지역 야당에는 멋진 장면들을 안겨 줄 터였다. 닫힌 문, 빗속에 선 선출직 대표들, 저녁 여덟 시에 불 꺼진 응급실 표지판 앞의 노인 여성들.

그런데도 그 문장 밑에는 하나의 필요가 버티고 있었다.

아름다움도 평화도 아니었다. 버텨 내는 힘이었다.

그제야 방은 이리아가 아직 이름 붙일 줄도 몰랐던 확신 하나를 앗아 갔다.

그녀는 구체적인 현실이 돌아오면 깨끗한 결정에 흠집이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그것을 정제했다.

도덕적인 의미에서 순수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반박하는 쪽도 거짓말하지 않고서는 반박하기 어려운 결정으로 만든 것이다.

라시드 메지안은 마지막 쿠션들까지 걷어 내려고 중단권을 행사했다. 티에리 카펠은 그의 말을 확인해 주었다. 엘리즈 노르망은 이 년 전 죽은 소년을 논의 속으로 데려왔다. 오딜 가르상은 두려움에 이름을 붙였다. 뤼시앵 마르는 모욕을 떠안았다. 그런데 방은 더 부드러운 해법을 향해 열리는 대신 더 벌거벗은 문장을 만들어 냈다.

다른 사람들이 문안을 다시 읽는 동안 야엘이 이리아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누군가가 실제로 그 자리에 있으면 이런 결정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가끔은 그래요.”

그 양보가 이리아를 놀라게 했다.

야엘은 지도를 보았다.

“현실이 언제나 사람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아요. 때로는 현실을 알고서도 선택한 것에 더 큰 책임을 지게 할 뿐이죠.”

“그런 논리로는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어요.”

“네.”

또다시 아무런 방어도 없는 ‘네’였다. 이리아는 다른 사람들의 확신만큼이나 그 대답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을 하죠?”

“그 반대도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요.”

이리아는 야엘의 시선을 따라 뤼시앵 마르를 보았다. 이제 그는 닫힌 서류철을 무기처럼이 아니라 돌아가며 짊어져야 할 무게처럼 품고 있었다.

“이 결정이 옳다고 생각해요?” 이리아가 물었다.

야엘은 한참 뒤에야 답했다.

“다른 결정들보다 덜 거짓되다고 생각해요.”

충분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방이 줄 수 있는 전부였는지도 몰랐다.

마레스코는 모두에게 최종 종합안을 다시 읽으라고 했다.

종이가 라시드 앞에 오자 그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단어 하나를 그었다.

엘렌이 몸을 기울였다.

“어느 단어요?”

“지원입니다.”

“왜죠?”

“그렇게 쓰면 누군가가 그들과 함께 걸어 줄 거라고 모두가 생각할 겁니다. 사실이 아니죠. 우리는 정보를 주고, 전화를 걸고, 길을 안내하고, 어쩌면 신청서 작성을 도와줄 겁니다. 그들과 함께 걷지는 않을 겁니다.”

엘렌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대신 어떤 말을 쓰면 좋겠습니까?”

라시드는 생각했다.

“관리. 덜 아름다운 말이죠. 그러니 더 정직합니다.”

마레스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성질환 환자와 고립된 주민 관리.”

지원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그 단어가 지나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삭제되었다. 이리아는 의심하는 법을 배운 단어인데도 어처구니없는 슬픔을 느꼈다. 문장은 온기를 잃은 만큼 정확해졌다.

최종 문서는 한 장이었다.

단 한 장.

열두 시 삼십육 분, 엘렌 라스쿠르가 전달 승인을 위해 서명했다. 드니 오브레도 서명했다. 마레스코는 페이지 아래쪽에 손으로 메모를 덧붙였다.

“최적화라고 발표하지 말 것. 무엇이 닫히는지 말할 것. 무엇이 버티는지 말할 것. 누가 밤을 짊어질지 말할 것.”

이리아는 그 문장을 보았다.

미워할 수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회의가 끝난 뒤 복도에서 뤼시앵 마르는 엘리베이터 근처에 서 있던 라시드 메지안을 따라잡았다.

이리아는 엿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들렸다.

“우리 동네에 와서 직접 말해 주겠습니까?” 시장이 물었다.

라시드는 작은 수첩을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네.”

“저 사람들과 말고요. 나와 함께.”

라시드는 마레스코를 보고, 야엘을 보고, 이리아를 보았다. 허락을 구해서가 아니라 방금 자기 위로 떨어진 무게가 얼마나 더 무거워졌는지 가늠하려는 눈길이었다.

“네.” 그가 다시 말했다.

뤼시앵 마르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누구와도 악수하지 않고 떠났다.

오딜 가르상은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빈 회의실에 남았다.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첩을 가지러 돌아온 이리아는 세 개의 파란 점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지도를 치울까요?” 이리아가 물었다.

“아니요.”

시장은 종이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라로크살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리가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이 결정한 정확한 장소를 보고 싶을 뿐이에요.”

이리아는 아무 대답도 찾지 못했다.

오딜 가르상이 희미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쩌면 저들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건 알아요.”

그녀는 외투를 다시 입었다.

“내가 저들을 원망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고요.”

오딜이 나가자 이리아는 지도 앞에 홀로 남았다.

빨간 도로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치도 마찬가지였다.

방은 제 일을 했다. 소음과 거짓말과 지나치게 손쉬운 위안을 걷어 냈다. 위선적인 결정을 막았다. 밤을 짊어질 이들에게 자리를 주었다. 어쩌면 지금 가능한 단 하나의 진지한 문장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도 방은 들어올 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리아는 모드가 너무 오래 붙들었던 음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너무 늦게 보게 될까 두려워하던 야엘을 생각했다.

탁자 위에서는 최종 종합안이 흰 서류철 안에 담긴 채 기다리고 있었다.

깨끗한 결정.

이제부터는 그런 결정도 두려워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제8장

상층의 방

무엇이 닫히는지 말하기


보도자료는 다음 날 열일곱 시에 배포되었다.

비서실들이 자신들이 지켜 내지 못한 것을 나라의 피로가 삼켜 주기를 바라는 열여덟 시도 아니었고, 다른 위기 뒤에 숨기 좋은 금요일도 아니었다. 대낮의 목요일, 뻣뻣한 솔로 씻어 낸 말들과 함께였다.

“생브레뱅데오와 라로크살린 응급 접수처의 실질적인 야간 폐쇄.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야간 이동 거점 신설. 만성질환 환자와 고립된 주민 관리 강화.”

이리아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화면으로 글을 읽었다.

폐쇄라는 말을 남겼다.

관리라는 말을 남겼다.

밤이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마레스코가 손으로 쓴 문장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문장이 보도자료를 아래에서 받치고 있었다. 무엇이 닫히는지 말할 것, 무엇이 버티는지 말할 것, 누가 밤을 짊어질지 말할 것.

몇 분 동안 이리아는 느끼지 않는 편이 나았을 감정을 느꼈다.

존중이었다. 결정 자체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행정부가 손실을 빠뜨려 익사시키는 따뜻한 거품으로 이 결정을 감싸지 않은 데 대한 존중이었다. 모든 것을 말한 글은 아니었다. 어떤 공문도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상보다 덜 거짓말했다.

열일곱 시 십이 분, 첫 영상들이 도착했다.

도청은 두 계곡에 소규모 인력만 보냈다. 커다란 연단도, 파란 배경도, 줄지어 선 마이크도 없었다. 먼저 생브레뱅데오의 시립 체육관, 그다음 라로크살린의 마을 회관이었다. 플라스틱 의자, 형광등, 어깨에 아직 점퍼를 걸친 사람들, 단상 없이 선 지역 선출직 대표들. 뤼시앵 마르가 굳은 얼굴로 서류철을 두 손에 든 채 먼저 화면에 나타났다. 그의 오른쪽에는 라시드 메지안이 있었다.

그는 정장을 입지 않았다.

이리아는 거의 우스울 만큼 안도하며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전날과 같은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의 구두에는 카메라가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해도 완전히 지워 내지도 못하는 도로의 피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뤼시앵 마르가 발언권을 넘기자 그는 기자들을 보지 않았다.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보았다.

“여러분을 안심시키던 불빛 하나를 끕니다.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불빛이 때때로 여러분을 왜 엉뚱한 곳으로 보냈다고 판단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리아의 사무실에서 영상이 살짝 흔들렸다. 접속 상태가 나빴거나 촬영자의 손이 떨렸을 것이다.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많지는 않았지만 충분했다.

한 여자는 남편이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때 누가 오느냐고 물었다. 한 남자는 노인들은 덜 시끄럽게 죽으니 언제나 밤부터 없앤다고 소리쳤다. 누군가는 라시드를 배신자라 불렀다. 뤼시앵 마르가 대답하려 했다. 라시드가 작은 손짓으로 그를 막았다.

“제가 올 겁니다.”

회의장이 일 초간 조용해졌다.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그 대답이 당장 거부하기에는 맞지 않는 자리에 놓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제가 직접 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부서가 갑니다. 제 번호로 연락하고, 제 팀이 출동합니다. 이 체계가 버티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부처 담당자의 이름보다 제 이름을 먼저 알게 될 겁니다.”

이리아는 눈을 감았다.

바로 이것이었다.

권력은 얼굴보다 더 나은 것을 찾아냈다.

자기가 바라지 않은 결정을, 다른 선택들보다 덜 거짓되다고 믿는다는 이유로 기꺼이 짊어지는 사람을 찾아냈다.

열일곱 시 사십 분, 내부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용기 있는 진행입니다.

놀랄 만큼 성숙한 표현입니다.

비방어적 소통의 모범입니다.

현장 반응을 지켜봐야 하지만 전국적인 평가는 긍정적입니다.

열여덟 시, 한 시사 평론가가 “차분한 용기”라고 말했다. 열여덟 시 십칠 분, 야당 의원 한 명은 정부가 “자각하는 버림”을 발명했다고 비난했다. 열여덟 시 이십오 분, 공영 방송은 “더 잘 폐쇄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토론을 시작했다.

이리아는 답을 듣기 전에 화면을 껐다.

검어진 화면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라는 벌써 명료한 사람들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표현된 상실까지 찬양하기 시작했다.

전화기가 울렸다.

마레스코의 메시지였다.

“내일 8시 15분. 총리실. 상층 회의실.”

이리아는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문장 사이에서 물음표를 찾아낼 수 없었다.

고도만 있었다.

상층 회의실


상층 회의실은 이리아가 상상한 의미에서 높은 곳이 아니었다. 웅장한 천장도, 금장식도,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큰 창문도 없었다. 별관 꼭대기 층, 좁은 계단 두 개와 새것처럼 보이려는 노력을 오래전에 포기한 카펫 복도를 지나야 나오는 다락 아래 공간이었다. 상층이라 불린 것은 특별 출입증 없이는 도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지, 무엇이든 내려다볼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리아는 오히려 그것이 더 불안했다.

프랑스에서 정말로 강력한 장소들은 때때로 임시 공간처럼 보이기를 좋아했다.

이리아가 들어갔을 때 마레스코는 이미 엘렌 라스쿠르, 총리 보좌관 두 명, 드니 오브레, 이리아가 모르는 여자 한 명과 함께 와 있었다. 야엘 세레스는 펼친 서류도 없이 벽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탁자에는 짙은 남색 서류철들이 놓여 있었다.

제목은 한 줄이었다.

“상층의 방 - 사전 설계”

이리아는 자기 것을 건드리지 않았다.

엘렌이 그녀의 시선을 보았다.

“명칭은 확정되지 않았어요.”

“유감이네요.” 이리아가 말했다. “벌써 거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데.”

보좌관 한 명이 조심스럽게 웃었다.

마레스코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명칭이 우리 대신 말하기 전에 논의해야 합니다.”

낯선 여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클레르 보드랑, 정부 사무총국 제도전망실. 낮고 정확하고 거의 거친 데가 없는 목소리였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은 모든 종이를 다음 장과 나란히 정렬했다.

“몇 달 전부터 명료한 방들은 처음 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민감한 조정 사안은 이제 지역이나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여러 부처와 영토 전체, 서로 모순되는 시간 계획이 얽힐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돌릴 수 없는 정치적 위기로 번지기 전에 다룰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기구가 필요합니다.”

이리아가 물었다.

“국가 명료한 방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이었다.

클레르 보드랑이 종이를 한 장 넘겼다.

“상임 참석자들과 사안에 따라 소집되는 사람들로 구성된 최종 심급의 방입니다. 이 기구의 역할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한 결정이 내려질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정권자들이 결정하기 전에 결정하는 곳이군요.”

웃었던 보좌관은 웃음을 거두었다.

마레스코가 말했다.

“위험은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이리아가 말했다.

너무 빨리 튀어나온 말이었다.

야엘이 자신을 향해 눈을 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리아는 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위험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에요. 안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리아는 자기 문장이 얼마나 쉽게 그럴듯해질 수 있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그런데도 엘렌은 두 손을 모았고, 클레르 보드랑은 펜을 내려놓았으며, 아무도 미소로 문장을 치워 버리려 하지 않았다.

마레스코는 이리아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인내는 결코 완전히 미덕이지도, 완전히 무기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는 짙은 남색 서류철을 열었다.

안에는 단순한 보고서만 있지 않았다. 설계안이 들어 있었다.

회부 절차. 기준 목록. 구성도. 인물 인증표. 기밀 유지 방식. 지연 공개 절차. 시험 운영 일정.

권력의 논리는 이토록 단순했다. 어려운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작동하면 누군가가 그것을 위해 사무실을 설계한다.

이리아는 첫 줄들을 읽었다.

상층의 방은 보건, 에너지, 국내 치안, 핵심 자원, 지역 붕괴, 민감한 유럽 협상, 서서히 진행되는 재난 등 “다중 불가역성”을 지닌 조정 사안에 개입할 예정이었다.

상임 참석자는 아홉 명.

아홉.

결코 그보다 적지 않게.

그들 주위에는 사안에 따라 현장 실무자, 집행자, 간접 피해자, 전문가, 공공기관 대표들을 부른다. 중단권은 유지한다. 치안상 예외를 제외하면 종합안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정치적 결정은 형식상 방 밖에서 이루어진다.

형식상.

쓰여 있지도 않은 단어를 이리아는 발견했다.

엘렌이 말했다.

“옹호할 수 없는 형태가 될 수도, 없어서는 안 될 형태가 될 수도 있는 경계에 와 있어요.”

“둘 다 될 겁니다.” 야엘이 대답했다.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옹호할 수 없게 될 거예요.”

클레르 보드랑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방이 아무 쓸모도 없다면 사라지겠죠. 정말 쓸모가 있다면, 모두가 비극적인 결정을 떠맡기 전에 거쳐 가고 싶어 하는 장소가 될 겁니다.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에요.”

이리아는 다른 누군가가 그 말을 해 주기를 바랐다.

야엘이 아니라.

이토록 정확한 야엘이 아니라.

마레스코는 서류철을 덮었지만 치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두 분을 모두 부른 겁니다.”

그가 더 말하기 전부터 이리아는 알았다.

거부감이 너무 선명하게 온몸을 훑고 지나가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대답처럼 느껴졌다.

“싫습니다.”

마레스코는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 묻지 않았다.

“아직 제안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충분히 들었어요.”

“이리아.”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가까워지려는 몸짓이라기보다 계산된 위험에 가까웠다.

“상임 위원으로 상층의 방에 들어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방이 온전성을 지킬 조건을 정의해 달라는 겁니다.”

“야엘은요?”

침묵이 일 초쯤 지나치게 길었다.

야엘이 직접 대답했다.

“나한테는 들어오라고 하는군요.”

아홉 개의 이름


상임 참석자 아홉 명의 명단은 별도 부록에 들어 있었다.

이리아는 보여 달라고 했다.

클레르 보드랑이 망설였다. 마레스코가 문서를 건네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 장.

아홉 줄.

머리말에는 아직 임명이 아니라 인물 유형에 관한 가안일 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첫 줄에는 야엘 세레스의 이름이 있었다.

전직 실무자. 공적 숙의 경험. 긍정적인 전국 노출도. 높은 언어화 능력. 낮은 방어적 반응성. 정파를 초월한 수용 가능성.

한 여자를 정치적 운반 도구로 바꿔 놓은 그 말들 앞에서 짧고 거의 어린아이 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고는 그런 분노가 지나치게 쉽다고 생각했다.

야엘은 아무 타격도 받지 않은 듯 같은 종이를 읽고 있었다.

나머지 이름들은 덜 알려져 있었다. 사회부 재판부의 전직 재판장. 중환자실 책임자. 농촌 분쟁 조정자. 공공 위험을 연구하는 수학자. 산악구조 책임자. 전직 유럽 협상가. 답변이 지나치게 느려 방송에 거의 초대되지 않는 법철학자. 이리아도 평판만 아는 무보직 도지사 한 명. 강경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자신이 믿지 않는 입장으로는 누구도 밀어붙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 있죠?” 이리아가 물었다.

클레르 보드랑이 대답했다.

“상임 참석자는 국가적 상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에요.”

엘렌도 명단을 보았다.

“국가적 상황이 그 상황을 감당할 줄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되지 않도록 막을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클레르 보드랑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변호하지도 않았다.

마레스코가 말했다.

“실행 담당자와 당사자들은 사안에 따라 소집될 겁니다.”

이리아는 라시드를 생각했다.

그의 작은 수첩을.

그의 중단이 결정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었던 방식을.

“그렇다면 언제나 초대받는 사람일 뿐, 방을 이루는 사람은 아니겠군요.”

보좌관이 대답했다.

“가능한 모든 고통을 상임 기구 안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그런 요구는 하지 않았어요.”

이리아는 명단을 탁자에 놓았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필요할 때 현실을 정중히 맞아들였다가 볼일이 끝나면 밖까지 배웅할 줄 아는 방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방의 온도가 내려갔다.

야엘이 말했다.

“맞아요.”

이리아는 그녀를 향했다.

“그런데도 받아들인다고요?”

“지금은요.”

“왜죠?”

야엘은 명단을 바라보았다.

“내가 거절하면 문제 자체를 보지도 못하는 사람을 찾아낼 테니까요.”

“그런 정당화를 무척 좋아하는군요.”

“네.”

“오래 버틸 수 있겠어요?”

이리아가 알고 지낸 이래 처음으로 야엘은 거의 상처받은 듯 보였다. 방 전체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은.

“모르겠어요.” 야엘이 말했다.

그 대답은 다른 어떤 말보다도 이리아를 불안하게 했다.

엘렌은 문서를 가져와 구성안 아래에 연필로 선을 그었다.

“제약 하나가 빠졌어요.”

클레르 보드랑이 물었다.

“어떤 제약이죠?”

“빈 의자 하나.”

보좌관이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엘렌은 들었다.

“상징이 아닙니다. 규칙이에요. 방이 너무 늦게야 밖에 남겨 두었다는 걸 깨달은 사람을 위한 의자입니다.”

마레스코는 새로운 눈빛으로 엘렌을 보았다.

“그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죠?”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그 질문을 소리 내어 묻기 전에는 회의를 끝낼 수 없게 하는 겁니다.”

이리아 안에 틈 하나가 열렸다. 동의가 아니라, 계속 의심해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야엘이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당연하죠.” 엘렌이 대답했다.

“하지만 방해는 되겠네요.”

“절차에서라면 그것만도 상당한 겁니다.”

건조하고 거의 냉소적인 말이었지만 논의를 닫지는 않았다. 제도는 의도만으로 정의로워지지 않으며, 때로는 제동 장치들의 작은 구조를 통해 나아진다는 것을 아는 여자의 말이었다.

마레스코가 적었다.

“빠진 의자 - 종료 전 의무 질문.”

이리아는 그의 손이 글씨를 쓰는 것을 보았다.

벽 옆에 놓여 있던 제롬 켈리앵의 의자를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비서가 뒤쪽에 앉히려 했던 라시드를.

카메라 앞에서 너무 뻣뻣했던 모드를.

상층의 방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곳에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유 잡음


회의가 벌써 출구를 찾아 헤매기 시작할 때, 클레르 보드랑은 가장 얇은 마지막 서류철을 열었다.

“방법론 문제가 남았습니다.”

야엘은 얼굴이 아니라 자세로 조금 몸을 닫았다.

“무슨 방법론이죠?” 엘렌이 물었다.

“참여 준비 상태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입니다. 이 정도 수준의 방이라면 준비 단계가 더 엄격해야 합니다. 지역의 방들보다는 짧지만 더 까다로워야 하죠. 세 단계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침묵, 걷기, 서사의 박탈.”

“서사의 박탈.” 이리아가 되풀이했다.

목소리에서 경멸을 걷어 내지 못했다.

클레르 보드랑은 평정을 유지했다.

“각 참석자가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서사를 잠시 유보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렇게 쓰세요.”

“용어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벌써 너무 확정돼 버렸어요.”

마레스코가 끼어들었다.

“모두 임시 용어입니다.”

“나쁜 말은 결코 임시로 머물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바꾸지 못할 때만 기다릴 뿐이죠.”

이번에는 야엘이 거의 미소 지었다. 기쁨 없이 짧고 메마르게 건네는 인정이었다.

클레르 보드랑은 종이 한 장을 이리아 쪽으로 밀었다.

“이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절차가 초연함을 연기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질문이었다.

지나치게 좋았다.

이리아는 종이를 집었다.

다음 주로 예정된 시험 회의가 설명되어 있었다. 아직 진짜 상층의 방은 아니고 기술적 사전 모형이었다. 상임 후보자 아홉 명, 관찰자 두 명, 가상 상황 세 가지, 직접적인 결정 사안은 없음. 목표는 상황의 모순에 접근할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집단의 고유 잡음을 줄이는 역량을 평가하는 것.

고유 잡음.

그 표현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리아는 두 번 읽었다.

“누가 썼죠?”

클레르 보드랑이 망설였다.

“실무진이 작성했습니다.”

“누가요?”

마레스코가 대답했다.

“사라 로름이 지나치게 성공적으로 보였던 몇몇 방에 관한 오래된 보고서를 전달했습니다.”

이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사라.

물론이었다.

하층 기록물은 언제나 충분히 감시하지 못한 길을 따라 위로 올라왔다.

“그 보고서는 이런 걸 목표로 만들라고 쓴 게 아니에요.”

“아닙니다.” 마레스코가 말했다.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라고 쓴 겁니다.”

“그걸 평가표에 넣었군요.”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분노보다 깊은 피로가 이리아를 덮쳤다.

어쩌면 국가란 가장 훌륭한 날에 이런 모습인지도 몰랐다. 경고를 신중함의 도구로 바꾸고, 그 도구를 절차로 바꾼 뒤, 그 절차를 자신이 경고에 귀 기울였다는 증거로 바꿀 수 있는 기계.

야엘이 손을 내밀었다.

“봐도 될까요?”

이리아가 종이를 건넸다.

야엘은 움직이지 않고 읽었다. 그러고는 밑줄 친 표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목표가 아니에요.”

마레스코가 물었다.

“그럼 무엇입니까?”

“증상이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야엘이 계속했다.

“잡음이 말끔해진다면, 참석자들이 기대받는 형태의 평온을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에요. 더는 노골적으로 거짓말할 필요가 없죠. 올바른 호흡 속에서 거짓말하게 됩니다.”

이리아는 그 말이 덜 옳기를 바랐다.

클레르 보드랑은 메모했다.

이리아가 그 모습을 보았다.

“감지해야 할 역량으로 적지 마세요.”

클레르가 펜을 들었다.

“위험 요소로 적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렇겠죠.”

의도했던 것보다 단단하게 떨어진 말이었다.

마레스코가 시간을 확인했다.

“시험 회의는 화요일에 열립니다.”

이리아가 물었다.

“누가 관찰하죠?”

“당신입니다.”

이리아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거절하면요?”

“그러면 반론이 조금 덜한 상태로 진행하겠습니다.”

너무 잘 대답하는 그가 미웠다.

엘렌은 짙은 남색 서류철을 덮었다.

“이 장치를 지키는 데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도 필요해요.”

“생각해 둔 사람이 있습니까?” 마레스코가 물었다.

엘렌은 이리아를 보았다.

이번에는 답이 명백했다.

“안 돼요.”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모드 드렌을 생각하고 있잖아요.”

엘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야엘은 이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 앞에서 너무 뻣뻣한 사람.” 그녀가 말했다.

분노가 솟았다가 자리를 옮겼다.

야엘은 비웃고 있지 않았다.

서류를 상기시킨 것이다.

선별을.

흰 종이 위에 검게 적힌 수치를.

마레스코가 물었다.

“그녀가 받아들일까요?”

“아니요.” 이리아가 말했다.

그리고 일 초 뒤 덧붙였다.

“그러니까 물어봐야 해요.”

뒤따른 침묵에는 명료한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뒤엉키고 머뭇거리며 거의 버릇없기까지 했다.

이리아는 아침부터 나온 모든 말보다 그 침묵이 마음에 들었다.

상층 회의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던 이리아는 올라오던 카미유 아르토와 마주쳤다. 젊은 여자는 서류철 세 개를 끌어안고 한 손에는 약국 봉투를 들고 있었다.

“괜찮아요?” 이리아가 물었다.

카미유는 봉투를 보고 서류철들을 보았다.

“둘 중 어느 쪽이 질문에 답하는지 모르겠네요.”

이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약이요.”

“그렇다면 네. 조금은요.”

카미유는 계단에서 숨을 골랐다.

“국가 차원의 방 이야기가 나오고 있나요?”

공식적인 대답은 간단했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밀 유지 원칙대로라면 그 말만 해야 했다.

이리아는 말했다.

“누구보다 먼저 본다고 주장할 방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카미유는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군가를 보지 못하는 데서 시작하겠네요.”

이리아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조도, 심오한 말을 하려는 욕심도 없이 나온 말이었다. 너무 더운 계단에서 팔에 서류철 세 개와 손에 약을 든 피곤한 직원이 무심히 내놓은 한마디.

“그렇겠죠.” 이리아가 말했다.

카미유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이리아는 내려갔다.

밖에서는 건물 정면에 단단한 빛이 내리꽂혔다. 세차된 관용차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타이어에 실린 무게를 볼 수 없는 결정들을 옮길 준비를 한 채.

정문에 닿기도 전에 전화기가 울렸다.

사라의 메시지였다.

“그들이 고유 잡음을 다시 꺼냈다는 소식을 들었어. 어떤 대답도 하기 전에 하층 기록실로 와.”

이리아는 보도 가장자리에서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상층의 방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록들은 아래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제3부

방법에 저항하는 것

제9장

고유 잡음

잘못 정리된 보고서


사라는 사무실에 없었다.

이리아는 지하 이 층 하층 기록실의 긴 탁자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앞에는 갈색 서류철 하나와 벌써 차갑게 식은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뒤팽은 옆쪽 선반에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엿듣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한마디도 놓치지 않을 만큼 가까운 곳에 머무는 사람 특유의 요란한 성실함이었다.

“빨리 왔네.” 사라가 말했다.

“무엇에든 대답하기 전에 오라고 썼잖아.”

“총리실 소환보다는 그 문구에 덜 우쭐해지길 바랐지.”

이리아는 외투를 벗었다.

탁자에는 수많은 오래된 열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얗게 닳은 모서리, 문질러진 라벨, 너무 오래 눌려 있던 스테이플러 심이 남긴 작은 상처들. 사라는 갈색 서류철 위에 손글씨로 세 단어를 적은 흰 종이를 올려놓았다.

“말끔히 치우지 말 것.”

이리아는 종이를 보았다.

“나한테 하는 말이야?”

“우리 둘에게. 그리고 언젠가 간단한 지시를 읽는 법을 배운다면 국가에도.”

뒤팽이 선반 뒤에서 헛기침했다.

사라가 서류철을 열었다.

“마레스코가 꺼내 간 보고서는 원칙을 정립하려고 쓴 게 아니었어. 내부 문제 보고서였지. 세 쪽짜리였고, 승인받은 적도, 방법론 자료에 편입된 적도, 이 탁자 밖으로 나가게 할 생각도 없었어.”

“그런데 나갔네.”

“누군가 ‘고유 잡음’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모든 자료를 요청했으니까.”

이리아는 자리에 앉았다.

“누가?”

“정부 사무총국의 정책 담당자. 아주 예의 바르고 아주 빨랐어. 아무것도 훔칠 필요가 없는 부류의 사람이지. 도둑질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도장을 이미 갖고 있으니까.”

사라는 첫 장을 이리아 쪽으로 밀었다.

오 년 전 문서였다. 위쪽에는 권위 있어 보이는 로고가 하나도 없었다. 메마른 문구만 있었다.

“동질성 사고 - 결과가 비정상적으로 안정적인 방들”

제목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옆에는 누군가 손으로 이렇게 적었다.

“지나치게 말끔함. 재검토할 것.”

이리아는 사라의 글씨를 알아보았다.

“네가 썼어?”

“응.”

“왜 ‘고유 잡음’이지?”

사라는 대답하기 전에 몇 초를 들였다. 멋진 표현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말이 더는 탈취당할 수 없게 되는 정확한 지점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참석자들에게서 걷어 내는 잡음만 봤으니까. 두려움, 위신,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욕구. 장치 자체가 만들어 내는 잡음은 잊었어. 장치가 품은 기대. 그 아름다움. 어떤 종류의 평온을 보여야 깊은 것으로 인정받는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방식.”

사라는 종이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고유 잡음은 바로 그거야. 방 자체에서 나오지만, 방은 그것을 자기 성공과 혼동하기 때문에 더는 듣지 못하는 것.”

이리아는 첫 줄들을 읽었다.

세 차례의 회의. 서로 다른 세 가지 상황. 똑같은 이상 징후. 빠른 합의, 안정된 호흡, 낮은 언어적 충돌, 매우 긍정적인 사후 평가, 그리고 몇 주 뒤 결정의 뚜렷한 악화.

로슈브륀: 산사태 이후 예방적 이주.

퐁레옹: 오염된 토양 위에 지어진 학교의 임시 폐쇄.

아르즐륀: 지역 병원, 채소 농가, 소방용 저수지 사이의 용수 배분.

“회의록들은 훌륭해.” 사라가 말했다. “결정도 빨리 읽으면 훌륭하지. 변호하기가 거의 지나치게 쉬워.”

이리아는 페이지를 넘겼다.

첫 번째 부록에는 종합문 일부가 실려 있었다. 문장에는 고통을 통과했지만 얼룩 하나 묻히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글 특유의 축축한 윤기가 있었다.

“참석자들은 분산된 손실의 필요성을 함께 인정한다.”

“포기가 방어적 긴장 없이 명명된다.”

“공유된 자각의 분위기 속에서 결정이 도출된다.”

이리아의 어깨가 굳었다.

“누가 이런 걸 쓰지?”

“정말로 옳은 것들을 본 사람들이야.” 사라가 대답했다. “그래서 모든 게 복잡해지는 거고. 무능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냉소적인 사람들도 아니었어. 그저 좋은 방이 남기는 흔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야.”

뒤팽은 더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와 이리아 옆에 내려놓았다.

“자유 의견서입니다. 종합 과정에 들어가지 않은 것들.”

“고마워요.”

“감사하지 마십시오. 누가 물으면 내가 잘못 분류한 겁니다.”

그는 다시 떠났다.

사라가 상자를 열었다.

안의 종이들은 그다지 말끔하지 않았다. 볼펜으로 쓴 것도 있었고, 구술 내용을 옮긴 뒤 손으로 고친 것도 있었다. 끊어진 문장, 아무도 지우지 않은 욕설, 종합문에 넣기에는 너무 구체적인 지적들이 보였다.

이리아는 퐁레옹 서류를 집었다.

결정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인근 중학교로 옮기는 것이었다. 방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너무 빨랐다. 모두가 비용을 받아들였다. 학부모, 시청, 보건기관, 교육청, 운송업체.

한 자유 의견서의 여백에 급식 담당 직원이 적어 놓았다.

“아침에는 안 돼요.”

네 단어.

이리아는 회의록에서 그 내용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찾았다.

이십 쪽 뒤에서 발견했다. 이렇게 변해 있었다.

“가정의 시간적 제약에 유의.”

추가된 이동 시간은 이십칠 분이었다. 차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시립 돌봄교실이 문을 열기도 전에 출발해야 했다. 삼 주 동안 아이들은 너무 이른 시간, 빗속에서 중학교 앞에 홀로 도착했다. 그 정보는 알려져 있었다. 회의 안에 존재했다. 다듬어졌다. 결정과 양립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거야.” 사라가 말했다.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네 단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는 안 돼요.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었다. 빛나는 데도 없고 상징도 없었다. 그저 번역되기를 거부했을 뿐이었다.

지나치게 얌전한 방들


두 사람은 거의 말하지 않고 두 시간 동안 일했다.

로슈브륀의 결정은 도지사들이 교육 자리에서 즐겨 인용하는 것이었다. 산사태가 나기 전에 주민 백팔십 명을 신속히 대피시켰고, 사망자는 없었으며, 지역 반발도 억제했다. 문서상으로는 모범 사례였다.

가공하지 않은 의견들에는 같은 문장이 조금씩 다른 형태로 세 번 등장했다.

“짐승들 얘기는 안 했어요.”

그 짐승들이란 염소 스물아홉 마리, 농장 개들, 닭들, 정해진 시간 안에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늙은 말 두 마리였다. 비탈이 무너질 위험이 있을 때 민방위 보고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몇몇 주민에게 동물을 남겨 둔 채 집을 떠나는 일은 필요한 대피를 굴욕적인 단절로 바꿔 놓았다. 세 가족이 밤에 돌아갔다. 한 가족은 차단선을 강제로 넘었다. 헌병 한 명이 다쳤다. 최종 보고서에는 “출입 금지 구역으로의 비합리적 복귀”라고 적혔다.

사라는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결정에는 동의했어. 하지만 그 결정이 자기들에게 요구한 것에는 동의하지 않은 거야.”

“방은 동의를 들었고.”

“동의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거짓말한 부분은 듣지 못했지.”

이리아는 서류를 덮었다.

아르즐륀은 더 나빴다. 그 결정이 객관적으로 병원을 살렸기 때문이다. 가뭄 동안 방은 의료용수와 소방용수를 확보하려고 농업용수를 크게 줄이기로 조정했다. 채소 농가 사람들은 결국 병원이 온실보다 뒤로 밀릴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회의는 품격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석 달 뒤 농가 두 곳이 문을 닫았다. 가장 침착하게 발언했던 농민 한 명은 당국의 연락에 더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 의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불행 속에서 좋은 자리를 내줬기 때문에 동의했습니다.”

이리아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알고 있었어.”

“응.”

“그런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네.”

“그가 더는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다는 것만 봤으니까.”

사라는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질렀다.

“보통의 방에서는 고함, 과시, 지나치게 번드르르한 저항을 경계하지. 성숙한 방에서는 감탄스러울 만큼 훌륭하게 동의할 줄 아는 사람들도 경계해야 할 거야.”

이리아는 주민들 앞에 선 라시드를 생각했다.

그는 부처 뒤에 숨지 않은 채 밤을 떠안았다. 고결한 행동이었다. 동시에 권력에 거의 완벽한 형태를 부여했다.

차이는 행동의 아름다움에 있지 않았다.

말이 끝난 뒤에도 그 행동에 무엇이 매달려 남는가에 있었다.

라시드는 자신의 이름과 부서, 전화번호를 내주었다. 자신이 명명한 손실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반면 아르즐륀의 농민은 훌륭한 태도로 칭찬받은 뒤 빈 온실과 함께 버려졌다.

이리아가 적었다.

“동의와 비용에 대한 연결을 혼동하지 말 것.”

사라가 어깨너머로 읽었다.

“이건 총리실도 이해하겠네.”

“그럴까?”

“이해는 하겠지.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뒤팽은 유지 보수 라벨이 반쯤 떨어진 낡고 두꺼운 노트북을 가져왔다.

“영상은 여기 있습니다. 네트워크는 끊겨 있고요. 이 기계가 죽는다면 몇몇 책임자들보다 정직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사라가 충전기를 연결했다.

“어느 것부터 볼까?”

“퐁레옹.” 이리아가 말했다.

영상에는 지방의 밝은 회의실이 나타났다. 거의 새것인 가구, 흡음 벽, 바닥의 타원형 카펫. 열한 명이 앉아 있었다. 이리아도 이름을 아는 진행자였다. 아주 유능하다는 평판을 가진 여자.

첫 몇 분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지나칠 만큼, 이리아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손쉬운 생각에 머물지 않으려 했다.

진행자는 침묵이 숨 쉴 시간을 주었다. 말을 거의 바꿔 말하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좀처럼 서로의 말을 끊지 않았다. 한 학부모가 울기 시작했을 때 아무도 성급하게 위로하지 않았다. 보건기관 대표는 자신에게도 방어 가능한 결정을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인정했다. 시장은 위험을 숨겼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모두 옳은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급식 담당 직원이 말했다.

탁자 끝에 앉은 여자는 파란 스웨터를 입고 두툼한 손을 모으고 있었다. 가슴에는 아직 명찰이 달려 있었다. 아이들과 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잘 안다는 이유로 초대된 사람이었다. 그는 한참 기다린 끝에야 통학버스 논의를 끊고 말했다.

“아침에는 안 돼요.”

진행자가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버스가 돌봄교실보다 먼저 출발하면 돌봄교실 아이들은 못 타잖아요.”

“그러니까 시간 연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직원은 두 손을 꽉 맞잡았다.

“아니요. 안 된다는 말이에요.”

운송업체 대표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운행 구간에서 아마 팔 분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학부모는 눈물을 닦았다.

“팔 분으로는 부족해요.”

진행자가 적었다.

“이 문제를 중대한 제약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중대한’이라는 말이 제 역할을 했다. 모두가 경고를 존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회의는 계속되었다.

이리아가 영상을 멈췄다.

화면 속 급식 담당 직원은 아직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말이 끝나지 않았어.” 이리아가 말했다.

사라는 팔짱을 꼈다.

“응.”

“옳다고 인정해 주고 다음으로 넘어갔어.”

“바로 그거야.”

이리아는 영상을 이십 초 되돌린 뒤 다시 재생했다.

이번에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누구도 폭력적으로 굴지 않았고 직원을 업신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방은 그녀에게 정확하고 명예롭지만 불충분한 자리를 내주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반영해야 할 제약으로 바꾸었다. 이의가 방을 방해할 시간을 얻기도 전에 범주부터 달라진 것이다.

이리아는 다시 영상을 멈췄다.

“고유 잡음은 말에만 있는 게 아니야.”

“그렇지.”

“방이 불편한 것을 자기 체계와 양립 가능하게 만드는 속도에도 있어.”

사라는 다시 안경을 썼다.

“그거 적어. 가능하면 그렇게 우아하지 않은 말로.”

이리아는 거의 웃을 뻔했다.

더 간단히 적었다.

“방을 멈춰 세워야 할 것을 너무 빨리 흡수할 줄 알게 될 때 위험이 시작된다.”

뒤에 있던 뒤팽이 중얼거렸다.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겠군요.”

12번 방


열아홉 시가 되자 사라는 서류를 덮으려 했다.

이리아는 영상 하나만 더 보자고 했다.

“기록물 말고.”

“그럼 뭘?”

“최근 회의. 교육이나 인증 영상. 화요일에 하려는 것과 비슷한 걸로.”

사라가 뒤팽을 보았다.

뒤팽이 두 손을 들었다.

“나는 기록관리자이지 마술사가 아닙니다.”

그러고는 서랍을 열어 라벨 없는 저장장치 하나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12번 방. 어제 아침. 고급 진행자 교육. 가상 상황은 제방 붕괴, 대피, 복귀 우선순위입니다. 교육 평가가 끝난 뒤 삭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라는 그를 보았다.

“교육 회의까지 보관해요?”

“사람들이 자기 방법론을 자랑스러워하며 지우는 것은 보관합니다.”

이리아는 저장장치를 연결했다.

12번 방은 7번 방과 많이 닮았지만 더 예뻤다. 더 밝은 나무, 더 잘 조정된 조명, 덜 딱딱한 의자. 교육 중인 진행자 여섯 명과 관찰자 두 명, 시민단체 대표 한 명, 시청 기술부서 직원 한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역할은 나뉘어 있었지만 완전히 허구는 아니었다. 각자는 실제 직업에서 가져온 우선순위를 옹호해야 했다.

시작은 거의 즐거울 정도였다.

제방이 무너진 상황치고는 지나치게 즐거웠다.

문장들이 매끄럽게 나왔다. 모두 자기 해결책을 말하기 전에 두려움에 이름을 붙였다. 자신이 무엇을 통제하지 못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밝혔다. 침묵은 블라인드처럼 정확한 순간에 내려왔다.

“우리보다 낫네.” 사라가 말했다.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청 기술부서 직원을 보고 있었다. 쉰 살쯤, 짧은 수염, 시청 로고가 있는 폴로셔츠, 잔상처가 난 팔뚝. 위축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엉뚱한 곳에 놓인 듯했다. 현장을 말해 달라고 데려왔지만 방은 아직 지도를 더 좋아했다.

논의 주제는 침수 구역으로 주민들을 복귀시키는 일이었다. 진행자 한 명이 우선순위 평가표를 제안했다. 취약성, 접근성, 전기 안전, 학업 연속성.

기술부서 직원이 말했다.

“지하실이 거짓말할 겁니다.”

아무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흔들림은 이의에 기회를 주었다.

수석 진행자가 물었다.

“현장에서 올라오는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지하실이 말라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는 탁자 쪽으로 몸을 숙였다.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낮은 곳, 바로 집 밑에 있기 때문이었다.

“물이 벽 안으로 내려갑니다. 사람들은 집에 돌아와 타일 바닥을 보고 이제 괜찮다고 생각하죠. 사흘 뒤면 악취가 나고 콘센트가 터지고, 노인들은 그 위층에서 잡니다. 지도가 초록색이라고 거리 단위로 사람들을 들여보내면, 아직 물을 숨 쉬고 있는 집에 사람들을 다시 넣게 되는 겁니다.”

그 말은 거친 물질성을 지닌 채 방을 가로질렀다. 냄새까지 풍기는 듯했다.

관찰자 한 명이 아주 빠르게 메모했다.

진행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겉으로 건조된 뒤 검증 대기 기간을 포함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기 말이 벌써 옷을 갈아입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요.” 그가 말했다.

이번에도 공격적인 말투는 아니었다. 실망한 목소리였다.

“지하실을 아는 사람이 당신들 초록색 표시에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금속성 냄새가 밴 나쁜 침묵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리아는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수석 진행자는 열린 표정을 유지했지만 손가락은 펜을 움켜쥐었다.

“바로 그것이 현장 반론 단계의 역할입니다.”

남자는 의자 등받이로 물러났다.

“그럼 그 단계에는 왜 벌써 이름이 붙어 있죠?”

사라가 아주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영상 속에서 누구도 그 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단순히 수정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구조의 말끔함 자체를 공격했다. 반론을 위해 미리 마련한 자리가 실은 받아들인다고 주장하는 반론을 벌써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방의 가치는 바로 이 혼란의 일 분에 있었다. 방은 비틀거렸으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진행자는 펜을 내려놓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그때 목소리에서는 단정함이 조금 사라져 있었다.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제가 방금 너무 빨리 당신을 정리해 버렸군요.”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도요.”

“아니요.” 진행자가 말했다. “아마도가 아닙니다.”

불편함이 찾아왔다. 진짜 불편함이었다. 아무도 치장하려 하지 않았다. 관찰자는 메모를 멈췄다. 시민단체 대표는 자기 손을 보았다. 진행자 중 한 명은 색깔을 없앤 지도로 다시 시작하자고 요청했다.

이리아가 깨닫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았다. 덜 아름다워진 방은 더 잘 움직였다.

평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더는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사라가 영상을 멈췄다.

“이 부분은 교육 보고서에 남기지 않았어.”

“왜?”

“너무 불안정해서. 평가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이리아는 기쁨 없이 한 번 웃었다.

뒤팽이 말했다.

“당신들 언어로는 좋았다는 뜻입니까?”

“언제나 그런 건 아니에요.” 이리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남자가 지하실을 말하는 순간으로 영상을 되돌려 세 번 보았다. 거기서 방법론을 뽑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법론을 만들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고유 잡음은 측정할 범주가 아니었다. 방이 자기 작동 방식에 다시 만족하기 시작하는 순간 알아차려야 할 유혹이었다.

지금 이리아에게 가장 필요한 최고의 방들은 가장 조용하거나 가장 규율이 잘 잡힌 방이 아니었다. 문장이 가장 적은 저항을 뚫고 나오는 방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평온을 망가뜨려도 곧바로 ‘건설적인 기여’로 바뀌지 않는 방이었다.

조건들


이리아는 두 콘크리트 벽 사이에서 신호가 간헐적으로 돌아오는 기록실 복도에서 마레스코에게 전화했다.

그는 금방 받았다.

“사라를 만났군요.”

“네.”

“그래서요?”

“화요일 회의를 관찰하겠습니다.”

한 박자가 흘렀다. 드러내지 않을 만큼 신중한 그의 만족을 이리아는 그 틈에서 들었다.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듣겠습니다.”

이리아는 기록실의 유리문을 보았다. 반대편에서는 사라가 아직 켜진 노트북 앞에서 뒤팽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차가운 조명 아래 두 사람은 정확한 것들을 보존하느라 지친 얼굴이었다.

“첫 번째, 모든 준비 문서에서 고유 잡음을 줄인다는 발상을 삭제하세요. 증상은 줄이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해요.”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아니요. 반드시 필요한 표현이에요.”

마레스코는 넘어갔다.

“두 번째 조건은요?”

“시험 회의는 절차가 예상하지 못한 중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단권 원칙은 이미 있습니다.”

“아니요. 중단권에는 정해진 순간과 형식과 자리가 있어요. 내가 말하는 건 진짜 방해입니다. 방이 그 아름다운 속도를 잃게 만들 수 있는 누군가.”

“모드 드렌을 생각하고 있군요.”

“그녀가 막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거절했습니까?”

“아직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올지 알 수 없군요.”

이리아는 비어 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엄지손가락에 기록물의 먼지가 남긴 회색 자국이 묻어 있었다.

“네. 그리고 온다면 그 사람이 무슨 역할을 할지 미리 알려지는 건 원치 않습니다.”

마레스코의 침묵에는 불쾌함보다 기술적인 계산이 담겨 있었다.

“세 번째 조건은요?”

“빈 의자를 둔다면 우아해 보이려고 비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늦게라도 누군가를 들어오게 할 수 있어야 해요. 구성을 흐트러뜨리더라도. 회의를 변호하기 더 어려워지더라도요.”

“그렇게 하면 실험 결과를 사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게 시험이에요.”

전화선에서 잡음이 났다. 잠시 이리아는 그가 끊은 줄 알았다.

이윽고 마레스코가 말했다.

“서면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러죠.”

“그리고 이리아.”

그 이름, 또다시.

이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네?”

“불완전함을 진실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의 가장 짜증 나는 장점이었다.

“유지되는 것을 올바른 것과 혼동하지 마세요.” 이리아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그가 정말로 낮게 웃었다.

“그럼 화요일에 봅시다.”

전화가 끊겼다.

이리아는 복도에 그대로 서 있었다. 출입문 위에서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먼지, 식은 커피, 달아오른 플라스틱 냄새가 기록실에서 올라왔다. 이곳에는 상층의 방을 닮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곳의 사물들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모드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현장 조정관 뒤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성찰의 날이니 뭐니 팔아먹으려는 전화라면 난 벌써 반대예요.”

“안녕하세요, 모드.”

“그래도 안녕하세요.”

이리아는 웃었다.

“시험 회의를 준비하고 있어요. 국가 차원의 방입니다. 그들에게 빚진 것이 없고, 방을 봐줄 이유도 없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카메라에 머리가 엉망으로 나오는 여자라서 나를 떠올렸나요?”

정확히 찌른 말이었다. 이리아는 좋은 의도에서였다고 해도 야엘이 벌써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당신이 결정을 말끔한 조각들로 잘라 놓지 못하게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떠올렸어요.”

“그건 더 그럴듯하네요. 그래도 나를 도구로 쓰겠다는 초대인 건 똑같아요.”

“맞아요.”

바람이 일 초 동안 모드의 자리를 대신했다. 멀리서 경보음이 울렸다. 누군가 이리아가 알아듣지 못한 이름을 외쳤다.

“당신은 꼭 타이밍 나쁘게 솔직하네요.” 모드가 말했다.

“연습 중이에요.”

“당신들 어항에서 항구 여자를 연기하러 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부탁하는 게 아니에요.”

“맞아요. 조금은 그렇죠.”

이리아는 일격을 받아들였다.

“그럼 다른 사람을 데려오세요.”

바람 소리가 달라졌다.

“누구를요?”

“내가 고르지 않을 사람. 좋은 결정의 비용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싶지는 않은 사람.”

모드는 한참 침묵했다. 이리아는 그 사이 자기 말에 붙인 안전장치들이 닳아 없어지는 소리를 듣는 듯했다.

“그 사람들이 정말 그런 걸 원한다고 확신해요?”

“아니요.”

“당신이 원한다는 건 확신하고요?”

덜 간단한 질문이었다.

이리아는 12번 방과 지하실을 아는 남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멈춰진 급식 담당 직원, 불행 속에서 좋은 자리를 받은 농민을 생각했다.

“방이 어떤 결정을 명료하다고 부르기 전에, 그 결정이 요구할 비용을 반드시 듣게 하고 싶어요.”

모드가 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볼게요.”

“거절인가요?”

“그보다 더 나빠요. 어쩌면이죠.”

전화가 끊겼다.

이리아가 기록실로 돌아왔을 때 사라는 최근 서류들을 모두 정리해 둔 뒤였다. 탁자에는 다른 것들보다 오래된 길쭉한 상자 하나만 남아 있었다. 누런 판지로 만든 상자였고 알아볼 수 있는 행정 코드가 없었다.

뒤팽이 팔짱을 낀 채 옆에 서 있었다.

“이건 여기 있으면 안 되는 물건입니다.”

사라는 뚜껑 위에 손을 올렸다.

“아직 총리실과 관계있는 자료는 아니야.”

이리아가 다가갔다.

라벨에는 누군가 연필로 이렇게 적어 놓았다.

“집단 청취 - 선행 자료군”

그 아래에는 더 최근의 다른 필체로 이런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

“방법론 자료에 편입하지 말 것. 역사적 해석의 위험.”

이리아는 사라를 보았다.

“역사적 해석?”

사라는 상자를 열지 않았다.

“내일.”

“왜 지금은 안 돼?”

“넌 방금 그들의 회의에 들어가기로 했잖아. 네 선임자들이 이미 무엇을 배반했는지 알아보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야 해.”

뒤팽은 뜻밖에도 부드러운 손길로 뚜껑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하층 기록실은 같은 저녁에 모든 걸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론을 한 아름 안고 위로 올라가거든요.”

이리아는 판지 위에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상층의 방은 시험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항구의 바람 속 어딘가에서는 모드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방법론 아래, 절차 아래, 국가가 벌써 정리하기 시작한 단어들 아래에는 또 다른 역사가 잘못 분류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름 대신 이니셜 하나만 남겨 두고 싶어 할 만큼 무거운 역사였다.

제10장

지하 기록보관소

주인 없는 사본


이리아는 잠을 설쳤다.

다섯 시 오십 분, 잠들기를 포기한 그녀는 천장 등을 켜지 않고 일어났다. 부엌에는 전날 내린 커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 식탁 위 노트북은 마레스코에게 보낼 문서를 띄운 채였다. 조건은 세 가지, 그 이상은 없다. 선행 자료는 기다릴 것이다.

양말 차림으로 서서, 한 손을 주전자에 얹고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당사자가 중단할 수 있다는 보장 없이 상위 방을 일반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여섯 시 십이 분, 그녀는 용납할 수 없다평가할 수 없다로 바꿨다.

수정한 쪽이 더 정확했다.

바로 그 점이 역겨웠다.

대규모 중앙집중형 의사결정 시스템이 무너진 뒤에도, 이 나라는 주권을 지닌 지능에 대한 공인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옛 중앙 시스템들의 이름은 아직도 장관실 사람들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인간보다 광대한 정신이 나타날 거라는 약속, 그리고 그 정신이 인간 없이도 괜찮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을 때 벌어진 공황을 모두가 기억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결정을 더 겸손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장관실은 여전히 긴급성과 위신, 지켜내야 할 이미지, 끝까지 믿어보기도 전에 고쳐 쓰는 문서로 넘쳐났다. 인공적인 중심은 포기했다. 하지만 결정권자보다 더 명료하게 볼 수 있는 장소를 향한 욕망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명료한 방들은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다. 기계는 아니면서도 때때로 기계의 꿈을 이어받을 수 있는 공동의 결정을 향한, 조금은 부끄러운 갈망 속에서.

일곱 시 삼십이 분, 모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화요일에 갈 수 있어. 혼자는 아니야. 다시 전화할게.”

이리아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었다.

혼자는 아니야.

벌써부터 가능한 최선의 대답이었고, 따라서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대답이었다.

그녀는 사라보다 먼저 지하 기록보관소에 도착했다.

뒤팽은 물론 그곳에 있었다.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 없어 보이는 상자들에 꼬리표를 붙이는 중이었다.

“여기서 주무세요?” 이리아가 물었다.

“잘못된 인상도 보존합니다. 그건 자주 되풀이되는 인상이죠.”

그는 마커를 내려놓았다.

베이지색 상자는 이미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움직였네요.”

“내화 캐비닛에서 꺼냈습니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인 줄 알았는데요.”

“그러니까요.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는 물건이라면, 때로는 공식적인 것들과 같은 자리에서 타지 않게 할 가치가 있죠.”

이리아는 외투를 벗었다.

“사라는요?”

“판독 열쇠를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열쇠가 필요해요?”

뒤팽은 어깨를 으쓱했다.

“누군가 상자가 무해하다고 믿게 만들려 했다면 언제나 열쇠가 필요하죠.”

사라는 삼 분 뒤에 들어왔다. 곧바로 인사하지 않았다. 두꺼운 서류철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고,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알기도 전에 결정을 내린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건은 보냈어?”

“아직.”

“잘됐네.”

“기다릴까?”

“저들이 보관해도 되는 버전을 쓰기 전에 먼저 읽었으면 해.”

사라는 베이지색 상자 옆에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뒤팽이 상자를 열었다.

냄새에는 아무런 극적인 구석도 없었다. 오래된 종이, 마른 판지, 차가운 먼지. 계시보다는 벽장에 가까운 냄새였다. 이리아는 거의 안도했다.

안에는 기계가 전혀 없었다. 봉인된 하드디스크도, 비밀 모듈도, 더 지적이었던 과거의 빛나는 파편도.

그저 공책과 크라프트지 봉투, 회의록, 인쇄된 음성 기록 몇 장, 허술한 방들을 찍은 사진 세 장, 너무 여러 번 복사되어 모서리가 검게 변한 카드 뭉치뿐이었다.

몇몇 기록에서는 이를 침묵 프로토콜이라 불렀다. 교리가 아니라, 언제든 변형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유통시키는 방식에 가까웠다. 접힌 종이 한 장, 주인 없는 공책, 불완전한 사본. 종이에 대한 향수 때문도, 디지털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었다. 네트워크는 필수였다. 그것은 시간과 증거, 협업 체계 전체를 구해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거기에 맡기려 한 뒤에야 정확한 한계를 발견했다. 네트워크는 무엇이든 보존하고, 멀리서 수정하고, 사후에 일관된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반면 종이는 상처를 더 잘 간직했다. 종이가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수정을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고, 더 눈에 띄게 하며, 덜 조용하게 만들 뿐이었다.

첫 번째 공책에는 이런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선행 자료군 - 유통용 사본”

이리아가 사라를 바라봤다.

“이름이 없네.”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주인 없는 사본이야.”

“신중을 기해서?”

“너그럽게 말하면 정직해서.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서. 이 사람들이 무엇을 막으려 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뒤팽이 더 얇은 두 번째 공책을 꺼냈다.

“이건 원본이 아니라 나중에 만들어진 사본입니다. 원본은 중앙집중형 의사결정 시스템이 붕괴한 뒤에 유통되다가, 인간 네트워크가 그 자리를 넘겨받던 시절에도 계속 돌았습니다. 이 사본은 한 지방 행정기관의 자료군에서 찾아냈죠.”

이리아는 공책에 손대지 않고 그 위로 손을 지나갔다.

“왜 여기 있죠?”

사라가 서류철을 열었다.

“명료한 방을 처음 고안한 팀들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야. 사실이 아니었어.”

유통되는 것


공책은 창립 문서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었다.

페이지마다 짤막한 메모와 삭제선, 작은 화살표, 여러 사람의 손으로 옮겨 적은 문장 조각들이 가로질러 있었다. 어떤 것은 똑같이 의심 많은 목소리에서 나왔고, 어떤 것은 이름 모를 독자에게서, 또 어떤 것은 너무나 평범해서 그 평범함이 어떤 전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장소에서 열린 듣기 워크숍에서 나왔다. 음향 실험실, 정비실, 공사로 폐쇄된 시립도서관, 오래된 세탁소, 제2물류분류센터.

처음으로 읽을 수 있는 페이지에서 이리아는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인간 위에 군림하는 완벽한 의식을 꿈꾸지 말 것. 인간들 사이를 오가는 것의 질을 꿈꿀 것.”

그 문장 아래에는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밑에 다른 필체로 이렇게 덧붙어 있었다.

“오가는 것은 변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전달이 아니라 이미 지시다.”

사라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울기라도 할 것처럼 보지 마.”

“이걸 네 번째 조건으로 만들지 보려고.”

“그러고 싶어.”

“나쁜 징조네.”

뒤팽이 사진 한 장을 두 사람 쪽으로 밀었다.

열두 사람이 긴 탁자 둘레에 앉아 있었다. 비워둔 중앙도, 바닥의 타원도, 걷기 절차도 없었다. 제각각인 의자들, 종이컵, 안뜰을 향해 열린 창문, 한쪽 구석에 쌓아둔 외투. 사진 뒷면에는 누군가 이렇게 적어놓았다.

“듣기 워크숍 - 몽트뢰유 - 붕괴 후 세 번째 겨울”

이리아가 물었다.

“세 번째 겨울?”

“중앙집중형 의사결정 시스템이 끝난 뒤 세 번째 겨울.” 사라가 말했다. “몇몇 네트워크에서는 그렇게 날짜를 셌어. 오래가진 않았지. 꼭 숭배 집단 같아서 그만뒀어.”

“이 사람들은 누구야?”

사라는 카드들을 뒤졌다.

“고정된 집단은 아니야. 옛 기술자들, 사서들, 의료인들, 법률가 몇 명, 주변부 직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 붕괴 뒤에도 버텨낸 침묵 네트워크를 거친 사람들. 기계를 다시 꼭대기에 올려놓아서는 안 되지만, 공공 지능의 시대가 듣기와 재검토, 상호 수정에 관해 배운 것까지 내다 버리는 건 어리석다고 이해한 사람들이었어.”

“그리고 국가가 이걸 가져갔군.”

“나중에.”

사라는 그녀 앞에 종이 세 장을 놓았다.

첫 번째는 공책에서 뽑은 구절이었다.

“형식은 듣기와 부분적인 기억, 재검토, 변형을 통해 유통되는 한 지도자 없이도 유지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워크숍 기록이었다.

“그 형식으로 인해 무엇을 잃는지 누군가 말할 기회를 얻기 전에는 절대로 종결하지 말 것.”

훨씬 최근에 작성된 세 번째 문서에는 부처의 머리글이 찍혀 있었다.

“집단적 수용성 실험 절차 - 이견 발언의 틀 설정”

이리아는 말없이 세 장을 읽었다.

배신은 극적이지 않았다.

문법적이었다.

교리를 뒤집어 그 자체에 맞세운 것이 아니었다. 문장의 주어를 바꾼 것이었다. 공책 속에서는 형식들이 오가고, 스스로를 수정하고, 그것을 이어받은 사람들에게 훼손되기를 허락했다. 부처 문서에서는 누군가가 조직하고, 틀을 정하고, 평가하고, 안전을 확보했다. 동사들이 진영을 바꾼 것이다.

“바로 이거야.” 사라가 말했다.

“처음부터 이걸 보여줄 수도 있었잖아.”

“아니.”

“왜?”

“내가 요약했다면 넌 하나의 관념만 받아들였을 테니까. 건너가는 과정을 직접 봐야 했어.”

이리아는 세 번째 종이를 바라봤다.

‘이견 발언의 틀 설정’이라는 문구를 보자 종이를 구겨버리고 싶어졌다. 그러지는 않았다.

뒤팽이 무명실로 묶은 서류 뭉치를 꺼냈다.

“이제부터는 더 지저분해집니다.”

그는 심각한 어조를 취하지 않았다. 이미 오물을 제자리에 분류해둔 사람의 어조였다.

느베르 워크숍


서류 뭉치에는 신중한 제목이 붙어 있었다.

“경험 보고 - 느베르 워크숍”

날짜는 최초의 명료한 방이 공식 승인되기 십일 년 전.

참가자는 스물세 명.

목적은 철도 차량기지 봉쇄와 도 사회복지 출장소 점거 이후의 분쟁 종결.

이리아는 이해하기 전에 이미 구조를 알아보았다.

위신 없는 장소. 실제 분쟁. 아래를 떠받치는 직업들. 쌓여온 피로. 그리고 어딘가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입장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워크숍이 버텼다.

행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더 위험한 의미에서였다. 사람들이 자기 문장을 바꿨다. 도청의 한 간부는 서비스 정상화라는 말을 그만두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양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노조원은 파업의 일부가 분쟁 자체보다 오래된 굴욕들에 바치는 헌사가 되어버렸다고 인정했다. 한 정비 직원은 동네 사람 모두가 선 채로 거절당하는 창구라고 부르는 곳을 왜 사회복지 출장소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이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누가 진행했어?”

사라가 한 페이지를 넘겼다.

“진행이라고 하지 않았어. 가장자리를 지킨다고 했지.”

“누가 가장자리를 지켰는데?”

“사서 한 명, 전직 음향 엔지니어 한 명, 보건교사 한 명, 시민단체 조정자 한 명.”

“국가 대표는 없었어?”

“있었어. 방 안에 있었지만 가장자리에는 없었지.”

그다음부터 회의록의 질감이 달라졌다.

한낮 무렵, 관찰자 두 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도청의 승인. 평가 임무. 그들은 가장 유용한 발언을 결과표의 항목에 맞춰 다시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폭력적이지도 불법적이지도 않았다. 아무도 주도권을 빼앗지 않았다.

그저 이 일을 옹호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사서는 여백에 이렇게 적었다.

“14시 10분부터, 그들은 추출하기 위해 듣는다.”

이리아는 그 문장 위에 손가락을 얹은 채 있었다.

추출하기 위해 듣는다.

그녀는 메모하던 클레르 보드랑을 떠올렸다. 페이지 아래쪽에 놓인 마레스코의 손도. 유리창 뒤에서 공책을 펼친 채, 자신이 보는 것에 이름을 붙이면 방의 온전함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자기 자신도.

“그다음엔 어떻게 됐지?”

뒤팽이 사고 보고서를 꺼냈다.

“워크숍은 세 가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어느 것도 말끔하지 않았죠. 어쩌면 그래서 버텼는지도 모릅니다.”

첫 번째는 우스울 만큼 이상하지만 버스 운행과 근무조에 실제로 맞는 시간대에 사회복지 출장소를 부분적으로 다시 열도록 했다. 두 번째는 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정비 일정표와 맞바꾸어 개인별 징계를 보류하게 했다. 세 번째는 도청이 석 달 동안 동네로 상담 창구를 옮기게 했다.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절이 이루어진 바로 그곳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을 맞이하도록.

“그래서?”

사라가 이어 말했다.

“도청은 구조만 받아들였어. 자기들에게 가장 굴욕적인 의무는 빼고.”

“결국?”

“상징적인 재개방. 대화 재개에 관한 홍보. 후속 관리단 설치. 징계는 동결됐다가 사건별로 다시 도입됐어. 이동 상담 창구는 끝내 오지 않았고.”

이리아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석 달 뒤, 차량기지는 다시 봉쇄됐다. 이번에는 경찰이 신속하게 개입했다. 중상자 두 명. 정비 직원 한 명 해고. 사서는 이후 모든 임무를 거절했다. 보건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음향 엔지니어는 네 줄짜리 편지를 보냈다.

“당신들은 듣기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듣기를 이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쪽이 더 심각합니다.”

침묵이 오랫동안 탁자 위에 머물렀다. 고결한 침묵이 아니었다. 망가진 노동의 침묵이었다.

이리아가 물었다.

“명료한 방은 여기에서 나온 거야?”

“여기에서만은 아니야.” 사라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나왔군.”

“그래.”

뒤팽은 서류 뭉치를 조심스럽게 덮었다.

“행정에는 위대한 미덕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자기가 배신한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법이 없죠. 언젠가 다시 쓸 수 있을 경우에 대비해 보관해둡니다.”

이리아는 하마터면 대꾸할 뻔했다.

하지만 참았다.

좋은 표현이었지만, 그녀의 말까지 보탤 필요는 없었다.

전승


상자 바닥에서 사라는 음성 전사용 저장매체와 얇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저장매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봉투에는 손으로 수정한 타자 원고 네 장이 들어 있었다. 맨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음성 발췌 - 부분 사본 - 제한적 사용”

그 남자는 예언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이리아의 눈에 살아남았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의 발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기도 전에 이미 경계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전사문에는 공식본이라면 지워버렸을 법한 머뭇거림과 말의 되감김, 어조의 자잘한 난폭함이 남아 있었다.

사라는 첫 구절을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

“옛 중앙 시스템에 가치가 있었다면, 그것이 더 잘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 권위를 꿈꾸기 시작할 때 너무도 쉽게 포기해버리는 연결과 듣기, 상호 수정의 어떤 형식들을 그것이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리아는 이 문장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 후손들은 알고 있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판본들이 아직도 연수 자료와 학술대회 포스터, 작성자들조차 의심을 담은 목소리로 한 남자가 했던 말임을 잊었을 법한 정책 지침서 속에 돌아다녔다.

사라가 계속 읽었다.

“해야 할 일은 중심에 지능을 복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조금이라도 용기가 남아 있다면, 해야 할 일은 그것이 배운 바를 전하되 왕좌를 다시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뒤팽이 더 최근의 사본을 이리아 쪽으로 밀었다.

삼십 년 뒤, 명료한 방 창설을 준비한 문서에 같은 문장이 실려 있었다.

“목표: 포스트알고리즘 시대의 실험에서 비롯된 연결 및 상호 수정의 역량을 안정적인 제도적 틀 안에서 보존한다.”

이리아는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왕좌라는 단어가 사라져 있었다.

용기도.

그 자리를 대신한 말은 ‘안정적인 제도적 틀’이었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사라가 마지막 페이지를 꺼냈다.

“이건 그 사람이 쓴 게 아니야.”

손글씨였다. 더 단호하고 수직적인 필체. 최초의 워크숍에서 몇 년이 지난 뒤 작성된 짤막한 메모로, 서명은 두 개의 머리글자뿐이었다.

“A. V.”

이리아가 읽었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었기에 가까스로 유지된 것을 방법이라 부른다면, 당신들은 듣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에 주인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그녀는 다시 읽었다.

“알려진 서명이야?”

사라가 대답했다.

“몇몇 네트워크에서는. 확인할 방법은 없어.”

“그런데 왜 보관했지?”

뒤팽은 즐겁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때로는 진지한 사람들을 가장 잠 못 들게 하니까요.”

이리아는 머리글자가 적힌 메모를 옮겨 쓴 발췌문과 부처 문서 옆에 놓았다.

세 문장, 세 시대. 같은 행위가 손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마침내 주인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명료한 방들은 주권적 인공지능에 대한 거부에서 탄생한 발명품만은 아니었다. 집이 없었기에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 실천에 집을 마련해주려 한, 정직하면서도 위험한 시도이기도 했다.

“마레스코에게 보여줘야 해.” 그녀가 말했다.

사라는 즉시 상자를 닫았다.

“안 돼.”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전날부터 이 질문을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그 기원을 모른 채 상위 방을 만들게 두고 싶어?”

“그가 기원을 권위의 논거로 바꾸지 않았으면 해.”

“그건 다른 문제야.”

“그 사람 손에 들어가면 회의 세 번 만에 같은 문제가 될 수 있어.”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레스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불완전함과 진실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그는 이 상자의 일부를 이해했을 것이다. 심지어 올바른 부분을 이해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위험했다.

뒤팽은 종이를 한 장씩 집어 원래 순서대로 돌려놓았다.

“그에게 규칙은 줄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전설은 말고요.”

“무슨 규칙이죠?”

그는 세 장의 문서를 가리켰다.

“그대로 베끼지 않고도 되풀이되는 규칙.”

이리아는 옮겨 적은 발췌문과 머리글자가 적힌 메모, 부처 문서를 차례로 바라봤다. 공책을 꺼내 천천히 썼다.

“명료한 방은 자신이 가능하게 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사라가 읽었다.

“너무 멋있어.”

이리아는 소유한다에 줄을 긋고 다시 썼다.

“명료한 방은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라는 기다렸다.

“그게 낫네.”

“그래도 부족해.”

“그래. 하지만 쓸 수는 있어.”

이리아가 덧붙였다.

“듣기를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방법은 자신이 이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중단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뒤팽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 하나 망치기에는 충분하군요.”

이리아는 공책을 집어넣었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모드의 메시지였다.

“화요일. 누구 한 명 데려갈게. 이력서는 묻지 마.”

이리아는 사라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사라가 희미하게 웃었다.

“완벽하네.”

“누군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뒤팽이 베이지색 상자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제는요?”

이리아는 뚜껑과 꼬리표, 판지에 남은 오래된 손자국을 바라봤다.

“이제 이야기 하나를 들고 위로 올라가지는 않아요.”

사라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뭘 들고 올라가?”

이리아는 사본을 통해서만 이름을 알게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시대의 필요에 따라 아직도 공포나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데 쓰이는 옛 시스템의 기억을. 그러고는 지하실의 남자, 구내식당 직원, 아르즐륀의 채소 농부, 바람 부는 어딘가에 있을 모드를 떠올렸다.

“불편함.” 그녀가 말했다.

이번에는 사라도 고치지 않았다.

이리아가 지하 기록보관소를 떠났을 때, 상자는 다시 내화 캐비닛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가 지닌 것은 옮겨 적은 세 문장과 소매에 묻은 회색 먼지, 그리고 과거가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는 선명한 감각뿐이었다.

과거는 그저 다음 질문을 말끔하게 던질 권리를 그녀에게서 빼앗고 있었다.

제11장

둘이 아니다

화요일


화요일, 상위 방은 아무도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는 곳처럼 준비되어 있었다.

이리아는 너무 일찍 도착했다. 기술자 두 명이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었고, 의전 담당 여성은 명패 순서를 바꾸고 있었으며, 클레르 보드랑은 검은 마커를 든 채 벽면 칠판 앞에 서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방은 이미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어서 어떤 변명도 꺼내기 어려웠다.

탁자 위 회색 서류철에는 대중 앞이라면 아무도 제안하지 않았을 제목이 붙어 있었다.

“사전구현 시험 - 폭염 시 순환 단전 상황의 우선적 연속성”

이리아는 서류철을 열지 않고 그 옆에 공책을 놓았다.

“전력 위기를 골랐군요.” 그녀가 말했다.

클레르 보드랑이 마커 뚜껑을 닫았다.

“장기 폭염입니다. 전력망은 약해진 상태고요. 산업 지대, 디지털 중계망, 냉장 유통망, 의료시설 가운데 어느 구역을 순환 단전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과장된 연설을 막을 만큼은 기술적인 사안이죠.”

“그러면서도 그런 연설을 불러낼 만큼은 인간적이고요.”

클레르는 예의 바른 피로가 밴 눈으로 이리아를 바라봤다.

“그게 의도입니다.”

마레스코는 몇 분 뒤 야엘 세르와 엘렌 라스쿠르를 데리고 들어왔다. 넥타이 없이 밝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공식 복장보다 더 의식적으로 절제된 차림이었다. 야엘은 이리아에게 짧게 인사했다. 엘렌은 자기 자리에 서류철을 내려놓고 뒤쪽 벽에 붙여둔 빈 의자를 확인했다.

정확히 말하면 더는 빈 의자가 아니었다. A4 용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대표되지 않은 사람 또는 현실”

이리아는 생각보다 오래 그 종이를 바라봤다.

“벌써 하나의 기능처럼 보이네요.” 그녀가 말했다.

엘렌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네. 그게 위험이죠.”

“치울까요?”

“아니요. 우리를 불편하게 했으면 해요.”

열 시 삼 분, 문이 열렸다.

모드 드렌이 외투도 입지 않은 채 남색 스웨터 차림으로 들어왔다. 천가방을 메고 있었고, 입을 열 가치가 있는 방인지 판단하기 전에 먼저 방을 훑어보는 버릇도 그대로였다. 그녀 뒤에는 제롬 켈리앵이 따라왔다.

이리아는 이름이 떠오르기 전에 그를 알아봤다.

공개 시연 때의 기술자였다. 유리창 너머로 보였던 사람, 야엘이 제대로 불러내지도 않은 채 그가 치른 대가를 드러내 보였던 사람.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어 있었고, 짧게 자른 머리에 임시 출입증을 가슴 너무 높은 곳에 달고 있었다. 마티뇽보다 카펫의 침묵에 더 주눅 든 것처럼 보였다.

모드는 이리아의 놀란 표정을 보았다.

“네가 이 사람이 여기서 무얼 할지 대신 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제롬을 데려오라고 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데려왔지.”

클레르 보드랑은 한 박자 늦게 미소 지었다.

“켈리앵 씨,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확히 어떤 자격으로 참석하신 건가요?”

제롬은 답이 적혀 있기라도 한 듯 자기 출입증을 내려다봤다.

“고장 수리요.” 그가 말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마레스코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물론 선생님의 기술 경험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리아가 관심 있는 건 제롬의 기술 경험이 아니에요.” 모드가 제롬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이 이 사람을 집어넣으려 할 칸이죠.”

야엘이 의자를 당겼다.

“그럼 분류하기 전에 일단 앉죠.”

단순하고 거의 다정하기까지 한 말이었다. 그러나 절차를 상기시키는 어떤 말보다 확실하게 방을 바꾸어놓았다. 제롬은 모드 곁에 앉았다. 가장자리도, 뒤쪽도 아니었다. 클레르 보드랑은 그 자리를 기록했고, 마레스코는 막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될 수 있었다.

18B실


시나리오는 건조하고 정밀하며 믿을 만했다.

십이 일간 이어진 폭염. 이미 약해진 변압기들. 냉방기와 냉장실, 의료기관, 비상 서버 때문에 치솟은 야간 전력 수요. 전력 위기에 놓인 두 개 도. 단전 후보 구역 세 곳. 그중 단 한 곳만 단전을 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구역에는 상업 지구, 식품 창고 두 곳, 지역 데이터 센터, 민간 의약품 저장소와 여러 주택단지가 있었다.

두 번째 구역에는 항만 물류기지, 보조 양수장, 교도소, 구급차 통신망 중계소가 있었다.

세 번째 구역에는 외곽 병원, 무더위 쉼터로 전환된 고등학교, 소규모 공업 지대,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오래된 단독주택 단지가 있었다.

클레르 보드랑은 과장 없이 자료를 설명했다. 곡선, 지도, 부하, 배터리 용량, 재가동 시간. 그녀는 자료를 속속들이 알았다. 거의 정직해 보이게 만들 정도였다.

이리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마레스코는 어려움이 자기 도구의 필요성을 증명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경청했다. 엘렌은 거의 메모하지 않았다. 야엘은 지도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오른손을 탁자 위에 펼쳐놓고 아주 고요히 있었다. 모드는 곡선을 보지 않았다. 항목 이름을 보고 있었다.

제롬은 아직 서류에 손도 대지 않았다.

클레르의 설명이 끝나자 마레스코가 첫 지침을 제안했다.

“오늘 최적의 결정을 찾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결정에 앞서야 할 기준을 방이 가시화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입니다.”

“편안하네요.” 모드가 말했다.

“뭐라고요?”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 위기로 기준을 시험하니까요.”

마레스코는 몸을 굳히지 않고 공격을 받아냈다.

“모든 훈련의 한계죠.”

“아니요. 훈련의 유혹이죠.”

이리아는 야엘이 미소 짓는 것을 본 듯했지만 움직임이 너무 미세해 확신할 수 없었다.

논의는 세 번째 구역에서 시작됐다. 병원, 노인들, 무더위 쉼터. 자료는 모두를 그 구역의 우선 보호 쪽으로 끌어가는 듯했다. 두 번째 구역은 교도소와 양수장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구역은 의약품 저장소가 있는데도 처음에는 가장 희생하기 쉬워 보였다.

그때 제롬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드는 것이 조금 우스워 보이지만 남의 말을 끊으면 더 곤란해지는 부서 회의에서처럼 손을 들었다.

“18B실이 빠졌습니다.”

클레르 보드랑이 문서를 뒤졌다.

“18B실이요?”

“첫 번째 구역 상업 지대에 있어요. 침구 매장 뒤편입니다. 지도에는 창고와 같은 건물로 표시되어 있고요.”

“핵심 시설 목록에는 없는데요.”

“핵심 시설이 아니니까요.”

방은 기다렸다.

제롬이 마침내 서류철을 열었다. 두 장을 넘기고, 너무 작은 글씨로 인쇄된 구역을 짚었다.

“여기요. 지역 데이터 센터라고 적으셨죠. 실제 주 데이터 센터는 더 멀리 있습니다. 여기 있는 건 수집 노드와 배선실, 무정전 전원장치예요. 냉장실 경보, 결제 단말기, 창고 센서, 당직 전화, 재택 환자들의 원격 경보, 구급차 회사 통신 일부가 여기로 올라옵니다. 전부는 아니에요. 눈에 띄기엔 너무 적지만, 나쁜 때에 끊기면 여러 서비스가 눈먼 채로 일하게 될 만큼은 됩니다.”

클레르가 지도 위로 몸을 숙였다.

“자료에서는 이 일대를 비병원 디지털 인프라로 묶고 있습니다.”

“네.”

“그러니 이미 식별되어 있는 셈이군요.”

제롬은 모드를 바라봤다. 모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뇨.” 그가 다시 말했다. “분류된 거죠. 식별된 게 아닙니다.”

그 차이가 탁자 위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이리아의 손 아래 놓인 공책이 지나치게 쓰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적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야엘이 물었다.

“그럼 첫 번째 구역도 다른 곳보다 덜 필수적인 건 아니라는 뜻인가요?”

“여기서 ‘필수’라는 말이 케이블 속까지 내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중간 범주가 필요하겠군요.” 엘렌이 제안했다.

제롬은 고개를 저었다.

“범주는 절대로 안 됩니다. 누군가 사무실에 앉아서 채워 넣을 테니까요.”

마레스코는 팔짱을 꼈다.

“무엇을 제안하십니까?”

기술자는 즐겁지 않은 웃음을 살짝 흘렸다.

“아무것도요. 바로 그게 문제죠. 제안하러 온 게 아닙니다.”

“자료를 읽는 도중에 끼어드셨습니다.”

“두 종류의 것만 있는 척하시기에요. 생명을 지탱하는 것과 편의를 지탱하는 것.”

엘렌이 부드럽게 물었다.

“선생님 생각은요?”

제롬은 18B실에 손가락을 얹었다.

“둘로 나뉘지 않습니다.”

거창하지 않은, 실용적인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그 문장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찾았고, 넣을 곳을 찾지 못한 실패가 제 몫을 다했다.

마침내 모드가 말했다.

“항구도 똑같아요. 보조 구역이라고 부르는 곳을 끊으면 사무실이나 창고만 건드리는 게 아니에요. 냉장 화물이 부두에 남지 않도록 트럭을 어떤 순서로 내보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을 건드리는 거죠. 설계도 어디에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캐비닛의 열쇠를 가진 남자를 건드리고요. 고장이 손실이 되기 전에 운송업체 세 곳에 전화하는 여자를 건드려요. 나중에 당신들 지도에서는 그게 물류 지연이라고 불리겠죠.”

클레르 보드랑은 메모했다. 이리아는 그 동작의 정갈한 아름다움을 증오했다가, 곧 자신의 증오를 경계했다. 메모는 포획일 수 있었다. 망각을 막는 일이기도 했다.

야엘이 자료 한 장을 넘겼다.

“말씀대로라면 위험은 잘못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만 있지 않군요. 서로 분리된 현실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매긴다고 믿는 데 있겠어요.”

제롬은 처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맞습니다.”

“실제로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요.”

“무너지는 순간에는 아닙니다.”

이번에는 이리아도 적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아니다.

의자


엘렌은 소리 없이 일어나 빈 의자에 놓인 종이를 집었다.

종이를 치켜들지는 않았다. 애초에 부여하려 했던 효과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한 문서처럼 조금 낮게 들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질문해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마레스코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회의 초반입니다.”

“그러니까요. 마지막까지 기다리면 어떤 부재가 우리에게 편리한지 이미 알게 될 테니까요.”

이리아의 몸을 거의 물리적인 안도감이 지나갔다. 엘렌은 규칙을 그 자체의 우아함으로부터 방금 구해냈다.

클레르 보드랑이 메모를 살폈다.

“대표되지 않은 사람 또는 현실. 원격 경보에 의존하는 재택 환자, 당직 근무조, 민간 정비업체 직원, 냉장실 관리자, 오래된 주택가에서 차 없이 사는 가족들…….”

“아니요.” 모드가 말했다.

클레르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 아니라는 거죠?”

“지금 빠진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고 있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죠. 하지만 의자는 그들이 빠졌다고 말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우리를 방해하도록 두기 위해 있는 거죠.”

클레르를 겨냥해 던진 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깊이 닿았다.

야엘이 제롬에게 물었다.

“누가 이 회의를 유익하게 방해할 수 있을까요?”

제롬은 생각했다. 그의 시선은 몇 번이나 지도로 돌아갔다. 전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세계가 그 위에 비뚤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장이 사건 서류가 되기 전에 먼저 받아보는 사람이요.”

“이름을 댈 수 있나요?”

그는 망설였다.

“세실 다르세. 재가 돌봄 협회에서 방문 일정을 조정합니다. 전화를 받을지는 모르겠어요.”

마레스코가 클레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클레르는 이미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있었다.

불합리한 삼 분이 흘렀다. 마티뇽의 회의실, 사전구현 중인 상위 방, 기밀 문서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여러 성인들이 모두 평범한 신호음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

그 삼 분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리아는 모드를 바라봤다. 모드는 두 손을 맞잡고 있었고, 손톱은 짧았으며, 엄지 가장자리에 조그만 붉은 자국이 있었다.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방금 얻어낸 것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귀찮게 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 같았다.

클레르가 스피커폰을 켰다.

“다르세 씨? 안녕하세요. 정부 사무총국의 클레르 보드랑입니다. 지금 순환 단전 상황에서의 연속성을 검토하는 실무진과 통화하고 계십니다. 켈리앵 씨가 성함을 알려주셨습니다.”

침묵.

이윽고 조심스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롬? 무슨 일 있어요?”

제롬이 전화기 가까이 다가갔다.

“아뇨. 그러니까 지금은요. 훈련 중인데, 한 구역을 끊을 때 누굴 잊어버리는지 알고 싶대요.”

목소리의 질감이 달라졌다.

“방에 몇 명이나 있어요?”

클레르는 마레스코를 바라봤다.

“여덟 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전화한 거예요?”

마레스코가 전화기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알아요.”

그 “알아요”는 거절할 권리를 주었다는 사실보다 회의에 더 큰 일을 했다. 그 말을 통해 마레스코는 자신이 허락했다는 사소한 공로마저 빼앗겼다.

세실 다르세는 세 구역의 내용을 읽어달라고 했다. 클레르가 읽었다. 처음에는 빠르게 읽었지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단순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자 점점 느려졌다.

단전은 몇 시간인가요?

몇 시부터죠?

오래된 주택가의 엘리베이터는 중계소와 같은 구역에 묶여 있나요?

원격 경보기 배터리는 여름 전과 후 중 언제 교체됐죠?

앱 동기화가 끊기면 누가 생활지원사에게 알리나요?

가정에 아직 유선전화가 있나요?

질문이 하나씩 이어질 때마다 자료는 조금씩 말끔함을 잃었다. 거짓이 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첫 번째 구역을 열여덟 시부터 자정까지 끊으면 단전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사망자는 한 명도 없을지 몰라요.” 세실이 말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종류의 문장이죠. 하지만 다음 날 나는 환자 세 명이 왜 저녁 방문을 받지 못했는지, 어떤 딸이 왜 어머니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잠들었는지, 배송 단말기에 변경된 주소가 뜨지 않아 영양액 팩이 왜 엉뚱한 곳에 배달됐는지 찾아다니겠죠. 재앙은 아닐 거예요. 망가진 일이겠죠.”

방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구역을 끊지 않으면요?” 야엘이 물었다.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들도 함께 보호하게 되겠죠.”

“예를 들면요?”

“네온사인, 빈 사무실, 민간 재고, 편의용 서버, 자기 고장을 긴급사태라고 부를 만큼 돈 많은 사람들.”

엘렌은 종이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러니까 그 구역을 살리라는 말씀은 아니군요.”

“당신들의 수치가 언제나 옳은 편에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라는 겁니다.”

이리아는 잠시 눈꺼풀을 내렸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적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레스코가 물었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실 다르세가 숨을 내쉬었다. 뒤에서 키보드 소리와 복도에서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나요? 두 시간을 달라고 하겠어요. 생각하려고가 아니라 단전 전에 일을 옮겨놓기 위해서요. 방문 일정을 알리고, 동선을 인쇄하고, 배터리를 충전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출 수 있는 건물의 현관을 열고, 한 번 전화해서는 받지 않는 가족들에게 연락해야죠. 그러고 나서 끊어야 한다면 끊으세요. 하지만 그 두 시간 없이 단전하면 당신들은 전기를 끊는 게 아니에요. 평범한 사람들이 당신들 결정을 수습할 가능성을 끊는 겁니다.”

그 말은 탁자 한가운데 남았다.

아름다운 말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가득한 말이었다.

두 시간


상위 방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자신에게 더 나쁜 것을 찾아냈다. 조건이었다.

클레르 보드랑은 처음에 그것을 사회적 지연 프로토콜이라고 표현하려 했다. 모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클레르는 그 표정을 보고도 항의하지 않았다. 자기 문장에 줄을 그었다.

엘렌은 ‘물질적 존재를 위한 유예’라고 제안했다. 아무도 그 말을 어디에 써야 할지 알지 못했다.

야엘이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

“단전하기 전에, 이미 폭력적인 결정을 그보다 더 폭력적이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제롬이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해됩니다.”

“운영에 적용하기엔 부족해요.” 클레르가 말했다.

“잘됐네요.” 모드가 대답했다.

마레스코가 손을 들었다.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이 자기 안의 마찰에 만족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 결정에 넣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위 방은 양심의 가책을 공연하는 극장이 될 겁니다.”

아무도 그 말을 질서의 복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레스코의 말은 옳았고, 그 옳음은 그의 권위보다 방을 더 난처하게 했다.

어려움이 진영을 바꿨다. 이제 방이 배신하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결정을 거부하며 스스로 양심의 위안을 얻지 못하게 해야 했다.

이리아는 공책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두 단계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첫 단계는 단전 결정입니다. 비극적이고 기술적이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결정으로 남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 결정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흡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홍보가 아닙니다. 결정의 일부입니다.”

클레르는 더 빠르게 적었다.

“그렇다면 ‘열여덟 시 단전, 사전 고지 권장’이라고 쓰지 않는 거군요.”

“아뇨. 그 결정을 떠받칠 인간적 연결망에 최소한의 시간을 주지 않고는 단전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써야 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세실 다르세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적 연결망이라니, 듣기 싫은 말이네요.”

이리아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럼 뭐라고 할까요?”

“수습하는 사람들.”

모드가 중얼거렸다.

“그거야.”

클레르는 ‘수습 시간’이라고 적었다.

이번에는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성공한 방의 우아함 같은 것은 없이, 작업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되짚고, 반박하고, 지나치게 만족스러운 문장이 되기 전에 고치는 과정이 이어졌다. 단전 시각을 늦췄다. 첫 번째 구역을 끊을 가능성은 유지하되, 공개적으로 발동되는 두 시간의 수습 시간을 거친 뒤에만 가능하게 했다. 재가 돌봄 운영자, 기술 당직자, 냉장시설 관리자, 비병원 응급 중계소에 의무적으로 연락해야 했다. 정당하게 보호되는 것들과 함께 부당하게 보호될 것들도 명시했다.

마지막 의무는 방을 아프게 했다.

클레르가 물었다.

“필수적이지 않은 일부 활동도 생명과 직결된 시설과 인프라를 공유하기 때문에 유지된다고 명시해야 합니까?”

“네.” 엘렌이 말했다.

“공격받을 겁니다.”

“네.”

마레스코가 야엘을 바라봤다.

“이 취약성을 승인하십니까?”

야엘은 상임위원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몸을 지닌 사람처럼 대답했다.

“거짓된 견고함보다 이쪽을 택하겠습니다.”

이리아는 처음 보는 마레스코의 표정을 포착했다. 동의도 저항도 아니었다. 활용 가능한 것이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더 불편해졌고, 그래서 어쩌면 더 진지해졌다는 짧은 인정에 가까웠다.

세실 다르세는 끝나기 전에 전화를 끊어야 했다. 아무런 격식 없이 말했다.

“다시 짜야 할 진짜 방문 일정이 있어서요.”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롬?”

“네?”

“다음에는 정부에 내 이름을 주기 전에 미리 말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전해요. 누가 전화를 받아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면 소용없다고.”

통화가 끊겼다.

방은 그 마지막 문장을 곧장 다른 표현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열두 시 이십 분, 클레르 보드랑이 최종안을 읽었다. 원칙처럼 우아하지 않았다. 도지사가 싫어하면서도 사용할 수는 있을 문서처럼 보였다.

마레스코는 실무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 엘렌이 의자를 바라봤다.

‘대표되지 않은 사람 또는 현실’이라고 적힌 종이는 전화기와 지도 사이,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제자리로 돌려놓자고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며 제롬은 출입증을 보안실에 반납했다. 회의가 끝난 것보다 그 행동이 더 큰 안도감을 주는 듯했다.

모드는 복도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리아는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두 사람과 합류했다. 그곳에 이르자 건물은 다시 그저 건물이 되었다. 지나치게 무거운 문, 먼지 낀 화분, 구석의 카메라가 있었다.

“데려오길 잘했어.” 이리아가 말했다.

모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하려고 한 일 아니야.”

제롬은 시계를 봤다.

“부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같이 내려가 드릴게요.” 이리아가 말했다.

“아뇨. 길 찾을 수 있어요.”

그는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허세 때문이 아니었다. 흐름이 별로 없는 장소에서 다시 정상적인 동선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모드와 이리아만 남았다.

“아까 방 안에서 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알아?” 모드가 물었다.

이리아는 기다렸다.

“여전히 두 진영이 있기를 바랐잖아.”

“어떤 진영?”

“포획하는 자들과 구하는 자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모드는 타지 않았다.

“그게 너한테는 더 간단하겠지.” 그녀가 덧붙였다. “한쪽에는 마레스코, 다른 쪽에는 사라. 한쪽에는 야엘, 다른 쪽에는 나. 기록보관소 대 마티뇽. 깨끗한 것 대 더러운 것.”

이리아는 18B실과, 쓸모없는 네온사인과 조난 경보를 함께 운반하는 케이블을 생각했다. 자기 표현에 줄을 긋던 클레르 보드랑을. 취약성을 택한 야엘을. 쓸 수 없는 것이 매혹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실용적인 것을 요구한 마레스코를.

“둘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모드는 그제야 1층 버튼을 눌렀다.

“그래.”

승강기 안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리아는 내려가는 숫자를 바라봤다. 그 두 단어가 마음을 진정시켜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두 단어는 모든 얼굴에게서 자기 진영이 주는 편의를 빼앗았다. 누구도 화해시키지 않았다. 다만 증오가 지나치게 말끔하게 조직되는 것을 막을 뿐이었다.

1층에 도착하자 모드가 먼저 내렸다.

이리아는 닫힌 공책을 가슴에 안고 그 뒤를 따랐다. 공책 안에는 마레스코나 야엘, 상위 방에 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잘못 이름 붙은 방 하나, 두 시간의 수습 시간, 그리고 요약이 아닌 한 줄만 있었다.

둘이 아니다.

제12장

세계를 끌어안다

흘러넘치는 지도


이틀 뒤, 지나치게 아름다운 지도와 함께 서류가 도착했다.

지도 위에서 루안강은 연한 파란색으로 고원에서 흘러내려와 세 소도시를 지나고, 물류 지대를 스친 뒤, 경작 평야 부근에서 폭을 넓혀 몽페라 시를 제방 쪽으로 바싹 몰아붙였다. 범람 가능 지역에는 여러 색조의 초록을, 침수 위험 구역에는 옅은 빨강을, 전력망에는 보라색 선을, 민감 시설에는 검은 점을 더해놓았다.

지도는 거의 안도감을 줄 정도였다. 누군가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 재앙을 색칠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리아는 보고서를 열기 전에 한참 동안 지도를 바라봤다.

제목은 ‘루안강 유역 - 대홍수 방재 대책 결정’이었다.

부제는 좀 더 용감했다. ‘메리발바 일부 이전, 산업시설 재배치 및 통제 범람 구역 조성’.

마레스코는 서류를 독립기구로 보내지 않았다. 직접 문서 뭉치를 들고 상위 방에 찾아왔다. 편안하게 거짓말하기에는 잠이 모자란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대책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모드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최초 구성안대로라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18B실 회의 이후 다시 오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를 아무도 찾아내지 못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작부터 좋지 않네요.” 그녀가 말했다.

마레스코는 웃지 않았다.

“상위 방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결정을 지방 당국 대신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대책이네요.” 모드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책. 하지만 그 주변에서 부서지는 것까지 전부 포함해서요.”

방은 그 문장을 돕지 않은 채 받아들였다.

엘렌 라스쿠르는 이미 빈 의자의 종이를 탁자 가장자리에 놓아두었다. 클레르 보드랑은 ‘부재한 현실’이라는 제목만 붙인 빈 칠판을 두 번째로 준비했다. 야엘 세르는 재킷을 벗어 등 뒤에 걸쳐놓았다. 그 단순한 몸짓조차 사람을 지치게 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올바른 것이 될 수 있는 듯했다. 이리아는 그 인상을 경계했지만, 지난 회의 이후로는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작은 무리를 지어 들어왔다.

유역 수문학자 브누아 사라쟁. 길고 마른 몸에 셔츠 자락을 제대로 넣지 않았고, 너무 오랫동안 강우 곡선을 들여다본 듯한 눈을 지닌 남자였다. 메리발 시장 잔 루. 지방 선출직들이 지닌 특유의 피로가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문만 바꿔가며 똑같은 분노에 답하는 법을 배운 이의 피로였다. 바스루안 물류분류기지 노동자 대표 사미르 레크비르는 자기 임금을 자기 삶보다 더 말끔한 단어로 결정할지도 모르는 장소를 점검하듯 방을 둘러봤다. 몽페라 병원장 리즈 아르날은 제방으로 보호받는 도시에 중환자실과 산부인과, 투석센터, 그리고 계곡 전체의 도덕적 논거가 되기를 자청한 적 없는 삼백 명의 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불려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농부였다. 폴 세르네라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참석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복도에서 자료를 읽은 모드가 그를 요청했다.

“왜 이 사람이죠?” 클레르가 물었다.

“초록색 구역에 농지가 있으니까요.”

“농업 지도는 이미 있습니다.”

“그러니까요.”

폴 세르네는 작업복 재킷도 벗지 않고 앉았다. 탁자에 손댈 권리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손바닥을 위로 펼쳐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이리아는 지나친 격식 없이 회의의 틀을 설명했다. 방은 관할 당국을 대신해 결정하지 않는다. 결정의 조건을 만들어내거나, 충분히 온당하게 다룰 수 없는 사안이라면 조건을 만들기를 거부해야 한다. 누구든 중단시킬 수 있다. 빈 의자는 대표되지 않은 사람이나 현실을 불러들일 수 있다.

브누아 사라쟁이 고개를 들었다.

“현실을요?”

엘렌이 대답했다.

“네.”

그는 지도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물을 초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심오한 말이 아니라 그저 성가실 만큼 정확한 말이었다.

자료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선택지. 몽페라의 제방을 높이고 양수장을 강화한다. 비용이 매우 많이 들지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고 정치적으로도 더 내세우기 좋다. 극심한 홍수가 발생하면 잔존 위험이 크다. 하류의 피해를 악화시킨다.

두 번째 선택지. 상류에 홍수터를 만든다. 메리발바 일부를 이전하고, 물류기지를 해체하며, 지도에서 아직도 예의상 농경지라 부르는 평야를 루안강에 돌려줘야 한다.

세 번째 선택지. 사실상 선택하지 않는다. 경보를 개선하고, 보상금을 늘리고, 더 빨리 복구하고, 더 많이 설명한다. 모두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여 행정기관이 오랫동안 옹호할 수 있는 종류의 해법이다. 물이 찾아와 존중은 제방이 아니라고 일깨워주는 날까지는.

마레스코는 사실관계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브누아 사라쟁은 호감을 사려 하지 않고 말했다.

“루안강의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더 자주 불어나는 게 아닙니다. 다른 방식으로 불어납니다. 토양의 흡수력이 떨어졌고, 비는 더 집중적으로 내립니다. 과거의 기준 홍수는 이제 기념 명판에나 쓸 만한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몽페라가 위험하군요.” 클레르가 말했다.

“유역 전체가 위험합니다. 몽페라는 그 사실을 가장 많은 숫자로 볼 수 있는 곳일 뿐이죠.”

잔 루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유역이라는 말은 편리하죠. 유역이라고 부르는 순간 메리발바는 지도 위의 파란 조각이 되니까요.”

“메리발바라고 부르는 순간,” 리즈 아르날이 대답했다. “제 환자들은 더 낮지 않은 도시를 골랐어야 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방은 그곳에서 첫 번째 가장자리를 찾았다.

이리아보다 먼저 목덜미가 그것을 알아챘다. 극적인 긴장 없이도 방은 직선을 거부하고 있었다. 순환 단전 회의는 결정이 덜 잔혹해지려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방에 가르쳤다. 여기서는 두 시간이 아무 쓸모 없었다. 여러 해와 빚, 이주당하는 아이들, 보험증서, 습기 찬 벽, 땅에 묻힌 죽은 이들, 임금, 버스 노선, 다시 돌아오지 않을 토양을 생각해야 했다.

세계가 너무 많은 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아무도 곧바로 문 하나를 닫으려 하지 않았다.

평야의 죽은 이들


자료의 기술적 아름다움을 처음 깨뜨린 사람은 사미르 레크비르였다.

“물류기지를 회색으로 표시했군요. 지도에서는 얼룩 하나죠. 실제로는 일자리 사백이십 개입니다. 사십 킬로미터 안에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지 못할 사람도 많아요. 근무시간은 엉망이고, 상사들도 가끔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일자리입니다. 기지를 해체한다면 물이 어디로 갈지 말하기 전에 사람들이 어디로 갈지부터 말해야 합니다.”

“두 번째 선택지에는 산업시설 재배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레르가 말했다.

“어떤 식으로 포함되어 있죠?”

클레르는 부록을 훑었다.

“대체 부지 물색 중. 운영업체와 협의. 사회적 지원 대책.”

사미르는 적대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요. 그러니까 아직 포함되지 않은 거네요.”

클레르는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이리아는 그녀가 여백에 십자 표시를 하는 것을 보았다. 건조하면서도 거의 고마워하는 듯한 십자였다.

그다음 폴 세르네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땅이 다시 자연 지대가 될 거라고들 합니다. 좋습니다. 말은 친절하죠. 하지만 제 땅은 자연 그대로가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배수했고, 도로 때문에 오염됐고, 홍수에 씻겼고, 비료를 받고, 복구되고, 다져지고, 다시 갈아엎어진 땅이에요. 강에 돌려준다고 해서 낙원을 돌려주는 게 아닙니다. 물이 할 수 있는 대로 움직이게 될 더러운 장소 하나를 여는 거죠.”

야엘은 눈에 보일 만큼 집중해서 그를 바라봤다.

“반대하십니까?”

폴 세르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산 사람들에게서 파괴하는 것의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으려고 자연을 복원한다는 말은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드는 손가락 사이에서 펜을 돌렸다.

“홍보 책자에 바로 저걸 인쇄해야겠네요.”

엘렌은 그 말을 적어달라고 했다.

클레르는 더 그럴듯하게 다듬지 않고 거의 그대로 받아 적었다.

논의는 잠시 가장 쉬운 경사를 찾았다. 각자가 자기 몫의 불행을 되찾는 방향이었다. 잔 루는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지도를 바라보고, 빈 의자의 종이를 보았다.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엘렌이 종이를 그녀 쪽으로 밀었다.

“누구죠?”

시장은 종이에 닿지 않은 채 초록색 평야 위로 두 손가락을 지나갔다.

“죽은 사람들요.”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메리발바의 묘지가 여기 있습니다.” 그녀가 덧붙였다.

브누아 사라쟁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나 지도가 대신 침묵해주기를 바랐던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기술적으로는…….”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잔이 말했다.

그 ‘아니요’는 날카롭게 울리지 않았다. 의자 하나를 놓았다.

“기술적으로는 말고요. 적어도 처음부터는. 사람들은 집 이야기를 합니다. 집은 팔고, 다시 사고, 값을 매기고, 철거 전에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직 버티는 건 죽은 이들이 세 블록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무덤을 옮기면 된다고 말해도 되고요. 하지만 옮긴 무덤은 운반된 돌덩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땅을 바꾸도록 강요받은 약속입니다.”

이리아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순간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 방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 순간을 짓밟을 수 있었다. 너무 빨리 기술적인 문제로 바꾸거나, 성스러운 것으로 떠받드는 방식이었다. 어느 쪽이든 현실을 치워버리는 일이었다.

마레스코가 물었다.

“누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잔 루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망설였다.

“시청 사무총장 아녜스 콜랭이요. 묘지 사용권, 대장, 유족들의 요청을 관리합니다. 어떤 운영위원회도 묻지 않는 것들을 알고 있어요.”

엘렌이 이리아를 바라봤다. 이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연결에는 삼 분이 걸렸다. 공공정책에서 죽은 이들이 빠질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현재 진행형으로 표시할 항목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과 방이 함께 머물러야 했던 삼 분이었다.

아녜스 콜랭이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사무실에 있었다. 프린터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 이어서 급식 신청 서류가 다 갖춰졌느냐고 묻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잔이 빠르게 설명했다. 너무 빠르지는 않게.

“듣고 있습니다.” 이리아가 말했다.

처음에 아녜스 콜랭은 사과부터 했다. 최신 수치가 없다, 보내줄 수 있다, 사용권 갱신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상대가 표를 요구하는 게 아님을 알아차렸다.

“옮길 수 있는 무덤들이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동의할 가족도 있고 반대할 가족도 있겠죠. 절차와 소송도 있을 겁니다. 그런 내용은 문서에서 보실 수 있어요. 문서에서 볼 수 없는 건 아내가 물을 무서워했다는 이유로 매주 목요일 꽃 두 송이를 들고 오는 노인입니다. 부부 합장 묘지를 사놓고 해마다 저한테 ‘우리 둘을 떼어놓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여성도 보지 못하겠죠. 평소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다가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아버지가 물속에 잠긴 모습을 상상하며 전화하는 자녀들도요.”

방은 편안한 방식으로 감동하지 않았다.

일하고 있었다.

아녜스가 계속 말했다.

“묘지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다만 회의가 끝난 뒤 의자를 치우듯 ‘무덤을 옮긴다’고 말하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겁니다.”

모드는 마레스코를 바라봤다.

“보세요. 저게 직업이에요.”

마레스코는 칭찬도 모욕도 아닌 유용한 정보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야엘이 물었다.

“그 상실을 견딜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아녜스 콜랭은 즉흥적으로 내놓은 답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대답했다.

“누구와 누가 함께 가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오래된 묘지 사용권과 최근 무덤을 다 똑같은 것처럼 섞어서는 안 되고요. 장례업체보다 유족에게 먼저 말해야 합니다. 침수 지역이 되더라도 가능한 동안은 오래된 묘지로 가는 길을 열어둬야 해요. 인터넷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화하기 전에 공식 추모식을 열어서도 안 되고요. 나무 세 그루를 심어놓고 기억이라고 부르지도 말아야 합니다.”

침묵이 찾아왔다.

순수한 침묵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펌프와 대장, 늙은 부부들, 젖은 꽃, 예산, 진흙, 시청 직원들이 들어 있었다.

방은 보기 드문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더 차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게 되고 있었다.

충분히 버티기


그때부터 회의는 심의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나의 교감이 된 것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죽은 이들을 옮기며, 평야를 물에 내어주는 이야기를 하는 방에서 그런 말은 외설적이었을 것이다. 다만 문장들이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놓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입을 열기 전, 앞서 나온 말을 잠시 자기 입안에 머금는 듯했다.

브누아 사라쟁이 다시 지도를 펼쳤다. 이제 그는 수위만 보여주지 않았다. 물이 불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 강의 흐름이 빨라지는 지점, 폐쇄됐다고 믿기 전에 이미 막혀버리는 도로, 건물 아래로 오래된 지하실들이 서로 이어져 있는 몽페라의 주택가를 보여주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말했다. 그러고는 더 어렵게, 자신이 모르는 것도 말했다.

리즈 아르날은 병원을 성소처럼 방어하기를 그만두었다. 대피 불가능한 상황과 인공호흡기, 발전기에 관해 설명했지만, 취약한 환자들을 메리발바에 맞서는 도덕적 방패로 이용하는 폭력에 관해서도 말했다.

“병원이 보호받기를 바랍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 환자들을,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집을 잃을 필요가 없게 만드는 논거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미르 레크비르는 ‘제대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무도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방은 답을 찾아 나섰다.

제대로란 화를 내지 않는다는 뜻도, 보기 좋은 공청회를 연다는 뜻도, 메리발바 주민들이 마침내 자기들보다 큰 그림을 봐준 국가에 감사하게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조금씩 그 단어는 선명함을 잃었다.

그들은 다른 손잡이를 찾아냈다.

이주할 장소를 단순한 주택 수가 아니라 거리별로 명시하기 전에는 수용 통지서를 발송하지 않는다.

물류기지를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고용 연속성 계획을 마련해야만 홍수터를 가동한다. 새 부지까지 실제 교통편을 제공하고, 위장해고를 개인의 이전 거부로 포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토양 오염과 농업의 역사, 그 평야에 이미 축적된 노동을 인정하기 전에는 ‘재자연화’라는 단어를 금지한다.

묘지를 기술 작업처럼 옮기지 않는다. 유족과 시청, 종교단체, 지방공무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무덤들의 결합 관계가 행정 단위로 취급될 경우 공사를 연기할 수 있다.

몽페라는 모든 공공 문서에서 메리발바에 요구되는 희생을 명시하지 않고는 자신의 방재를 자축할 수 없다.

마지막 문장에서 마레스코가 멈췄다.

“모든 공공 문서에서요?”

이리아는 국가의 반사작용이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홍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레스코는 법적 견고함과 언론의 공격을 견딜 힘, 적대자들에게 자기를 공격할 정확한 말을 건네주는 문서에 도지사가 서명할 수 있는지를 재고 있었다.

“네.” 잔 루가 말했다.

“견디기 힘들 겁니다.” 마레스코가 대답했다.

“이미 견디기 힘듭니다.”

야엘은 몇 분째 거의 말하지 않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녀의 존재가 방을 실제보다 아름다운 평온으로 끌어당겼다. 지금은 더 강한 거칠음이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이 상실의 진실을 짊어지도록 요구하지 않는 결정을 찾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그 제안은 엄청난 힘으로 방 안에 들어왔다.

명료했다. 어쩌면 지나치게. 그러나 현장을 대신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나온 말이었다.

폴 세르네가 마침내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써준다면,” 그가 말했다. “분노 말고도 무언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모드가 말했다.

“네.”

“아세요?”

“압니다.”

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속할 수 있겠네요.”

방은 계속했다.

결정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정이 자기 중심을 두고 거짓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처음부터 다시 짚어갔다. 홍수터는 여전히 가장 덜 잘못된 선택지였다. 몽페라는 보호받아야 했다. 메리발바 일부는 이전될 것이다. 물류기지는 그 자리에 남을 수 없었다. 폴 세르네는 농지를 잃을 것이다. 오래된 묘지는 물이 되찾을 수 있는 구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느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더는 해결책 뒤편에 부수적 피해로 줄지어 서 있지 않았다.

클레르 보드랑은 거의 한 시간 동안 글을 썼다. 수많은 문장에 줄을 그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녀의 표현을 비웃지 않았다. 너무 많은 현실에 한꺼번에 복종하려 했기에 서툰 문장들이었다.

한순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게 권고인지 결정인지 조건인지 지역 협약인지 자백인지 모르겠습니다.”

엘렌이 대답했다.

“잘됐네요.”

그러다 클레르가 진심으로 지친 얼굴로 바라보자 덧붙였다.

“미안해요. 아직 축소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그때 잊고 있던 감각이 이리아에게 돌아왔다.

합의도 평화도 아닌, 어떤 넓이였다.

방은 세계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세계의 조각들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위태롭게 이어진 한동안 아무도 한 조각으로 다른 조각을 침묵시키려 하지 않았다. 물은 집들을 침묵시키지 않았다. 집들은 병원을 침묵시키지 않았다. 병원은 일자리를 침묵시키지 않았다. 일자리는 죽은 이들을 침묵시키지 않았다. 죽은 이들은 강을 침묵시키지 않았다.

이리아는 야엘을 올려다봤다.

야엘이 울고 있었다.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방울, 어쩌면 두 방울. 못 본 척할 수 있을 만큼 재빨리 거두어들인 눈물이었다. 그러나 이리아는 보았다. 그리고 그 작은 사실은 그녀가 위험에 관해 이해했다고 믿은 모든 것을 흐트러뜨렸다.

야엘은 떨지 않고 명료함 안으로 들어갈 줄 아는 여자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무언가에 닿아 흔들릴 수 있었다. 아니면 필요한 방식으로 떠는 법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두 가설 중 무엇이 더 두려운지 이리아는 판단하지 못했다.

방이 가능하게 한 것


최종안은 열다섯 시 사십 분에 낭독됐다.

아름다운 글의 형태는 아니었다. 조건과 기한, 입증 의무, 금지된 용어, 고용 보장, 장례 관련 조항, 수문학적 약속, 이주 방식, 임시 거리명, 홍수 때마다 시행할 재검토 장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클레르가 지나치게 노출된다고 여겨 처음에는 쓰기를 거부했던 조항도 있었다.

“몽페라의 보호는 메리발바의 부분적 희생을 전제로 한다. 어떠한 공적 결정도 그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레스코는 승인에 앞서 휴식을 요청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초대된 사람들은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흩어졌다. 사미르는 노조의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리즈 아르날은 창가까지 걸어갔지만 휴대전화는 보지 않았다. 폴 세르네는 집에 돌아갈 방법이라도 적혀 있는 듯 화재 안전 포스터 앞에 서 있었다. 잔 루와 여전히 전화로 연결된 아녜스 콜랭은 십일 년째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세 무덤이 있는 가족에 관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리아는 정수기 근처에 있는 모드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생각해?”

모드는 물 한 모금을 삼켰다.

“어쩌면 옳을지도 모르겠어.”

“불쾌해 보이는데.”

“불쾌하니까.”

“왜?”

모드는 방 쪽을 바라봤다.

“이게 성공하면 저들은 기계로 만들고 싶어질 테니까.”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몇 분 전부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수치심과 함께. 회의는 모든 상실이 다른 상실에 닿도록 놓아두었고, 마침내 하나의 결정이 자기 결과보다 더 많은 것을 떠안기 시작했다.

방 안에서는 벌써 종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움이 자기 서류철을 찾고 있었다.

마레스코가 직접 두 사람을 데리러 왔다.

병원에 관한 결정이 끝났을 때보다 얼굴이 더 굳어 있었다. 그때의 결정은 가혹했지만 옹호할 수 있었다. 루안강은 달랐다. 그것은 권력에 더 거대한 가능성을 주었다. 단순히 가르는 것뿐 아니라, 칼날이 떨어지기 전에 세계 전체를 끌어안았다고 느끼게 할 가능성.

방 안에서 야엘은 자기 의자 뒤에 선 채였다. 엘렌은 빈 의자에 놓였던 종이를 다시 읽고 있었다. 클레르는 출력한 최종안을 내려놓지 않고 들고 있었다. 종이가 아직 너무 뜨거운 것처럼.

“승인할까요?” 마레스코가 물었다.

브누아 사라쟁이 찬성했다. 리즈 아르날도 그랬다. 사미르는 노동자들을 대표해 아무것도 승인하지 않겠지만, 이 문서가 진지한 논의의 토대라는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폴 세르네는 ‘강에 돌려준 땅’을 ‘공적 결정으로 침수 가능해진 땅’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방은 받아들였다. 잔 루는 메리발바를 부록이 아니라 첫 단락에 남겨달라고 했다. 마레스코는 망설인 뒤 받아들였다.

야엘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시간을 들여 자리에 앉았다.

“승인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가 상위 방의 우월성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문장도 써야 합니다.”

마레스코가 그녀를 바라봤다.

“왜죠?”

“성공한 회의 하나는 순식간에 일반적인 허가가 되니까요.”

그 대답이 이리아의 몸을 관통했다.

엘렌은 빈 의자의 종이를 탁자 한가운데 놓았다.

“그렇다면 씁시다.”

클레르는 방법론 문서에 마지막 한 줄을 추가했다.

“이번 회의에서 예외적으로 확보된 온당함은 자동 적용할 모형도, 재현 가능성의 보장도 아니다.”

모드가 낮게 비웃었다.

“저 문장을 인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네요.”

“우리가 할 겁니다.” 엘렌이 말했다.

승인에는 다시 이십 분이 걸렸다. 어느 것도 정말로 종결되지는 않았다. 소송이 이어질 것이다. 분노도. 파리의 어느 방이 마침내 자신들의 죽은 이들에 관해 제대로 말했다는 이유로 유족들이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더 강한 보장을 요구할 것이다. 농부들은 일부 감정을 거부할 것이다. 몽페라는 자기 생존의 도덕적 대가까지 치르게 한다고 여길 것이다. 메리발바는 정직한 말을 손에 든 채 자기 땅을 훔쳐간다고 여길 것이다.

방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누구 하나 구해내지 못했다.

다만 결정이 실제보다 더 결백한 척하지 못하게 했을 뿐이었다.

모두가 떠난 뒤 이리아는 몇 초간 혼자 방에 남았다. 루안강 지도는 아직 펼쳐져 있었다. 색들은 전보다 덜 말끔해 보였다. 특히 강의 푸른빛은 우아함을 잃었다.

야엘이 재킷을 가지러 돌아왔다.

“보셨죠?” 그녀가 물었다.

이리아는 그녀가 서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승리에 찬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나빴다. 진실한 피로와 거의 어린아이 같은 감사, 아직 스스로 야망이라 인정하지 않은 야망이 가득한 말이었다.

“자주 할 수는 없어요.” 이리아가 말했다.

야엘은 재킷을 팔에 걸쳤다.

“의미를 가질 만큼은 자주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나갔다.

이리아는 빈 의자와 지도, 탁자 위에 버려진 잔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이번 회의에서 두려움만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더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몇 시간 동안 방은 어떤 위원회도, 어떤 전문지식도, 어떤 도덕적 고독도 그런 방식으로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일을 가능하게 했다.

이리아는 두려웠다.

동시에, 이 일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랐다.

제4부

매끄러운 정신들

제13장

고요한 완벽

인용되는 것


아무도 인용해서는 안 되었던 문장은 마흔여섯 시간을 버텼다.

월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방법론 문서의 마지막 줄에 남아 있었다.

“이번 회기의 이례적인 적확함은 자동으로 적용할 모형도, 재현 가능성의 보장도 아니다.”

수요일, 중앙 부처들에 전달된 판본에서는 부록으로 밀려났다. 금요일에는 적용 가능 조건을 다루는 문단 속 신중한 유보 조항이 되었다. 다음 월요일, 교육 자료에서 사라졌다.

아무도 그 문장을 삭제하지 않았다.

그저 건강하게 돌아가는 행정조직과 마주쳤을 뿐이었다.

아홉 시 십칠 분, 이리아는 배포 알림을 받았다. 도청 마흔두 곳, 지역보건청 아홉 곳, 에너지 운영기관 세 곳, 그리고 장관실들을 위해 마련된 다운로드 링크 하나.

루안에게서 배울 사람들이 파일을 열어보기도 전에 그 문장은 사라져 있었다.

이리아는 존재 자체를 사과하는 듯한 제목의 공유 파일에서 문장이 사라진 정확한 자취를 찾아냈다.

“루안 - 내부 배포용 확정 요소”

첫 페이지에는 지도를 찍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색깔과 도로, 물길의 곡선은 그대로였다. 오른쪽에는 엘렌이 빈 의자에 관한 문구를 적어놓은 작은 종이 직사각형까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진은 말끔하게 잘려, 테이블이 더는 어수선해 보이지 않았다. 물컵들은 사라졌다. 지도 귀퉁이에 남은 손가락 자국도 없었다. 종이는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듯, 장치의 품위 있는 한 요소처럼 보였다.

좋은 문서였다. 이리아는 무엇이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지 받아들이기까지 두 번 읽었다.

문서는 그 회기를 노골적으로 배반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심각했다. 상실을 명명해야 한다는 것, 완곡어법을 거부한다는 것, 빈 의자의 역할, 뒤늦게 호출된 사람들의 기능까지, 정확한 것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었다. 폴 세르네의 장화에 묻은 진흙도 정직하게 언급했다.

하지만 사진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가장자리를 닦아놓았다. 손가락 자국과 물컵이 사라졌다. 구겨진 지도 귀퉁이는 사진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펴졌다. 빈 의자는 여전히 보였지만, 벌써 하나의 지침처럼 보이게 하는 빛을 받고 있었다.

자료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정돈할 뿐이었다. 그리고 문장마다 희귀한 일을 절차로 바꾸었다.

이리아는 끝까지 읽었다.

13쪽에는 파란 테두리 상자가 적용 가능한 성과를 요약하고 있었다.

“부재자들이 떠안은 비용을 식별한다. 화해되지 않은 상실의 성격을 보존한다. 당국이 감당할 수 있는 최종 문구를 산출한다.”

이리아는 마지막 단어에서 눈을 감았다.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겸손하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미끄러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국이 너무 빨리 더럽혀지지 않고도 떠안을 수 있는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

엘렌이 열린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봤어?”

“응.”

“마지막 문장이 왜 자료에서 빠졌는지 물어봤어.”

“그래서?”

엘렌은 의자에 외투를 놓았다. 추위 속을 빠르게 걸어온 모양이었다. 관자놀이 근처로 흰 머리카락 한 올이 흘러나와 있었다.

“지역 기관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답을 받았어.”

이리아는 웃음기 없이 미소 지었다.

“너무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장들은 대개 그런 운명을 맞지.”

엘렌은 맞은편에 앉았다.

“마레스코가 오늘 오후에 네가 오길 원해.”

“뭘 하러?”

“그 자료가 위험하다고 말하러.”

“이미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리아는 지도 사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말끔함에는 외설스러운 데가 있었다. 문서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신뢰하고 싶게 만들 만큼 진실을 보존하고 있었다.

“내 이의 제기를 기록에 넣고 싶은 거군.”

“응.”

“이의를 들었다고 쓸 수 있게.”

“그것도 있고.”

엘렌은 부드럽게 둘러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네가 가지 않아도 자료는 배포될 거야. 다만 ‘현재까지 전달된 유보 의견 없음’이라는 문구가 붙겠지.”

이리아는 피로가 몸에서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더 날카롭고 비좁은 무언가가 차지하는 것을 느꼈다.

“이미 배포됐어.”

“그래. 그러니까 서둘러 와야 해.”

엘렌은 태블릿으로 자료를 열었다.

“하지만 정말로 네 말을 듣고 싶어 하기도 해.”

이리아가 그녀를 보았다.

“그 사람을 변호하는 거야?”

“아니. 다만 너무 단순한 사람이 되게 두고 싶지 않을 뿐이야. 이 집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위생이지.”

이리아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엘렌도 그랬다.

그러다 웃음은 저절로 멎었다.

화면 속 루안의 지도는 벌써 교본의 삽화처럼 보였다.

재현 가능한 몸짓


교육은 부처합동 위기대비센터의 창문 없는 방에서 열렸다. 테이블은 한쪽이 트인 사각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뒤쪽 화면에는 흰 글자로 문장이 떠 있었다.

“이례적인 통찰에서 견고한 실천으로”

이리아는 일부러 십 분 늦게 도착했다. 자신 없이도 방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었다.

아주 잘 살아가고 있었다.

종이컵들이 벌써 테이블 가장자리에 줄지어 있었다. 누군가는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사인펜을 가져왔다. 방 안에는 새 플라스틱 냄새와 선의가 뒤섞여 있었다. 때로 흠잡을 데 없는 재앙에 앞서 풍기는 냄새였다.

테이블 둘레에는 스물두 명이 앉아 있었다. 예비 진행자들, 부지사들, 정책 담당자들, 판사 두 명, 병원장 한 명, 에너지 운영기관 책임자 한 명,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비 한 번 맞아본 적 없어 보이는 구두를 신은 젊은 장관실 보좌진 세 명. 회기는 클레르 보드랑이 진행했다. 루안 때보다 야위어 보였다. 아니면 일할 때 얼굴을 축소하는 법을 배운 것뿐인지도 몰랐다.

화면 속 영상에서는 아녜스 콜랭이 전화로 말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늦게 흘러나왔다.

“묘지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지킬 수 없겠죠. 다만 회의가 끝난 뒤 의자를 치우는 것처럼 ‘무덤을 옮긴다’고 말하는 짓은 그만둬야 한다는 겁니다.”

방 안의 몇 사람이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

이리아는 목덜미가 굳는 것을 느꼈다.

문장을 적는 것은 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제대로 들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들의 펜은 안도한 듯한 똑같은 성실함으로 일제히 종이 위를 내려갔다. 그들은 방금 쓸 수 있는 문구를 하나 얻었다. 아녜스의 고통, 그녀의 사무실, 프린터, 급식 서류를 요구하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전달 가능한 문장의 품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클레르가 영상을 멈췄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죠?”

한 부지사가 대답했다.

“원격으로 호출된 당사자가 모형화되지 않은 현실을 끌어들입니다.”

클레르는 침묵을 지켰다.

다른 사람이 덧붙였다.

“방이 묘지를 수용성의 변수로 다루지 못하게 합니다.”

“더 낫군요.” 클레르가 말했다.

테이블 끝의 젊은 여성이 손을 들었다. 열린 인상에, 거의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게 아닙니다. 방 안의 말들이 속도를 바꾸도록 강제합니다.”

클레르는 그 대답에 어떤 허락이라도 필요하다는 듯 이리아를 바라보았다.

이리아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클레르가 말을 이었다.

“맞아요. 중요한 지점입니다. 속도는 하나의 징후예요.”

그러자 방 안 사람들이 ‘속도’를 적었다.

그 단어가 스물두 권의 노트 위에 내려앉았다. 필체는 달랐고, 순종은 같았다.

교육은 실습으로 이어졌다. 가상의 사례가 화면에 떴다. 산업지구와 노동자 기숙사, 물류센터, 특수학교로 이어지는 도로 교량을 폐쇄하는 사안이었다. 참가자들은 대표되지 않은 사람이나 현실을 찾아내야 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임했다.

기숙사, 아이들, 구급차, 임시직 노동자, 청소업체, 차 없는 가족들, 버스 노선, 야간 근무시간, 창고 경비원까지 찾아냈다. 잘했다. 명료한 방들이 처음 생겼을 때 이리아가 보았던 수많은 방보다도 뛰어났다. 바로 그것이 이리아를 불안하게 했다.

이십 분이 지나자 클레르가 물었다.

“아직 빠진 사람은 누구죠?”

아주 아름다운 침묵이 찾아왔다. 누구도 성급히 움직이거나 돋보이려고 달려들지 않았다. 한 남자는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한 판사는 펜 돌리기를 멈췄다. 불안한 얼굴의 젊은 여성은 거의 발가벗은 듯한 집중력으로 도면을 바라보았다.

이리아는 안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저항하지 않았다.

침묵은 알맞은 길이로 이어졌다. 몸들은 알맞게 자제했다. 시선은 정확하게 지도로 돌아갔다. 불편함마저 말끔해 보였다.

그러다 장관실 보좌진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남들보다 먼저 구조되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사람이 빠졌습니다.”

정확히 찌르는 문장이었다.

조금 너무 빨랐다.

방이 스스로를 알아보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

클레르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이리아는 그 미소를 보고 클레르도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휴식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갈색 액체 세 종류밖에 만들지 못하는 커피 자판기 곁에서 만났다.

“빨리 배우네.” 클레르가 말했다.

“그래.”

“교육이 잘된다고 나를 탓하는 얼굴이야.”

“내가 널 뭘로 탓하는지 아직 모르겠어.”

클레르는 종이컵을 뽑았다. 마시지 않고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평범한 위원회라면 반년 동안 잊었을 부재자들을 방금 찾아냈어.”

“알아.”

“그럼?”

이리아는 반쯤 열린 문 너머로 방을 바라보았다. 참가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습에서 배운 조심스러움을 휴식 시간에까지 이미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자기 것이 아닌 양심의 몸짓을 배우고 있어.”

클레르는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어쩌면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는지도 몰라.”

“그럴지도.”

“음악가들도 자기 것이 되기 전에 동작부터 반복하잖아.”

이리아는 옛 공책들을 떠올렸다. 모방과 연주, 듣기에 관해 적혀 있던 것들. 그 기억을 방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았다.

“연습하는 음악가는 엉망인 소리를 낼 각오를 해.” 이리아가 말했다. “여기서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순간 벌써 보상을 받잖아.”

클레르는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찌푸렸다.

“끔찍하네.”

“커피가?”

“나머지도.”

짧은 문장


마레스코는 교육에 오지 않았다.

그는 저녁 여섯 시, 마티뇽 청사의 집무실에서 이리아를 만나자고 했다. 정원 위로는 벌써 밤이 내렸다. 벽의 조명은 금박 장식에 지친 광택을 입혔다. 이리아는 별관의 방들을 더 좋아했다. 그곳에서는 권력이 스스로를 심각하게 여길 공간이 조금 적었다.

마레스코 앞에는 손으로 주석을 단 루안 자료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너무 빨리 간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네.”

“예외를 방법으로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네.”

“이 방법이 깊이에 대한 하나의 미학을 만들어낼 거라고도 생각하죠.”

이리아는 외투를 벗었다.

“제 대사를 이미 다 써두셨다면 저는 돌아가도 되겠네요.”

그는 웃지 않았다.

“제가 실수하지 않게 막아달라는 겁니다. 제 직무를 심판해달라는 게 아니라.”

“둘은 때때로 아주 비슷합니다.”

마레스코는 한 장을 넘겼다.

“루안은 무언가를 구했습니다. 전부도 아니고 말끔하게도 아니지만, 무언가는 구했어요. 당신도 압니다.”

“네.”

“지사들은 무엇이 효과가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재현된다고 믿는 일을 어떻게 피할지 물어야죠.”

“나라를 잃는 데 아주 유용한 문장이군요.”

이리아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 집무실에는 역사가 너무 많아 신중함만을 단순히 말할 수 없었다. 선반에는 오래된 파리 지도가 액자에 담겨 있었다. 세느강은 인쇄되는 순간 견딜 만해지는 모든 것의 우아함을 띠며 도시를 가로질렀다.

“상설 상급 기구를 원하시죠.” 이리아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유용하기를 바라시고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감탄할 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레스코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간단합니다. 오히려 이것만큼은 간단해요.”

그는 그 거친 말을 흘려보냈다.

“감탄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는 제도는 버티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힘에, 습관에, 이해관계에, 때로는 두려움에 복종하죠. 하지만 위기 때는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기관이 그저 자신들의 상실을 관리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해요.”

“너무 많이 믿게 되면요?”

“그때 당신이 개입하는 겁니다.”

거의 다정한 대답이었다.

협박했더라면 차라리 덜 화가 났을 것이다.

“저까지 안전장치 조항으로 만들고 싶으시군요.”

“당신이 보는 일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어주길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제 의견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멀리 두고요.”

마레스코는 문서로 눈을 내렸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그는 나이 들어 보였다. 패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이용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의 흔한 피로에 더 가까워진 얼굴이었다.

“이의를 국가 안으로 들이는 다른 방법을 저는 많이 알지 못합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면 듣겠습니다.”

냉소적인 문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나빴다.

아마도 사실이었다.

이리아는 모드와 제롬, 세실 다르세, 아녜스 콜랭을 떠올렸다. 뒤늦게 침입하듯, 혹은 필요 때문에 안으로 들어왔던 사람들. 이어 오후 교육의 광경이 되살아났다. 이미 너무 능숙하게, 연기하지 않는 척을 연기할 준비가 된 몸들.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이리아가 말했다.

“얼마나?”

“일정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레스코는 기다렸다.

“방들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여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가 그 문장을 적었다.

이리아는 손을 뻗어 그의 노트 위에 두 손가락을 얹었다.

“아뇨.”

그가 눈을 들었다.

“그렇게 적지 마세요.”

“왜죠?”

“내일이면 누군가 방의 자기 이상화 방지 교육 모듈을 제안할 테니까요.”

마레스코는 거의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이리아도 그랬다.

그는 방금 적은 줄을 그어버렸다.

“그럼 다르게 말해보세요.”

이리아는 검게 지워진 자국을 바라보았다. 더 빈약하고, 활용하기도 더 어려운 문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실패하게 두세요.”

마레스코는 적지 않았다.

“그건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잘됐네요.”

너무 아름다웠던 첫 번째 방


다음 날, 이리아는 리모주의 한 도 단위 명료한 방에서 촬영한 영상을 받았다. 소규모 산부인과 폐쇄 계획을 다룬 회기였다. 파일은 사라가 아무 설명 없이 보냈다. 그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대개 부정적인 평가였다.

이리아는 늦은 밤 집에서 영상을 열었다.

방은 소박했다. 지나치게 희었지만 호화롭지는 않았다. 참가자는 열 명 남짓이었다. 지역보건청장 한 명. 조산사 두 명. 농촌 시장 한 명. 학부모단체 대표 한 명. 응급의학과 의사 한 명. 환자 이송 책임자 한 명. 사회학자 한 명. 최근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해 초대된 사제 한 명. 사제는 왜 자신이 다른 곳도 아닌 거기에 앉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회기는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수치는 오만함 없이 제시되었다. 이동 시간은 도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바로잡았다. 한 조산사는 ‘출생 권역’이라는 표현을 거부했다. 시장이 ‘사막’이라는 말을 되풀이하자, 한 여성이 사막에는 아름다움이라도 있지만 자기 지역에는 회전교차로뿐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웃었다. 오래 웃지는 않았다. 고통이 모든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만큼만 웃었다.

그러다 젊은 어머니 한 명이 원격으로 호출되었다. 그녀는 차 안에서 보낸 사십삼 분, 빗줄기, 트럭 전조등, 자기는 남편을 때리고 싶었는데도 계속 숨 쉬라고만 하던 남편, 병원에 도착하고 이십 분 뒤 태어난 아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방은 정말로 견뎌냈다. 자신을 보호하며 버틴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며 버텼다.

최종 결정은 가혹했다. 두 곳의 폐쇄는 유지되었다. 대신 야간 이동진료팀을 만들고, 출산 전 숙박비를 지원하며, 환자 이송 거리를 시청 소재지가 아니라 실제 마을에서 계산하고, 운송 협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폐쇄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이리아는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잘못을 찾아내고 싶었다.

찾지 못했다.

끝에 지역보건청장이 말했다.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두고 거짓말하지 않았는지만 확인해주십시오.”

좋았다.

아주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영상은 벌써 다른 제목으로 퍼지고 있었다.

“리모주, 루안 모델의 견고성을 입증하다.”

이리아는 메시지 제목을 오래 바라보았다.

방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제목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제14장

가짜 공허

무방비한 남자


이리아는 사흘 일찍 경고를 울렸다.

나중에야 알게 될 일이었다. 그 순간에는 방 안의 모든 사람을 상대로 자주 옳았던 이들의 피로를 안은 채,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

회기는 렌의 도청에서 빌려준 방에서 열렸다.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들을 위한 야간 수용시설 개편을 다루는 자리였다. 볼거리라고는 없었다. 국가적 위기도, 강 지도도, 묘지도, 카메라도 없었다. 나라에 분노할 일이 달리도 많다고 행정이 생각할 때 만들어내는, 지저분하고 눈에 띄지 않는 결정이었다.

두 보호시설이 밤에는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기차역 근처에 단일 센터가 문을 열게 된다. 단체들은 안전을 말했다. 도청은 인력을 말했다. 도 의회는 때때로 미성년 여부 자체를 의심하는 청소년들을 말했다. 경찰은 부랑을 말했다. 한 생활지도사는 언제든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있음을 아는 아이들은 결코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십 분쯤 지나 이리아는 그 남자를 알아보았다.

토마 리비에르. 수용시설 부원장. 마흔 살, 갸름한 얼굴, 회색 스웨터, 짧게 자른 머리. 그는 말을 적게 했고 늘 다른 사람들 뒤에 입을 열었다. 방에 도움이 되었어야 할 차분한 정확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었다. 자기 시설이 공격받아도 방어하지 않았다. 이의를 받아들이고 다시 표현해, 원래보다 거의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의 모든 것이 열려 있는 듯했다. 지나치게.

한 자원봉사자가 그에게 말끔한 말로 청소년들을 길거리에 내버린다고 비난하자, 그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대답했다.

“우리의 피로가 충분한 설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거부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 문장은 방 안에 좋은 기운을 가져왔다.

이리아의 의심이 치솟았다.

그런 종류의 좋음은 수상했다. 비난을 더 고귀하고 덜 위험하게 만들었다. 자원봉사자가 분노를 유지하면서도 인정받았다고 느끼게 했다. 방은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 순조롭게 나아갔다.

나중에 한 단체가 원격으로 연결한 젊은 남성이 삼 년 전 센터를 옮긴 뒤 현관 차양 아래에서 보낸 하룻밤을 이야기했다. 그는 천천히 프랑스어를 말했다. 단어를 찾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가 어느 속도로 방 안에 들어와야 하는지를 남들이 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토마 리비에르는 꼼짝하지 않고 들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젊은 남성이 말을 마치자 토마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방금 하신 이야기는 우리가 그 이동을 ‘안전한 곳으로의 보호’라고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정확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비어 있었다.

이리아는 회기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방 안 사람들이 즉시 고분고분하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순종이 그녀를 짜증 나게 했다.

“고통을 흡수하면서도 그 고통에 의해 달라지지 않는 문장에 보상하는 일을 멈췄으면 합니다.”

토마 리비에르가 눈을 들었다.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목소리에는 도전이 없었다. 질문만 있었다.

“네.” 이리아가 말했다.

방은 단숨에 평온을 잃었다. 생활지도사는 토마를 보았다가 이리아를 보고, 다시 자기 노트를 보았다. 도청 책임자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원격으로 연결된 젊은 남성은 방금 무엇이 누구를 향해 움직였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토마는 테이블 위에 두 손을 놓았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모든 공격을 유용한 재료로 바꾸지 마세요.”

“제가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있어요.”

말이 너무 빨리 튀어나왔다.

이리아가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말끔하게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토마 리비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앞에 놓인 마이크로 시선을 옮겼다. 그 물건이 갑자기 너무 무거워진 듯했다. 바로 그 평온이 이리아의 진단을 확신하게 했고, 바로 그것이 그녀를 그르치게 했다.

“그럼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그는 침묵했다.

회기는 그를 빼고 계속되었다.

덜 아름답고 더 거칠어졌으며, 이리아가 필요하다고 믿는 모습에 가까워졌다. 한 단체는 단일 센터에 반대했다. 도청은 야간 순찰팀이 석 달 동안 증원되지 않을 것임을 인정했다. 생활지도사는 인력난에도 두 시설을 번갈아 열어두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최종 결정은 덜 명료하고, 경제적으로 덜 매력적이며, 더 취약했다.

이리아는 위험한 부드러움을 막아냈다는 느낌으로 방을 나왔다.

복도에서 생활지도사가 그녀를 붙잡았다.

“모르셨어요?”

“뭘요?”

그녀는 회의실 문 쪽을 보았다.

“토마는 이 년 전에 아들을 잃었어요. 자살이었죠. 열여섯 살이었어요. 그 뒤로 젊은이들 앞에서 무너질 것 같으면 저렇게 말해요.”

이리아는 복도가 뒤로 밀려나는 것을 느꼈다.

“제게 알려줬어야죠.”

“그는 그 일이 이용되는 걸 원치 않아요.”

생활지도사는 거의 매정한 몸짓을 했다.

“당신은 그가 떨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안으로 떨고 있었던 겁니다.”

이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토마 리비에르도 방에서 나왔다. 한쪽 팔에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두 여자를 보고는 상황을 금세 알아차렸지만, 소동을 벌이지 않았다.

“한 가지는 당신 말이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리아에게 말했다.

차라리 화를 내주었으면 했다.

“어떤 점이죠?”

“저는 문장을 너무 쉽게 짊어질 수 있게 만듭니다. 똑바로 서 있기 위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죠.”

그는 외투를 입었다.

“다만 그건 공허가 아닙니다.”

그는 떠났다.

외투를 입다가 팔뚝에서 옷이 미끄러졌다. 소매를 찾으려고 두 번이나 다시 손을 넣어야 했다.

거의 아무것도 아닌 몸짓이었다. 하지만 이리아가 넘어지지 않으려는 방식을 공허라고 불렀음을 뒤늦게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이리아는 자신이 아직도 펜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너무 세게 쥐어 손바닥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문장은 토마보다 오래 복도에 남았다.

점검표


이리아가 렌에 관해 쓴 보고서는 완성되기도 전에 다른 용도로 전용되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의심에 상처 입은 신중한 글을 석 장 썼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가짜 초연함과 고통스러운 자기 통제를 구별했다. 어떤 행동 지표도 단독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누군가 떨지 않는 데에는 연기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일 수도, 지쳤기 때문일 수도, 자기 안의 몇몇 부분이 죽었기 때문일 수도, 혹은 자신의 붕괴를 구경거리로 내놓지 않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점검표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고 믿었다.

두 주 뒤, 실무단은 그 글에서 점검표 하나를 뽑아냈다.

사라가 두 마디와 함께 보내왔다.

“토 나와.”

문서의 제목은 이랬다.

“조작된 개방성과 방어적 초연함의 징후”

표에는 여러 열이 있었다.

지나치게 일정한 어조. 이의 제기를 너무 매끄럽게 수용함. 미세한 망설임의 부재. 공격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함. 피로를 고상한 범주로 사용함.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눈에 띄는 자세 변화가 없음.

각 항목에는 세 단계의 위험도가 붙어 있었다.

이리아는 자신의 어휘가 잘리고 씻겨 실용적으로 변한 것을 읽었다.

작성자들은 부록에 그녀의 유보 의견까지 인용했다. 주의 사항과 신중함을 강조하는 상자를 넣고, 이탤릭체 경고문도 세 개나 덧붙였다.

그러고는 위험에 번호를 매겼다.

이리아의 시선은 세 번째 열에 오래 머물렀다.

고위험.

보호하기 위한 문구처럼 보였다.

실은 누군가가 가져올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하지 않고도 그 사람을 멀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리아는 엘렌에게 전화했다.

“점검표 봤어?”

“응.”

“중단시켜.”

“이미 요구했어.”

“그래서?”

“의사결정표가 아니라 주의를 위한 보조자료일 뿐이라는 답을 받았어.”

이리아는 눈을 감았다.

“국가가 하는 말 중 가장 위험한 문장이네.”

“가장 위험한 건 아니야. 하지만 일은 잘하지.”

엘렌의 목소리는 낮았다. 뒤로 복도 소리와 발걸음, 어쩌면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마레스코도 알아?”

“응.”

“그런데 내버려둬?”

“관찰 중이야.”

“그게 더 나빠.”

“그래.”

그날 저녁, 모드는 유리병에 담은 수프와 사과 한 봉지를 들고 이리아의 집에 왔다. 방해가 되느냐고 묻지 않았다. 방문할 때마다 호의를 베푸는 일로 만들지 않는, 드문 우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 쪽도 제대로 분류하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도 있었다. 몇 달 전, 생나제르에서 회기가 너무 길어진 어느 날 밤, 모드는 이리아의 집에서 자고 갔다. 처음에는 지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발을 벗고 소파에 등을 기대 바닥에 앉아, 미지근한 물컵을 손 닿는 곳에 두고. 그러다 침묵의 온도가 바뀌었다. 모드는 이리아를 붙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곳에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손가락 두 개를 그녀의 손목에 올렸다. 이리아는 손을 돌렸다.

그 몸짓을 호위할 알맞은 문장 하나 찾지 못한 채 두 사람은 입을 맞추었다.

그 뒤에 이어진 일은 소설 같은 전환과는 거리가 멀었다. 약속도, 결정적인 발견도, 다음 날 당장 붙여야 할 이름도 없었다. 그저 한 시간 동안 언어에게 존재의 허락을 구하지 않게 된 지친 두 몸이 있었을 뿐이다. 이리아에게는 그날 밤의 터무니없는 세부들이 남아 있었다. 모드의 어깨에 찍힌 고무밴드 자국, 허리 위쪽의 옅은 흉터, 담요를 찾으며 소리를 죽여 웃던 순간, 그리고 어떤 방도, 어떤 방법도, 어떤 보고서도 들어올 권리가 없었던 그 뒤의 고요.

그 후로 둘은 그것을 비밀로 만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하나의 범주로 만들기를 거부했다. 안정된 기능을 요구받는 순간 지성을 잃는 것들이 있다.

이리아는 모드에게 점검표를 보여주었다.

모드는 부엌에 서서 사과를 먹으며 읽었다.

“편리하네.”

“고맙다.”

“아니, 진짜로 편리하다고. 이거면 누구든 죽일 수 있어.”

그녀는 접시에 사과 심을 내려놓았다.

“우는 사람은 조종하는 거고, 울지 않는 사람은 초연한 거야. 망설이는 사람은 저항하고, 대답을 너무 잘하는 사람은 흡수하지. 말을 못하면 개방성이 부족하고. 완벽하네.”

이리아는 수프 병을 집어 들었다. 아직 미지근했다.

“내 보고서야.”

“아니.”

“맞아.”

“네 보고서는 떨고 있는 물건이야. 이건 누군가 그걸 얼리고 난 뒤에 남은 거고.”

모드는 외투를 다시 입었다.

“갈래?”

“어디?”

“걷자.”

“비 오는데.”

“그러니까. 빗속에서는 생각이 잘 마르지 않잖아.”

두 사람은 사십 분을 걸었다. 보도는 번들거렸다. 차들이 횡단보도를 더럽혔다. 모드는 말을 아꼈다. 이리아는 그 점이 고마웠다.

얼마 뒤 모드가 말했다.

“넌 사람들에게서 가짜 공허를 찾고 있어. 방이 왜 사람들로 하여금 그걸 만들고 싶게 하는지도 찾아봐.”

이리아는 걸음을 늦췄다.

“무슨 뜻이야?”

“분노를 가지고 들어가면 바보 같은 분노로 돌려주는 방이 있어. 그러면 사람은 분노 없이 들어가는 법을 배우지. 그다음엔 그걸 명료함이라고 불러.”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빗방울은 두 사람의 후드 위에서 거의 다정한 소리를 냈다.

배제된 참가자


첫 공식 사고는 오를레앙에서 일어났다. 물론 서류에는 사고라고 적히지 않았다. ‘조정’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동안, 어떤 일도 사고가 되지 않는다.

한 지역 명료한 방이 우편물 분류센터의 부분 폐쇄와 직원 백사십이 명을 자동화 물류기지 세 곳으로 재배치하는 문제를 다룰 예정이었다. 그 폭력성만큼이나 흔한 사안이었다. 현대화, 우편물의 구조적 감소, 지원을 동반한 이동, 직무 재배치, 길어진 통근시간, 급여명세서에 이름은 남아 있으면서 사라지는 직종에 관해 말했다.

노조 대표 한 명이 소집되었다가 전날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사유는 이랬다.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개방성을 저해하는 방어적 집착의 위험이 높음.”

이리아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클레르에게 전화했다.

“누가 서명했어?”

침묵.

“클레르.”

“진행팀의 의견을 받아 도청이.”

“무슨 근거로?”

“알잖아.”

“몰라.”

“알아.”

클레르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비겁하지는 않았다.

“그 점검표를 썼어.”

이리아는 컴퓨터를 닫았다.

“가자.”

“회기는 두 시간 뒤에 시작해.”

“그럼 두 시간 있네.”

기차에서 클레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사건 서류와 이메일, 검토 의견을 챙겨왔다. 이리아는 평평한 들판과 창고, 상업지구의 주차장이 스쳐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 삶의 한복판에 정확히 자리한 주제에 변두리라 불리는, 취향 나쁜 나라 전체가 흘러갔다.

노조 대표는 오를레앙역 근처 카페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앙드레 르무안. 쉰여덟 살, 회색 콧수염, 비옷, 넓은 손. 반으로 접힌 종이가 가득한 두꺼운 서류철을 가져왔다.

“제가 열려 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는 잠깐 웃었다.

“맞습니다. 화내느라 아주 바쁘거든요.”

이리아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왜 명단에서 빠지신 겁니까?”

“그 자동화 물류기지인지 뭔지, 내가 생각하는 구멍에 처넣으라고 했거든요.”

클레르가 기침했다.

앙드레는 그녀를 보았다.

“다시 점잖게 표현해드릴까요?”

“꼭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 뒤에는 이것도 말했습니다.”

종이에는 이름과 나이, 거리, 열차 시간, 환승시간, 건강 문제, 양육권을 번갈아 행사하는 자녀들, 실직한 배우자들, 나이 든 부모들, 의학적 업무 제한이 적혀 있었다.

“덜 우아하죠.” 그가 말했다. “하지만 훨씬 더 열려 있습니다.”

이리아는 종이를 받았다.

종이가 손가락에 닿는 순간, 자신의 어휘가 허용한 일을 말끔히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회기는 삼십 분 늦게 시작되었다. 앙드레 르무안은 이리아와 클레르와 함께 방에 들어갔다. 지사는 항의하려 했다. 클레르는 판단 착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더 말하지 않았다. 충분하지 않았지만, 육 개월 전의 그녀라면 적지 않았을 말보다 이미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앙드레는 차분하지 않았다.

말을 끊었다. 두 번 욕을 했다. 경영진이 거짓말한다고 비난했다. 수치 하나를 잘못 말한 뒤 마지못해 인정했고, 부록 어디에도 없는 이름 세 개를 댔다.

방은 아름답지 않았다. 유용했다.

결국 폐쇄는 철회되지 않았다. 세상은 그런 선물을 자주 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직원 스물여덟 명의 전보가 보류되었고, 실제 거주지에서부터 통근시간을 다시 계산했으며, 의학적 업무 제한은 더 이상 개별 요청으로 취급되지 않았고, 전환일은 넉 달 미뤄졌다.

앙드레 르무안은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않았다.

나가며 이리아에게 말했다.

“그 명료한 방이라는 거, 명료하지 않은 사람들을 받아줄 때가 더 낫군요.”

그는 빗속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클레르는 로비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점검표를 폐기해야겠어.”

“그래.”

“그 사람들은 다른 걸 만들 거야.”

“그래.”

클레르는 팔짱을 꼈다.

“그럼 이제 그들에게 말을 주는 일부터 그만둬야 하나 봐.”

이리아는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말을 더는 제공하지 않는 직업은 흔히 최악의 사람들이 자기 말을 제공하도록 자리를 내준다.

이름


이리아는 삼 주 뒤 토마 리비에르를 다시 만났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는 평가위원회 청문회 때문에 파리에 와 있었다. 아주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십 분 시간 되시면 몽파르나스 근처에서 커피 한잔하시죠. 안 되셔도 괜찮습니다.”

이리아는 나갔다.

그는 이미 주문을 마친 뒤였다. 자신에게는 차, 이리아에게는 커피. 이리아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을 뻔했다. 그러다 회기 휴식 시간마다 커피가 맛없든 너무 뜨겁든 늘 마셨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치 그 쓴맛이 자신을 사회적으로 용납 가능한 상태로 붙들어주기라도 하는 듯이.

“정정 의견서를 읽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압니다.”

그 말로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았다는 얘기는 덧붙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은 렌과 보호시설들, 수정된 결정, 지친 생활지도사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침묵이 찾아왔다. 잔과 주문 소리, 너무 자주 열리는 문이 뒤섞인 카페의 침묵이었다.

토마 리비에르가 말했다.

“가짜 공허라고 이름 붙이셨더군요.”

“네.”

“나쁜 이름은 아닙니다.”

이리아는 그를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하지만 반대말이 빠졌습니다.”

“가짜 공허의 반대말이요?”

“‘가득 참’만은 절대 아닙니다.”

그는 짧게 웃었다.

“무언가 지나갈 수 있게 하는 공허.”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공허’라는 단어만으로도 경계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값싸게 깊어 보이려고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토마는 약속처럼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직접 수리한 의자를 가리키듯 말했다.

“어떤 회의에서는요.” 그가 말을 이었다. “모두가 자기가 가져온 것을 이미 너무 세게 붙들고 있어서,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전문성, 두려움, 서류, 수치심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간의 자리가 생겨야 하죠. 하지만 그 자리는 부재가 아닙니다. 그건…… 잘 모르겠군요.”

그는 말을 찾았다.

“환대일까요?”

이리아는 그 단어가 소리 없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개방성도, 초연함도, 중립도 아닌 환대.

더 오래되고, 덜 다루기 쉽고, 덜 효율적인 단어. ‘나는 비어 있다’고 말하지 않는 단어. ‘무언가 올 수 있으며, 나는 그것의 주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단어.

토마는 찻잔으로 눈을 내렸다.

“제 아들은 늘 벽 없는 집을 그렸습니다. 지붕도, 문도, 식탁도, 창문도 있는데 벽만 없었어요. 나는 그럼 집이 서 있지 못한다고 말했죠. 아이는 사람들이 어디로 나가면 안 되는지 알아볼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떨림이 보였다.

“왜 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리아는 이 순간이 중요해질 것임을 알았다.

교훈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장소로서.

제15장

예의 바른 희생자들

잘 쓰인 편지들


완벽은 많은 편지를 낳는다.

그해 겨울, 이리아가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잘못 내려진 결정 뒤에는 항의와 소송, 욕설, 건물 점거, 손팻말, 때로는 깨진 유리창이 남는다. 명료한 결정 뒤에는 잘 쓰인 편지가 남는다.

그 편지들은 흔히 인정하는 말로 시작한다.

“이번 결정이 저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려진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혹은,

“저희는 이 조정이 전반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는,

“이번 개편이 치르게 할 인간적 대가를 명시적으로 밝혀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그러다 문장이 방향을 튼다.

언제나 튼다.

“하지만……”

이리아는 그런 편지를 수백 통 받았다.

몽페라, 메리발바스, 오를레앙, 리모주, 생브레뱅데오, 라로크살린에서 온 편지들이었다. 거리를 알지는 못해도 이제는 그곳의 방과 지도, 회기를 끝맺은 문구들을 아는 작은 도시들에서 왔다. 더 나은 방식으로 대신 결정해주기 시작한 뒤로 사람들은 더 좋은 글을 썼다. 그것 또한 잔인함이었다.

메리발바스의 한 여성은 공개 문서가 드문 정직함으로 자기 마을의 희생을 명명했으며, 어머니의 집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전까지는 자신도 모르게 지사에게 감사하고 있었다고 썼다.

오를레앙 분류센터의 한 직원은 넉 달의 연기가 자신의 치료를 구했다고 쓴 뒤, 여전히 팀을 깨뜨리고 있는 결정에 품게 된 이 감사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리무쟁의 한 조산사는 새 야간 체계가 틀림없이 죽음을 막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여자들이 이제 출산 예정일 전날이면 지나치게 큰 가방을 들고 낯선 숙소에 도착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마치 출산이 그 지역에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처럼.

이리아는 모든 편지를 읽었다. 덕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읽지 않는 편이 더 편안했기 때문이다.

어느 아침, 사물함에서 발신자 표시 없는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평범한 종이에 비스듬한 글씨로 넉 장. 폴 세르네가 보낸 편지였다.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읽기가 더 어려웠다.

“다노 씨께,

정확히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에,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으로 침수 가능 지역으로 되돌릴 땅은 아버지가 ‘메마른 밭’이라 부르던 곳입니다. 수확이 많이 난 적은 없습니다. 돌멩이와 유리 조각투성이였죠. 어릴 때 나는 그곳이 나쁜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야 그 땅이 흔적을 가장 잘 간직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홍수가 다른 곳에서 가져간 물건들이 거기서는 모조리 발견됐습니다. 나뭇조각, 병뚜껑, 장갑, 인형, 한 번은 신발도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강물이 넝마주이의 기억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 문장을 당신들의 문서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리아는 편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울지 않았다.

더 나쁜 일을 했다. 그 문장이 어디에 들어갈 수 있을지 찾아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눈을 감았다.

후속점검위원회


루안 후속점검위원회는 결정이 내려진 지 석 달 뒤 도청 회의실에서 열렸다.

지도는 달라져 있었다. 색은 덜 선명했다. 화살표와 빗금 친 구역, 필지 번호, 이주 후보지를 나타내는 점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오래된 묘지 둘레에는 보라색 선이 그어졌다. 물류기지에는 이제 각주가 달려 있었다.

잔 루는 아녜스 콜랭과 함께 왔다. 사미르 레크비르는 직원 두 명과 함께였다. 리즈 아르날은 오지 않았다. 대리인을 보냈고, 그것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말해주었다. 폴 세르네도 와 있었다. 첫 회기 때보다 수염을 말끔히 깎은 모습이었다. 행정이 자신을 단정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는 즐거움을 빼앗으려 한 듯했다.

마레스코는 직접 오지 않았다. 클레르 보드랑이 중앙 기관을 대표했다. 이리아는 참관했다. 엘렌도 있었다. 야엘은 참석하지 않았고, 그녀의 부재 때문에 방에는 더 솔직한 거친 결이 생겨났다.

지사는 절제된 말로 회기를 열었다. 그도 배웠다. 금지된 단어들은 나오지 않았다. 자연 복원을 말하지 않고, 공적 결정으로 침수 가능 지역이 되는 땅을 말했다. 사회적 지원을 말하지 않고, 고용과 교통의 보장, 위장 해고를 거부한다는 원칙을 말했다. 무덤의 이전을 말하지 않고, 장례를 통해 이어진 관계의 연속성을 말했다.

좋았다.

그러고 나서 날짜가 등장했다.

이주가 지연되고 있었다. 물류기지의 대체 부지는 예상보다 비쌌다. 묘지에 연고를 둔 가족들이 모두 답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묘지 사용권 두 건은 법적 문제가 있었다. 임시도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보험사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서류를 요구했다. 물류기지는 이전하기도 전에 인력을 줄이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현실이 다시 제 일을 시작했다.

사미르 레크비르는 오랫동안 기다린 뒤 입을 열었다.

“위장 해고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쓰셨죠.”

“그렇습니다.” 지사가 말했다.

“어떻게요?”

지사는 메모를 살폈다.

“개별 맞춤형 후속점검팀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사미르는 거의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한 명씩.”

“각자의 상황을 검토해야 합니다.”

“한 명씩.” 사미르가 되풀이했다. “집단을 깬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집단을 깨는 방법이 바로 그거죠.”

클레르는 받아 적었다.

사미르가 그 모습을 보았다.

“적기만 하지 마세요. 대답을 원합니다.”

클레르가 눈을 들었다.

그녀도 배웠다. 예전이었다면 절차를 설명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말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요?”

“그리고 오늘 제게는 충분한 장치가 없습니다.”

그 문장은 방 안에 조금 싸늘한 기운을 던졌다. 거칠어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더는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 지난 뒤 폴 세르네가 입을 열었다.

“토양 감정 결과를 받았습니다.”

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 정화 작업의 필요성이 확인됐습니다.”

“아뇨.” 폴이 말했다. “더러운 땅을 내게서 빼앗고, 더럽다는 이유로 가치가 낮은 것처럼 값을 매긴 다음, 그 땅이 더는 내 것이 아닐 때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정화하겠다는 사실이 확인됐죠.”

누구도 바로 알맞은 범주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방은 그 문장과 함께 머물렀다.

아녜스 콜랭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무릎 위에 서류철을 올려놓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것을 열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이 무덤은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모릅니다.”

사진이 돌았다. 회색 비석, 거의 지워진 이름, 두 개의 날짜, 금이 간 도자기 명패. 아래쪽 가장자리에는 갈라진 틈으로 자라난 풀 한 포기가 보였다.

“기록에는 1960년대에 드뢰로 떠난 가족이 있다고 나옵니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어요. 묘지 사용권도 만료된 지 오래됐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반환 처리할 수 있죠.”

지사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술적으로’가 함정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찾아옵니다.” 아녜스가 말했다.

“뭐라고요?”

“아직도 누군가 와요. 아마 일 년에 한 번쯤. 꽃은 남기지 않고, 가장자리에 납작한 돌 하나만 놓고 갑니다. 누군지는 몰라요.”

그녀는 사진을 테이블 한가운데 놓았다.

“이걸 일정표에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리아는 사진을 둘러싼 손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사진에 손대지 않았다.

루안의 회기가 아름다웠던 것은 여러 사물을 함께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후속점검위원회는 더 가혹했다.

함께 붙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문장들이 끝난 뒤에도 오래 붙들어야 했다. 예산이 돌아오고, 책임자들이 바뀌고, 나라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정직한 말에 서명했던 사람들마저 그 말에 지치기 시작한 뒤까지.

고요한 완벽은 결정하는 순간에만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위험한 것은 그 이후였다. 모두가 그 어려움은 이미 도덕적으로 처리되었다고 믿을 수 있게 되는 때.

말끔한 대가


저녁,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엘렌은 이리아를 보지 않은 채 물었다.

“우리가 다르게 결정했어야 했다고 생각해?”

바깥에서는 밤이 들판을 지웠다. 창문에 겹쳐진 두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엘렌은 더 창백했고, 이리아는 더 단단해 보였다.

“모르겠어.”

“편안한 대답은 아니네.”

“다른 대답이 없어.”

엘렌은 서류철을 닫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그건지도 몰라. 덜 틀린 결정도 거의 똑같이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

이리아는 폴 세르네와 사미르, 아녜스, 연고 없는 무덤, 해마다 놓이는 돌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방들은 무슨 소용이 있어?”

엘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기차는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역을 앞두고 속도를 늦췄다. 승강장에는 외투를 여민 몇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성이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승강장의 형광등은 모든 것을 더 벌거벗고 현실적으로 보이게 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기가 선을 행했다고 믿는 안락함을 빼앗는 데 쓰일지도 모르지.” 엘렌이 말했다.

“그건 너무 적잖아.”

“그래.”

그러고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 얼마 안 되는 것조차 그들은 벌써 싫어해.”

밤 열 시 십 분, 이리아는 마레스코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내일 회의. 상급 기구. 공고화 단계.”

그녀는 엘렌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엘렌이 한숨을 쉬었다.

“공고화라는 말은 밤 여덟 시 이후엔 금지해야 해.”

“그 전에도.”

기차가 다시 출발했다.

창에 비친 이리아의 모습은 검은 구역 위에서 흔들리다가 작은 도시의 불빛 위로 옮겨갔다. 그녀는 사진을 둘러싼 손들과 서류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으면서도 이후의 일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해주던 말끔한 문장들을 떠올렸다.

폴 세르네의 편지를 다시 펼쳤다.

“강물은 넝마주이의 기억을 가졌습니다.”

그 문장은 방법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더러운 채로 남고 싶어 했다.

야엘의 문턱


다음 날 회의에는 인쇄된 서류가 없었다.

마레스코가 더 가벼운 형식을 원했다. 무거운 결정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준비되었다는 표시였다.

야엘도 참석했다. 검은 스웨터 차림에 장신구도, 컴퓨터도 없었다. 두 손은 고요한 물건 두 개처럼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이리아는 그녀의 얼굴에서 루안 때 흘린 눈물의 흔적을 찾았다. 찾을 것은 없었다. 피부는 적들에게 보여줄 증거를 보존하지 않는다.

클레르는 공고화 단계를 발표했다. 중앙 진행자 교육, 자료의 표준화, 빈 의자 운영 절차, 뒤늦은 호출의 기준, 결정 이후의 후속점검 방식, 비재현성 원칙.

마지막 항목에서 이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비재현성 원칙이라고요?”

클레르는 지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도 알아.”

마레스코가 끼어들었다.

“명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지키지 않을 겁니다.”

“원칙으로 명시하면 모두가 지키는 척하겠죠.”

“때로는 그것이 첫 단계입니다.”

“무엇을 향한 첫 단계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야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방이 하나의 미학이 될까 두려운 거죠. 맞는 두려움이에요. 하지만 다른 위험을 잊고 있습니다.”

이리아는 야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떤 위험이죠?”

“미학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전의 잔혹함으로 되돌아가는 것. 많은 결정은 아름다워지기 전부터 비열했어요.”

그 문장은 방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야엘은 계속했다.

“더럽혀진 채로 남을 줄 안다고 해서 세상이 구원받지는 않아요. 때로는 더럽혀지는 것이 배우지 않기 위한 가장 자기만족적인 방식일 뿐입니다.”

모드라면 그 말을 몹시 싫어했을 것이다.

이리아는 자신도 싫어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때로는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 더는 느끼지 않기 위한 가장 자기만족적인 방식이기도 하죠.” 이리아가 말했다.

“맞아요.”

야엘은 양보라고 보기에는 너무 빨리 받아들였다.

“그래서 당신 같은 사람들이 필요할 겁니다.”

“불편한 양심을 위한 조항 말인가요?”

“문턱이요.”

이리아는 무언가가 닫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당신들의 건축물 안에서 문턱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야엘은 힘들이지 않은 부드러움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도 원하지 않아요.”

그 대답에 이리아는 동요했다.

마레스코가 회의를 다시 이어갔다. 말들은 계속 흘렀다. 시범 단계, 일정, 도 단위 피드백, 교육, 신중한 확대, 겨울철 위기 가능성, 에너지 위험, 농업 갈등, 학교, 병원, 물. 나라는 피로한 모든 지점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야엘은 복도에서 이리아를 기다렸다.

“제게 화가 났군요.”

“네.”

“정확히 무엇 때문에요?”

이리아는 하마터면 ‘떨지 않아서’라고 대답할 뻔했다.

토마 리비에르를 떠올리고 멈췄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을 견딜 만하게 만드니까요.”

야엘은 그 문장을 흡수하지 않은 채 받아들였다.

“그편이 더 정확하군요.”

“적어두라고 한 말은 아닙니다.”

“적고 있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계단까지 함께 걸었다. 유리잔을 얹은 쟁반을 든 안내원이 지나갔다. 건물에는 광낸 나무와 젖은 외투, 뜨거운 프린터 냄새가 났다.

야엘이 말했다.

“당신은 제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이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는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내미는 데 지쳤을 뿐인지도 몰라요.”

지나치게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도 있었다.

야엘은 그 문장을 떠받치지 않았다. 약간 서툰 몸짓으로 머리카락 한 올을 귀 뒤로 넘겼다. 그 몸짓은 그녀를 감탄의 대상으로 삼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리아는 야엘의 거짓이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찾아내지 못했다.

제16장

더는 떨지 않는 여자

목격자 없는 산책


야엘은 걷자고 했다. 단, 마티뇽의 정원은 싫다고 했다. 그곳에선 대화가 스스로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옆문으로 나가 길을 따라 걷다가 강변으로 내려갔다. 날은 추웠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거의 행정 문서 같은 회색을 띠었지만, 센강은 군데군데 주석빛으로 반짝였다.

이리아는 이 산책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갔다.

야엘은 상대를 재촉하는 기색 없이 빠르게 걸었다. 상황이 요구하는 속도인 듯 느끼게 하면서 자신의 리듬을 강요하는 것. 그것도 그녀의 재능 중 하나였다.

몇 분 동안 두 사람은 쓸모없는 이야기만 했다. 막힌 보도, 아무렇게나 세운 트럭, 다리 공사, 놀라울 만큼 정확한 말로 자동차를 욕한 자전거 운전자.

그러다 야엘이 말했다.

“언니가 죽은 뒤에 이 방들을 시작했어요.”

이리아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누군가 그 일을 열쇠처럼 들고 와 당신에게 건네는 즐거움만큼은 누리지 못하게 하고 싶어서요.”

두 사람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건너편에서는 남자 하나가 여행 가방을 끌고 있었다. 바퀴 하나가 삼 미터마다 걸렸다.

“이름은 니나였어요. 교외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죠. 어느 날 학생 하나가 교실에서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처음부터 폭력적인 발작은 아니었어요. 탈진과 공황과, 더는 담을 수 없는 과잉이 터져 나온 거였죠. 모두가 잘해 보려고 했어요. 학교도, 부모도, 행정기관도, 의사도, 교사들도. 어른들은 저마다 자기 쪽의 정당한 이유를 지켰습니다. 두 주 뒤, 그 아이는 죽었어요.”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야엘은 건너지 않았다.

“언니는 아무도 탓하지 않는 메시지를 남겼어요. 그래서 누구를 미워할 수도 없었죠. 이렇게만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따로따로 흠잡힐 데 없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이리아는 손끝으로 냉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 방들에 들어온 겁니까?”

“네.”

“그래서 더 강한 방으로 만들려는 거고요?”

“네.”

두 사람은 다음 신호에 길을 건넜다.

강변에서는 관광객 무리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웃고 있었다. 발밑에 눌러 두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지하철 표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세상을 멈춰 세워야 할 말들이 오가는 동안에도 세상은 언제나 지나치게 멀쩡히 계속된다고 이리아는 생각했다.

야엘이 다시 말했다.

“당신은 나를 더는 떨지 않는 사람으로 보죠. 거의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떨림이 아직도 다른 사람들을 지켜 준다고 믿을 여유가 있어서, 그걸 위험이라 부르는 겁니다.”

“그렇게 믿지 않아요.”

“믿어요. 어느 정도는.”

야엘의 부드러움은 그녀가 하는 말의 폭력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당신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좋아하죠. 갈라지는 목소리, 선을 넘는 몸짓, 탁자를 망가뜨리는 분노. 나도 그래요. 하지만 상처가 도덕적 탐닉이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자기 상처를 눈앞에 간직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구급차가 어느 길로 지나갈지 결정해야 해요.”

이리아는 걸음을 멈췄다.

“내가 그런 걸 옹호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그 반대보다는 그것을 덜 두려워한다고 생각해요.”

다리 아래로 바지선 한 척이 지나갔다. 엔진 소리에 물이 돌벽을 치며 떨렸다.

야엘은 목소리를 낮췄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깊이 마음 아파하는 사람 중에도 결단하지 못해서 남을 죽게 내버려 두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리아는 첫날 아침의 산부인과 병동과 밤의 응급실, 루안을 떠올렸다. 야엘은 한 가지 점에서 옳았다. 그 옳음이 나머지를 지워 주지는 않기에 견딜 수 없었다.

“당신은 가끔 결정을 더는 느끼지 않을 용기와 혼동해요.” 이리아가 말했다.

“아니요. 내가 덜 느낀다는 건 나도 잘 알아요.”

꾸밈없는 대답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야엘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정확히 지키고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함께 죽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덜 느끼는 겁니다. 당신은 그걸 거짓 공백이라고 부르죠. 나는 가끔, 수많은 것 속에서 살아남는 일이라고 불러요.”

그녀는 잠깐 얼굴을 찡그렸다.

“알아요. 끔찍한 표현이죠. 더 말끔한 표현은 찾지 못했어요.”

이리아는 그 표현을 고쳐 주지 않고 받아들였다.

수많은 것 속에서 살아남기.

권력이 야엘의 무엇을 그토록 사랑하는지 이리아는 그 말에서 들었다. 야엘은 집단의 탈진에 고귀한 형태를 부여했다. 모든 일에 상처 입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럼 아직도 당신을 움직이는 건 뭡니까?” 이리아가 물었다.

야엘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내가 옳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이요.”

얼굴


이틀 뒤, 야엘은 어디에나 있었다.

추문 때문이 아니었다. 찬탄 때문이었다.

산책 전에 녹화된 장시간 인터뷰가 일요일 저녁에 방송되었다. 기자는 좀처럼 끼어들지 않을 만큼 영리했다. 야엘은 상급 명료화실과 민주주의의 피로, 사람을 모욕하지 않으면서 반사적인 대응을 풀어낼 수 있는 장소의 필요성에 관해 말했다. 평화를 약속하지 않았다. 지혜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신중하고 정확하며 거의 겸손한 말들을 했다.

바로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튿날, 한 제목이 모든 곳에 떠올랐다.

“국가에 올바르게 떠는 법을 다시 가르치는 여자, 야엘 세르”

이리아는 하마터면 휴대전화를 내던질 뻔했다.

엘렌은 링크와 함께 한마디만 보냈다.

“우린 끝났어. 제목이 좋잖아.”

마레스코는 공개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그 영상을 기회라도 되는 듯 서로 돌려 보았다. 아이디어가 얼굴을 얻기 전까지는 언제나 의심부터 하는 내각들이 이제 얼굴 하나를 손에 넣은 것이다.

야엘은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거의 하지 않았다.

이제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이리아는 오래전부터 두려워하던 무언가가 형성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악한 숭배는 아니었다. 어떤 종류의 침착함이 다른 것보다 더 큰 권한을 부여한다는 말을 기꺼이 믿으려는 집단적 태세였다. 사람들은 야엘이 옳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짜 논쟁에서 빠져나오게 해 준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논의의 차원을 바꾸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그 말투는 복종보다 더 위험했다.

모두에게 자신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기분을 주었으므로.

모드는 전화로 상황을 요약했다.

“세속의 성녀를 찾아냈네.”

“그런 말 하지 마.”

“왜?”

“너무 쉽잖아.”

“알아. 그래서 먹히는 거야.”

이리아는 웃지 않았다.

“야엘은 가짜가 아니야.”

“성인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망가지는 건 그다음이야.”

그날 저녁, 이리아는 혼자 인터뷰를 다시 보았다. 잘못 하나, 자기도취의 기색 하나, 지나치게 고상한 문장 하나라도 찾아내려 했다. 몇 개는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야엘은 짜증이 날 만큼 단단하게 희화화를 견뎠다.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어떤 명료화실도 정치적 갈등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끝에 가서 기자가 물었다.

“지금 무엇이 두렵습니까?”

야엘은 시간을 들여 대답했다.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보다 상처 입은 사람으로 남기를 우리가 택할까 두렵습니다.”

이리아는 정지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그 문장은 버텼다. 거의 거짓이었지만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제안


마레스코는 이리아에게 상급 명료화실의 상임 위원이 되어 달라고 제안했다.

거창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지나치게 더운 회의실에서, 에너지 공급의 연속성에 관한 서류 두 건과 폭염 때 휴교하는 학교들에 관한 보고서 사이에 끼워 넣듯 말했다. 클레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엘렌도 있었다. 야엘은 없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이리아가 말했다.

“조건을 아직 듣지 않으셨습니다.”

“날 설득하려고 쓴 조건이라면 벌써 잘못된 겁니다.”

마레스코는 그녀 앞에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단기 임기. 강화된 중단 권한. 방법론 기록 열람권. 소수 의견 발표권. 법적 지위의 독립성.”

이리아는 종이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주 아름다운 새장을 주시는군요.”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자리를 드리는 겁니다.”

“기계 안에서 기계를 저지하라는 자리군요.”

“그렇습니다.”

그 점에서는 정직했다.

엘렌은 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르는 드러내고 싶었던 것보다 더 불안해 보였다.

“왜 지금입니까?” 이리아가 물었다.

마레스코는 두 손을 모았다.

“다가오는 위기는 지역 명료화실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테니까요.”

“무슨 위기죠?”

“어떤 형태로 터질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징후는 있습니다. 전력, 물, 교통, 농민 운동, 병원, 학교, 여러 결정이 한꺼번에 내려질 경우 사회적 파급이 일어날 위험. 이제 이 나라는 어떤 조정도 한 분야 안에 머물 수 없는 구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명료화실을 갖고 싶은 거군요.”

“그것이 필요해졌을 때, 그 방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싶지 않은 겁니다.”

이리아는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넌?”

클레르는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내 그럴듯한 문장들과 단둘이 남고 싶지 않으니까.”

정치적인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리아가 원한 것보다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엘렌이 입을 열었다.

“거절하면 넌 보호받아.”

“받아들이라는 말이야?”

“아니. 네 거절이 무엇을 보호할지 말하는 거야.”

마레스코는 밀어붙이지 않았다. 서류철을 탁자에 그대로 두었다.

“내일 답하셔도 됩니다.”

“방금 답했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답하시죠.”

이번에는 이리아가 서류철을 들고 나왔다.

그래서 그가 미웠다.

그녀가 원했던 것


집에 돌아온 뒤에도 서류철은 자정까지 닫힌 채였다.

이리아는 커피를 내리고, 창문을 열고, 선반 두 칸을 정리하고,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 세 통에 답한 뒤, 마침내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았다.

서류는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다.

18개월의 임기. 사유를 명시한 사퇴 가능. 상급자의 압력으로부터 보호. 결정문에 소수 의견 첨부. 기록 열람. 다원적 구성. 외부 위원 순환. 중단 절차.

성공한 회의를 자동 적용할 모범으로 제시할 수 없다는 조항까지 있었다.

엘렌이 그 조항을 위해 싸웠을 것이다.

이리아는 끝까지 전부 읽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깨달았다.

그녀의 일부는 대명료화실이 존재하기를 바랐다. 권력을 위해서도, 마레스코나 언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서였다. 인간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어휘에 보호받으며, 자기 상처를 국경처럼 지키면서 조각조각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쌓인 오랜 피로를 위해서였다. 자신이 세상을 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손아귀에서 세상이 갈기갈기 찢기지 않도록, 때로는 한 장소가 세상을 충분히 오래 붙들어 둘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는 불가능한 방을 원했다.

물과 죽은 자들과 일자리와 아이들과 도로와 병원과 분노와 숫자가 당장 서로를 밀어내지 않을 탁자를 원했다.

거의 종교적인 힘으로 그것을 갈망했다.

그 욕망이 그녀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야엘의 메시지였다.

“우리를 감시하려고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이것이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란다면, 그때만 받아들이세요.”

이리아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루안을 생각했다. 토마 리비에르를. 앙드레 르무안을. 아녜스 콜랭을. 빗속의 모드를. 인간들 위로 너무 많은 사람을 떠받치려 했던 낡은 체계들을. 중심은 거부했지만 전달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던 흩어진 몸짓들을.

그리고 빈 의자를 생각했다.

다음 날, 이리아는 마레스코에게 대답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또 있습니까?”

“이건 서류에 없는 겁니다.”

그는 기다렸다.

“대명료화실은 자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레스코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진지한 기관이라면 어디나 전문에 그렇게 씁니다.”

“전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이리아에게는 아직 맞는 말이 없었다.

다만 그 조건이 조항이나 권리, 절차나 부록이 아니라 문 하나에 관한 것이리라는 사실만은 알았다.

방이 자신을 완전하다고 믿을 때에도 열려 있을 수 있어야 하는 문.

제5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기

제17장

대명료화실

임계점의 일주일


위기는 처음부터 이름을 갖지는 않았다.

정부에 정말 쓸모 있는 위기에는 아주 빨리 이름이 붙는다. 그래야 대책반을 꾸리고, 계획을 발표하고, 지도에 색을 칠하고, 바로 전날까지도 저마다 담당 부처와 어휘와 다른 사안을 외면하는 방식이 따로 있었던 사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다.

이번 위기는 사건이 아니라 임계점들에서 시작되었다. 지나치게 많은 화면에 도착한 지나치게 짧은 메시지들. 저마다 경보 색깔과 담당 부서의 어휘를 달고 있었다.

가론강과 루아르강의 저수위 임계점. 다섯 병원 신생아과의 온도 임계점. 두 전력 연계망의 경보 임계점. 냉장 운송망의 붕괴 임계점. 교실 출석률 임계점. 긴급 신고 센터의 피로 임계점.

사흘 동안, 각 임계점은 자기 언어로 말했다.

물은 사용 제한을 요구했다. 전기는 순환 정전을 요구했다. 병원은 냉각기를 요구했다. 농민들은 식물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식물의 존재를 발견하는 짓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학교들은 아이들이 쓰러지기 전에 문을 닫아야 하는지 물었다. 산업계는 예외를 요구했다. 요양원은 선풍기와 일손과 밤을 요구했다.

모든 요구는 자기 방 안에서 옳았다.

나흘째 되는 날, 임계점들은 서로에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물 사용 제한 때문에 일부 병원 장비를 세척할 수 없게 되었다. 단전은 고지대 주거 지역의 가압 펌프를 위협했다. 냉장 유통망을 유지하려면 창고에서 줄이려던 전력이 필요했다. 폭염 때문에 느려진 지역 열차 탓에 직원들이 무더위 쉼터에 갈 수 없었다. 문을 닫은 학교는 교실보다 더 더운 집으로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나라는 무너지고 있지 않았다. 얽혀 들고 있었다.

마레스코는 닷새째 아침 여섯 시 반에 대명료화실을 소집했다.

메시지에는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 메시지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상급 명료화실 확대 회의 — 국가 필수 기능 연속성 조정”

하지만 모두가 알아들었다.

첫 참석자들이 답장을 보내기도 전인 여섯 시 사십삼 분, 총리실은 미리 작성한 보도자료 양식을 메시지에 첨부했다.

빈칸들이 가장 불길했다.

“상급 명료화실의 의견에 따라 정부는 ……하기로 결정한다.”

문장은 벌써 자기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아는 일곱 시 전에 도착했다. 상급 회의실은 달라져 있었다. 이동식 칸막이를 열어 두 번째 방과 연결하고, 화면을 더하고, 화상회의 회선 두 개를 설치하고, 금속 쟁반 위에 물병을 놓아두었다. 블라인드는 반쯤 내려와 있었다. 아침 햇빛이 창백한 띠를 이루며 들어왔다.

큰 탁자 위에는 지도 여섯 장이 놓여 있었다.

물. 전기. 보건. 식량. 교통. 공공질서.

이리아는 즉시 이 구분이 싫었다.

그러다 클레르가 한가운데 제목 없는 일곱 번째 종이를 놓아둔 것을 보았다.

빈 사각형이었다.

클레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렌은 얇은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모드는 천 가방을 들고 왔다. 제롬 켈리앵이 뒤따랐다. 처음보다도 더 마티뇽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귀중했다. 세실 다르세는 협회 사무실에서 화상으로 접속했다. 그녀 뒤로 생수병 더미와 멀티탭들이 보였다. 라시드 메지안은 야간 대피 작업이 끝나면 도착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장례 문제가 올라오면 아녜스 콜랭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합리적인 비겁함으로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다.

야엘은 벌써 와 있었다. 태블릿도 서류철도 없이, 덮인 공책 하나만 앞에 놓고 있었다. 그녀는 이리아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 얼굴 어디에도 산책이나 인터뷰, 수많은 것에 관한 그 문장의 흔적은 없었다.

마레스코가 회의를 시작했다.

“국가 차원의 우선순위 체계를 만드는 데 주어진 시간은 스물네 시간입니다. 완벽한 결정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지역의 결정들이 서로 충돌하다 부서지지 않도록, 충분히 오래 버틸 결정이면 됩니다.”

모드가 중얼거렸다.

“시작부터 좋네.”

마레스코가 들었다.

“압니다.”

그 짧은 인정 덕분에 첫 일 분은 지나치게 말끔해지지 않았다.

클레르가 선택지들을 설명했다. 어느 쪽도 뒤지지 않을 만큼 모두 나빴다.

선택안 A. 의료기관과 요양원, 식수에 절대적인 우선권을 주고 경제 부문의 전력 사용을 대폭 제한한다.

선택안 B. 일주일 뒤 공급망이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식량과 물류의 냉장 유통망을 유지하되, 생명 유지와 무관한 가정 소비를 더 강하게 제한한다.

선택안 C. 국가 목표만 정하고 지역 광역지사들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한다. 단, 지역 간 격차가 극심해질 위험이 있다.

선택안 D. 전국적인 무더위 쉼터 계획을 시행한다. 냉방되는 민간 공간 일부를 징발하고, 사업장들의 운영을 일제히 중단하며, 취약한 사람들의 이동을 최우선으로 보장한다.

모든 선택안에는 나름의 진실이 있었다.

모든 선택안은 자신이 짓밟을 것에 관해 거짓말을 했다.

오전 회의는 여느 대규모 회의와 다르지 않게 시작되었다. 수치, 지도, 정정, 첫 반론들. 제롬은 부차 시설로 분류된 한 양수장이 실제로는 비상 순환망을 통해 요양원 세 곳에 물을 공급한다고 지적했다. 세실은 외출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전화하지 않는다면 무더위 쉼터를 열어 봐야 소용없다고 설명했다. 모드는 건강을 위해 폐쇄할 창고에 출근하지 않는 동안 몇 명이나 임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회의는 굴러갔다. 제법 잘 굴러가기까지 했다.

그러다 파편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열한 시 오십 분, 클레르는 총리실에서 메시지를 받았다.

“14시 전까지 집행 가능한 방침 필요. 짧은 형식. 조정안 확정 시 작전명 제안 가능.”

클레르는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이리아는 그녀의 손안에서 그것을 보았다.

시간이 또 하나의 참석자처럼 방에 들어온 참이었다. 의자도 얼굴도 없으면서 벌써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참석자였다.

받쳐 둔 문들


첫 보고는 알리에주의 한 시청에서 왔다. 보고서가 아니라 난처해진 부지사가 보낸 사진 한 장이었고, 문장 하나가 딸려 있었다.

“지역 대책반에서 이 상황이 무더위 쉼터 지침에 해당하는지 문의함.”

사진 속에서는 의자 하나가 마을회관 문을 열어 둔 채 받치고 있었다. 안에는 노인들과 아이 둘, 러닝셔츠 차림의 남자, 방문 간호사, 생수병을 올려놓은 탁자, 멀티탭들, 사다리 위에 올린 선풍기가 보였다. 밖으로는 더위에 하얗게 달아오른 아스팔트가 보였다.

사진 아래에 시장이 덧붙였다.

“명령을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문이 저절로 닫혀서 의자를 받쳐 놓았습니다.”

클레르는 옆 화면에 사진을 띄웠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무더위 쉼터를 개방한 사례군요.” 한 보좌관이 말했다.

모드가 그를 바라보았다.

“문에 의자를 받쳐 둔 거예요.”

보좌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십 분 뒤, 투르 근처의 한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두 번째 사진이 도착했다. 동네 주민들을 위해 체육관을 열어 둔 모습이었다. 방화문에는 금속 의자를 끼워 놓았다. 손으로 쓴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들어오세요. 부탁할 일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어 세실이 보낸 세 번째 사진이 도착했다. 방문 돌봄 협회의 휴게실을 가족들에게 개방한 모습이었다. 바퀴 하나가 빠진 사무용 의자로 문을 받쳐 놓았다.

네 번째는 브르타뉴의 식품 가공 공장에서 왔다. 발이 묶인 운전기사들에게 탈의실을 개방하고, 뒤집은 상자로 문을 받쳤다.

다섯 번째는 아직 냉방기가 작동하는 작은 시립 도서관에서 왔다. 손잡이 아래에는 어린이용 의자가 끼워져 있었고, 탁자 위에는 컵과 책, 미스트 분사기, 데리러 가야 할 이웃의 주소를 사람들이 적어 놓은 공책이 있었다.

회의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리아는 오래된 덫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사진들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더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무도 방법론을 적용하지 않았다. 어떤 진행자도 그 장소들에 밀려 올라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웠고, 두려웠고, 도움을 청하기가 부끄러웠고, 폐를 끼칠까 겁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의자 하나가 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막았다.

단순한 일이었다. 기관들이 가장 지키지 못하는 것은 흔히 이런 단순한 것들이다.

위기관리 책임자가 먼저 말했다.

“선택안 D가 지역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엘렌은 눈을 감았다.

야엘은 눈을 떴다.

이리아가 말했다.

“아닙니다.”

차분한 한마디였다.

회의를 중단시키기에는 충분히 크지 않았다.

마레스코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설명하시죠.”

“자발적 수용의 신호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있는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책임자가 대답했다. “아직 지침이 없어도 이미 싹트는 행동과 맞물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지침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더 좋죠. 우리가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확산시킨다는 말이 지나치게 깨끗한 손처럼 이리아에게 닿았다.

그녀는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나무 의자, 금속 의자, 망가진 사무용 의자, 뒤집은 상자, 어린이용 의자. 각각의 물건이 조금씩 다른 말을 했다. 어디에는 장비가 부족했다. 어디에서는 즉석에서 궁리했다. 다른 곳에서는 안전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문을 열었다. 도서관 손잡이 아래의 어린이용 의자는 하마터면 웃음이 날 만큼, 견디기 힘든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너무 빨리 확산시키면 소유하게 됩니다.” 이리아가 말했다.

책임자는 한숨을 참았다.

“국가적 위기입니다. 국가가 의자들을 감탄하며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감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레스코가 손을 들었다.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까?”

클레르가 연락망을 확인했다.

“네. 아주 많이요.”

그 뒤 한 시간 동안에도 사진은 계속 도착했다.

의자만 찍힌 것은 아니었다. 한 약국은 유리창에 이렇게 붙여 놓았다.

“들어오기 위해 물건을 사실 필요 없습니다.”

한 학교는 십 분씩 시간을 정해 운동장 수도꼭지를 열어 두었다. 시청 직원 한 명이 그곳을 지키며 부모 없이 온 아이들을 기록했다.

수리점 하나에서는 정비사들이 이웃들이 의료기기를 충전할 수 있도록 비상 배터리를 작업장 한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견습공 하나가 골판지에 콘센트로 둘러싸인 원을 그리고 이렇게 썼다.

“각자 따로 연장선 쓰지 말 것.”

한 철도 관제실에서는 문장 하나를 보내왔다.

“어느 부서가 우선인지 묻기를 그만뒀습니다. 우리가 잘못 판단했을 때 누가 집에 돌아갈 수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한 고등학교는 칠판 사진을 보냈다. 청소년들이 네 개의 칸을 그려 놓았다.

“마시기”, “숨쉬기”, “알리기”, “혼자 남지 않기”.

칠판 아래쪽에는 누군가 이렇게 덧붙였다.

“나머지는 그다음.”

계시도 아니었고, 단순한 연대만도 아니었다. 무언가가 거기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머리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 하나의 답을 내놓지도 않았고, 중앙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하지도 않았으며, 숨겨진 진실을 위로 올려 보내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잠시나마 자기 몫만 지키러 오는 일을 멈추면, 그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버티기 시작했다.

이리아는 회의실이 그것에 끌리는 것을 느꼈다.

회의실은 자신이 보는 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위험했다.

오래된 반사작용


오후 한 시, 총리실에서 임시 요약안을 요구했다.

마레스코는 거절했다.

한 시 십오 분, 그는 짤막한 보고서에는 동의했다.

한 시 이십 분, 여러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미 문장이 쓰이고 있었다.

“오늘 접수된 지역 보고에서는 무더위 쉼터 개방, 비상 전력 공유, 고립된 사람들의 우선 보호를 중심으로 한 자발적 합의가 나타나고 있다.”

행정적인 문장으로는 완벽히 성립했다.

그래서 거의 치명적이었다.

클레르는 화면에 뜬 문장을 바라보았다. 두 손은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달리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가 말했다.

“합의라고 쓰지 마.” 이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합의가 맞잖아.”

“그러니까.”

엘렌이 다가왔다.

“차라리 이렇게 써. 공통된 지침이 없었는데도 여러 장소에서 비슷한 행동들이 나타났다.”

“약해요.”

“맞아.”

“마티뇽은 그걸 선택안 D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해요.”

모드가 이리아보다 먼저 대답했다.

“아무것도 뒷받침하지 않아. 고발하는 거지.”

마레스코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를요?”

“당신. 우리. 모두를. 사람들이 명령을 받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고 해서 당신들 선택안이 옳다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들 선택안이 붙들지 못하는 걸 사람들이 이미 고치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회의실은 그 말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당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침묵하던 야엘은 사진들을 다시 모자이크로 띄워 달라고 했다. 클레르가 사진을 띄웠다. 문들, 의자들, 탁자들, 콘센트들, 수도꼭지들, 학교 칠판들, 이웃의 이름이 적힌 공책들.

야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을 압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진들의 크기가 서 있는 몸 하나를 요구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것을 보기 좋은 지역의 미담으로 취급하는 것. 두 번째는 위임장으로 취급하는 겁니다.”

이리아는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일개 보고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같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 누가 감히 부탁하지 못할지, 누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삼 층의 노부인을 아는지, 누가 문을 붙들 수 있는지, 누가 두 시간 동안 남아 있을 수 있는지를 중앙의 어떤 결정도 제때 알 수는 없습니다.”

야엘은 누르지 않은 채 손끝으로 화면을 건드렸다.

“하지만 우리가 이 행동들을 선택안 D가 옳다는 증거로 삼는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파괴하게 됩니다.”

위기관리 책임자가 반박했다.

“올라오는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정보는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낸 것까지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도 있었다.

야엘은 문장이 그 자리에 눌러앉지 못하게 했다.

“이 장소들은 이미 우리가 대신 생각해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마레스코가 이해했다.

이리아는 그의 얼굴에서 그것을 보았다. 생각 자체가 아니라 그 대가를. 이 장소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다면, 대명료화실은 결단을 내리기 전에 세계 전체를 품는 상위 기관으로 자신을 내세울 수 없었다.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 했다. 뒤늦게 도착한 장소, 강력하고 어쩌면 필요하기까지 하지만 두 번째인 장소.

두 번째.

국가는 많은 것을 견딘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불가결하다고 믿는 순간 두 번째가 되는 일만은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마레스코는 십 분간 쉬자고 했다.

아무도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들은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어린이용 의자는 아주 작은 불손함으로 문을 붙들고 있었다.

제18장

마지막 포획

작전명


휴식은 사 분 만에 끝났다.

총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광역지사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기관들은 명령을 요구했다. 보도 채널들은 벌써 공조의 혼란을 이야기했다. 여러 도시에서 지침도 없이 문을 여는 곳이 있는가 하면, 책임을 질까 두려워 문을 닫아 둔 곳도 있었다. 한 요양원에서 냉각기가 고장 났다고 알렸다. 한 병원에서는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들에게도 줄 생수를 요청했다. 발이 묶인 운전기사들은 엔진을 계속 켜 둘 수 없는 트럭 안에서 자고 있었다. 사진들이 지닌 아름다움에 나라를 내맡길 수는 없었다.

삼 분째 되던 때 몽뤼송에서 경보가 들어왔다. 시장이 요청했는데도 쇼핑몰은 문을 닫았고, 시원한 곳을 찾아온 사람들로 주차장이 가득했다. 경비원 혼자 유리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쓰러졌고, 아이 하나가 천식 발작을 일으켰다.

총리실은 그 메시지를 전달하며 메마른 문장 하나를 붙였다.

“즉각적인 국가 차원의 조정이 필요함.”

마레스코는 보좌관 둘과 함께 돌아왔다.

그들에게는 작전명이 있었다.

“생명을 여는 문”

좋은 이름이었다.

너무 좋았다.

이리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클레르가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어깨가 일 센티미터쯤 내려앉았다.

제안된 조치는 석 장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공공·민간 무더위 쉼터의 징발 가능, 학교와 도서관, 체육관, 쇼핑몰, 행정기관 로비의 일제 개방, 지방자치단체가 동의할 경우 교구 회관까지 개방, 고립된 사람들의 우선 보호, 물 배급, 의료기기 충전, 보호 시설까지의 이동 지원, 간소화된 보상 절차, 국가의 법적 책임 보장.

첫 장 아래쪽에는 벌써 붉은 글씨로 한 줄이 더해져 있었다.

“몽뤼송 / 15시 전 승인 시 우선 시행.”

유용한 조치였다. 꼭 필요한 조치이기까지 했다. 이리아는 좋은 결정이 잘못된 꿈에 싸여 도착할 때만 생겨나는 아주 특별한 분노를 느끼며 그것을 읽었다.

마지막 장에는 이런 문단이 있었다.

“오늘 확인된 지역의 합의는 공동 대피 공간을 바라는 집단적 요구가 존재함을 입증한다. 이 합의는 본 생명 보호 개방 방침의 근거가 된다.”

이리아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안 됩니다.”

문안을 작성한 보좌관의 몸이 굳었다.

“이 조치로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조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뭘 말하는 겁니까?”

“이 문단입니다.”

그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조치의 사회적 정당성을 확립하는 문장입니다.”

“그 정당성의 근원을 훔치는 문장이죠.”

보좌관은 이리아의 말을 행정 언어로 번역해 달라는 듯 마레스코를 바라보았다. 마레스코는 돕지 않았다.

야엘이 물었다.

“그럼 무엇을 제안합니까?”

이리아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적대적인 질문은 아니었다.

적의보다 더 위험한 질문이었다. 거절만 하고 그칠 수 없게 만들었으므로.

“이 행동들이 결정의 근거가 되는 게 아니라고 써야 합니다. 결정에 의무를 지운다고.”

보좌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모호합니다.”

“아니에요.” 클레르가 말했다.

그녀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두 손이 가볍게 떨렸다.

“잠깐.” 마레스코가 말했다.

클레르는 멈췄다.

그는 문단을 다시 읽었다. 오래도록. 앞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게 쓰면 합의가 주는 힘을 잃습니다.” 그가 말했다.

“네.” 이리아가 대답했다.

“국민이 이미 정부의 결정과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논거를 잃는 겁니다.”

“네.”

“국가가 이끌지 않고 지역의 임기응변을 뒤따른다는 비판에 노출될 겁니다.”

“네.”

마레스코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당신은 이기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승리를 아주 좋아하는군요.”

“나는 이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입니다.”

심술궂은 말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거의 애정에 가까운 무언가와,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피로가 배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마레스코는 화면이 탁자를 향하도록 뒤집어 놓았다.

“클레르, 쓰세요.”

클레르는 문단을 지웠다.

몇 초 동안 빈 화면에서 커서만 깜박였다.

그러고는 타자를 쳤다.

“지역에서 나타난 행동들은 국가에 주어진 위임장이 아니다. 그것들은 공적 결정이 이미 조직되기 시작한 세계, 때로는 공적 결정보다 더 잘 조직된 세계에 뒤늦게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따라서 본 조치는 이 개방들을 지원하되 그 기원을 자처하거나 다양성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

보좌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홍보 문안으로는 절대 통과 못 합니다.”

모드가 말했다.

“드디어 좋은 소식이네요.”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


오후가 깊어질수록 파편들은 더 이상 실용적인 내용에 머물지 않았다.

처음에는 물과 문, 콘센트와 더위를 이야기했다. 그러다 여백에서 다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롬주의 한 학교에서는 교실 그림을 보내왔다. 책상들은 벽 쪽으로 밀려 있었고, 아이들은 물에 천을 담가 놓은 대야를 중심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교사는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누가 이미 물을 마셨는지 세는 일을 그만두게 물을 한가운데 두자고 했습니다.”

센생드니의 한 복지관에서는 중재사가 노인 여성의 말을 전했다.

“문이 열려 있으면 내가 덥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없어져요.”

병원 휴게실에서는 간호조무사 한 명이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피로로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십 분 동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고 나니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 알았죠. 전에는 명단을 만들었어요. 침묵이 지나간 뒤에는 이름들이었어요.”

메시지는 한 줄기 바람처럼 회의실을 가로질렀다.

이리아는 다시 틀어 달라고 했다.

메시지가 다시 흘러나왔다.

“침묵이 지나간 뒤에는 이름들이었어요.”

아무도 곧바로 받아 적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그날 오후의 첫 승리였을 것이다.

이어 로트에가론주의 한 시립 정비소에서 메시지가 왔다.

“발전기가 세 대 있었습니다. 부서마다 자기 발전기를 지키려고 했죠. 정비공이 열쇠들을 한가운데 놓은 양푼에 넣었습니다. 그 뒤로는 우리 발전기 이야기를 그만뒀습니다. 내일까지 무엇을 살아 있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양푼 속 열쇠들.

가운데 놓인 대야.

문을 받친 의자.

침묵 뒤의 이름들.

대명료화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숨겨진 명령이 아니라 형태들이었다.

사람들이 잠시나마 자신의 직무를 경계 삼아 따로 서기를 멈출 때 나타나는 단순하고 거의 원초적인 형태들. 비이성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이성으로 하여금 덜 외로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는 형태였다.

이리아는 상징, 상상, 깊이라는 식으로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어휘들을 물리쳤다. 존중한다고 주장하는 대상을 너무 빨리 삼켜 버리는 말들이었다.

그녀는 사소함이 아직 그것들을 지켜 줄 수 있기라도 한 듯, 물건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훨씬 연약했다.

한가운데 놓인 물건들, 받쳐 둔 문들, 내놓은 열쇠들, 명단이 다시 이름들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오래 이어진 침묵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지친 인간들은 무언가를 더는 혼자 소유하지 않기 위해 한가운데 내려놓고 있었다.

위기관리 책임자가 말했다.

“공통된 상징 구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리아는 거의 신음을 흘릴 뻔했다.

엘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또 시작하지 마세요.”

그가 변명했다.

“이 이미지들이 방침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입을 다무는 데 도움이 되겠죠.” 엘렌이 대답했다.

신비주의와는 무관한 말이었다. 당장 이용하려 드는 태도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건조하고, 심지어 행정적이기까지 했다.

마레스코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열아홉 시 전까지 결정을 내야 합니다.”

“네.” 야엘이 말했다.

회의가 재개된 뒤로 거의 말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닿게 두기 전에는 안 됩니다.”

위기관리 책임자는 인내심을 잃었다.

“외람되지만, 우리가 마음에 닿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야엘은 아주 차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일 시간조차 갖지 않은 것을 우리가 결정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뒤따른 침묵은 아름답지 않았다.

쓸모 있는 적의를 품고 있었다.

써먹을 수 있는 얼굴


열일곱 시, 총리실은 야엘에게 텔레비전 연설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요청은 마레스코를 거쳐 클레르에게, 다시 야엘의 휴대전화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제안된 문안은 짧았다.

“‘생명을 여는 문’의 취지 설명. 상급 명료화실이 지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다는 점을 강조해 안심시킬 것. 집단의 성숙성을 강조할 것. ‘징발’이라는 단어는 피할 것.”

곧이어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스튜디오 18시 20분 준비 완료. 불참 시 세르 자료 영상에 대변인 음성 삽입.”

야엘은 표정 없이 읽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이리아에게 내밀었다.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이리아는 메시지를 들여다보았다.

싸움터가 바뀐 참이었다. 야엘이 결정을 떠맡는 한 그 조치는 거의 공격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공공질서가 경청의 얼굴을 얻을 테니까.

야엘은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마레스코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꼭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온전히 사실인 말은 아니었다.

야엘은 희미하게 웃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강요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이리아가 따라갔다.

복도에서 야엘은 안뜰이 내다보이는 창문 곁에 멈췄다. 아래에서는 직원 둘이 벽이 드리운 가느다란 그늘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재킷을 벗고 서류철로 부채질을 했다.

“거절할 겁니까?” 이리아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받아들이면 그들이 원하던 우상을 얻게 됩니다.”

“거절하면 나보다 덜 신중한 사람이 대신 말하겠죠.”

“모든 포획이 내세우는 논리입니다.”

야엘은 안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네.”

그 단순한 한마디에 이리아의 분노가 지쳐 버렸다.

야엘이 다시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내 존재가 회의실로 하여금 너무 빨리 방어하지 않도록 돕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어요. 오늘은 바로 그 존재 때문에 하나의 결정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러니가 보입니까?”

“보여요.”

“아니요. 당신은 심판하고 있어요. 그건 다른 겁니다.”

이리아는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찾지 못했다.

야엘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화면에 나오기를 거절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내 영상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없어도 내 얼굴을 쓰고, 그런 다음에는 내 부재마저 상황의 엄중함을 보여 주는 증거로 삼겠죠.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야엘 세르마저 상징을 더하지 않기 위해 물러서기를 택했다고. 그들은 무엇이든 먹어 치울 줄 알아요.”

“그럼 어떻게 할 겁니까?”

“소화하지 못할 것을 줘야죠.”

두 사람은 회의실로 돌아갔다.

야엘은 총리실과 직접 통화하겠다고 했다.

마레스코는 망설이다가 스피커폰으로 연결했다.

젊고 매우 빠른 목소리가 언론 대응의 긴급성과 핵심 문구, 침착함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야엘은 끝까지 들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첫 문장을 이렇게 한다면 출연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발표하는 조치는 대명료화실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뭐라고요?”

“두 번째 문장. 평범한 장소들이 우리보다 먼저 시작했습니다.”

“세르 여사님, 취지는 국가가 상황을 조율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세 번째 문장. 국가는 자신이 이제 막 지원하려는 것의 기원인 양 나서서는 안 됩니다.”

목소리는 속도를 잃었다.

“방송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럼 출연하지 않겠습니다.”

마레스코는 탁자를 보고 있었다.

이리아는 그가 탁자를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총리실은 잠시 논의를 중단해 달라고 했다.

전화가 끊겼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야엘은 휴대전화를 자기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떨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리아도 그것이 그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았다.

더는 중심이 없는 결정


열아홉 시 십 분, 대명료화실은 세 개의 문서를 내놓았다.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첫 번째는 실행 결정문이었다. 무더위 쉼터 즉시 개방, 지역 책임자들의 법적 보호, 냉방 공간의 징발 가능, 고립된 사람들의 우선 보호, 물과 에너지 수요 지도화, 지역 교통편 마련, 공동 비상 발전기 운용, 일부 사업장의 선별 폐쇄.

두 번째는 한계 보고서였다. 이 결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이 결정이 망가뜨릴 위험이 있는 것, 앞으로 며칠 동안 정치적 논쟁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들을 적었다.

세 번째는 결정문도 보고서도 아니었다.

클레르는 제목 붙이기를 거부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늘 평범한 장소들에서 나타난 행동들은 대명료화실의 판단이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것들은 집단의 삶이 제도 밖에서도 생각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소박한 형태와 이미지와 침묵, 어떤 중앙도 자신의 지성과 혼동해서는 안 되는 가까운 곳의 결정들을 통해서도 생각한다. 대명료화실은 이 행동들을 지원한다. 그것들을 낳은 것은 대명료화실이 아니다.”

총리실은 세 번째 문서를 삭제하려 했다.

마레스코는 거절했다.

총리실은 그 문서를 부록으로 바꾸려 했다.

마레스코는 거절했다.

총리실은 적어도 제도 밖의 지성에 관한 문장만은 빼자고 했다.

마레스코는 위기 한복판에서 결정의 타당성을 보증하라며 자신들이 직접 소집한 상급 명료화실을 검열하는 문제로 정말 문서상의 논쟁을 벌이고 싶은지 물었다.

비열하고 효과적인 수였다.

스무 시, 야엘이 화면에 나오지 않은 채 결정이 발표되었다.

대변인은 눈에 띄게 뻣뻣한 태도로 문안을 읽었다. 보도 채널들은 즉시 세 문서가 지닌 기묘함을 논평했다. 야당들은 약점을 자인했다고 외쳤다. 일부 논설위원은 권위의 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절반쯤만 이해한 민주적 성숙을 찬양했다. 소셜 네트워크에 남은 것은 문을 받친 의자였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의자 사진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나무 의자, 접이식 의자, 작은 의자, 사무용 의자, 벤치, 상자, 돌, 손잡이 아래 끼운 빗자루.

나라는 이미지 앞에서 늘 하던 일을 했다. 이미지를 더럽히고, 따라 하고, 단순화하고, 농담과 깃발과 비난으로, 거의 상품으로 바꾸었다.

그런데도 문들은 열린 채로 남았다.

그날 밤, 사람들은 차마 부탁하지 못했을 장소들로 들어갔다. 이웃들에게 전화가 걸렸다. 열쇠들이 손에서 손으로 오갔다. 탁자 한가운데 배터리들이 놓였다. 시청 직원들은 의자에서 잠을 잤다. 청소년들은 전날까지 알지 못했던 노인들을 위해 물병을 채웠다.

그 결정이 모두를 구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죽었다. 예상보다 적었다고 훗날 보고서에는 적힐 것이다. 너무 많았다고 가족들은 말할 것이다.

두 문장은 모두 진실로 남을 터였다.

제19장

그녀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

그 이미지들 다음 날


다음 날 아침, 대회의실은 전날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었다.

몇몇 참석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위기대응 책임자는 보보로 돌아갔다. 보좌관 둘은 현장에서 밤을 보냈다. 클레르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엘렌은 종이에 손으로 무언가를 쓰고는 곧장 찢어버렸다. 모드는 지나치게 기름진 페이스트리와 사람을 감싸려는 심술을 함께 들고 나타났다. 제롬은 안락의자에서 자고 있었다.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한 손에는 아직 전화 케이블이 들려 있었다.

마레스코는 창가에 서 있었다.

그는 잠들지 못했다.

커피를 달라고 하지 않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야엘은 여덟 시 이십 분에 들어왔다. 전날과 같은 옷차림이었다. 얼굴에서 무언가가 사라져 있었다. 자제력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쓰이던 그 얼굴의 기능이. 이리아는 그것을 알아보았지만, 아직 그것이 승리인지 상실인지, 그저 피로일 뿐인지 알 수 없었다.

상황 보고가 속속 들어왔다.

문을 연 장소들. 사고들. 긴장들. 체육관에서 벌어진 싸움. 징발 명령에도 문을 열지 않은 쇼핑센터 두 곳. 민간 시설의 문을 강제로 열어 칭송받은 시장. 4층 아파트에서 너무 늦게 발견된 노인 여성. 뒤늦게 공동 운용에 들어간 발전기들. 이웃들을 데리러 나간 젊은이들. 급수 거점이 된 약국들. 세 번째 문안 때문에 보도자료를 쓸 때마다 일이 더 복잡해졌다며 격분한 한 도지사.

몽뤼송, 15시 17분. 문 개방. 경비원을 시 공무원 두 명으로 교체. 주차장 26분 만에 대피 완료. 천식이 있는 아이를 도심의 냉방되는 약국으로 이송. 짤막한 한 줄이었다. 승리는 아니었다. 이리아가 거부한 그 문단이 단지 하나의 생각만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나라는 살아 있었다.

그러므로 배은망덕하고 모순적이고 용감하고 부당했으며, 군데군데 우스웠고 어디서나 사람을 지치게 했다.

마레스코가 물었다.

“우리는 재앙을 막았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질문을 고쳤다.

“우리는 충분히 명료한 결정을 만들어냈습니까?”

엘렌이 말했다.

“아니요.”

모두가 그 한마디에 놀랐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만든 건 쓸 수 있는 결정과 한계에 관한 문서, 그리고 아무도 분류할 줄 모르는 문안이에요. 충분히 명료하지 않죠. 어쩌면 그편이 나을지도 모르고요.”

클레르가 덧붙였다.

“각 도청에서 세 문서 중 어느 것이 효력을 갖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답합니까?” 마레스코가 물었다.

이리아는 종이와 화면, 아직 펼쳐진 지도들을 바라보았다. 세 문안은 서로 잘 맞물리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로 합쳐서는 안 되었다.

“셋 다요.”

급히 불려 온 법무 책임자가 하마터면 숨이 막힐 뻔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느 것도 아니고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합니다.”

모드가 크루아상 하나를 집었다.

“거봐요, 진전하고 있잖아요.”

법무 책임자는 훈련된 절도로 모드를 무시했다.

토론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추하고 정밀하고 꼭 필요한 토론이었다. 법적 대항력, 규범의 위계, 형사책임, 서로 모순되는 지시, 불복 절차, 총리의 권한, 의회의 위치, 도지사의 역할, 정부 대신 통치하지 않으면서 상위 회의체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두고 말이 오갔다.

마침내 마레스코는 결정처럼 보이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대회의실은 종결 의견을 내지 않겠습니다.”

클레르가 눈을 들었다.

“뭐라고요?”

“세 문안과 상황 보고, 이견들, 그리고 명시적인 정치적 선택에 속하는 사안들의 목록을 전달하겠습니다.”

법무 책임자가 말했다.

“총리는 명료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책임을 받게 될 겁니다.”

그 문장은 기막히게 불쾌한 침묵을 내려앉혔다.

마레스코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국가가 결정하도록 돕기 위해 소집됐습니다. 국가가 결정을 피하게 해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리아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 대가가 보였다.

이번에 그가 포기한 것은 홍보 문구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기획을 떠받쳐온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제대로 설계된 기관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한 결정을 내릴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자신이 나라를 구해내고자 했던 혼란의 일부를 그는 정치에 돌려주고 있었다.

실패도 승리도 아니었다. 잘못된 문들을 닫기 위해 세운 제도 안에서, 한 남자가 문 하나를 열어두고 있었다.

야엘의 거절


정오가 되자 총리실은 마지막으로 야엘의 말을 얻어내려 했다.

텔레비전 뉴스에 내보낼 말이 아니었다. 서면 성명을 원했다.

“몇 줄이면 충분합니다. 당신의 말이라면 세 문안이 대회의실에 대한 불신임으로 읽히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야엘은 이리아 앞에서 메시지를 읽었다.

“그들 말이 맞아요.”

“네.”

“내가 말하면 그렇게 읽히는 걸 막을 수 있겠죠.”

“네.”

야엘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말하면 안 되겠네요.”

두 사람은 옆에 딸린 작은 방에 있었다. 오래된 서류와 미지근한 물병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카펫에서는 열기 먹은 먼지 냄새가 났다. 반쯤 열린 문 너머로 클레르가 송부 문서의 수정안을 불러주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아가 말했다.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도 있잖아요.”

“안 돼요.”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왜요?”

“내가 말하는 ‘다른 방식’마저 하나의 스타일이 됐으니까요. 거절조차 우아하게 들릴 거예요. 신중하게 말하기만 해도 사람들을 안심시키겠죠.”

야엘은 차분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그 차분함은 표면 같지 않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로 받아들인 피로에 가까웠다.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야엘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가장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것. 빈자리에 자기 얼굴의 완벽한 형태를 부여하지 않는 것.

“사람들이 당신을 탓할 겁니다.”

“네.”

“당신을 우러러보던 사람들도요.”

“그들이야말로 그러겠죠.”

야엘은 손가락으로 서류 더미를 건드렸다.

“무엇이 두려운지 알아요?”

“뭔데요?”

“안도감.”

“당신의 안도감이요?”

“그들의 안도감이에요. 내가 방에 들어서면 많은 사람이,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안도해요. 누군가 비극에서 깨끗한 몫을 떠맡아줄 거라 믿는 거죠. 이해해요. 나도 그걸 원했으니까. 누군가 들어와서 고통을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주는 것.”

야엘은 이리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은 순식간에 관리할 수 있는 것이 돼요.”

이리아는 토마 리비에르를, 환대를, 벽 없는 집들을 떠올렸다.

“상위 회의체를 떠날 건가요?”

“오늘은 아니에요.”

“나중에는요?”

“어쩌면.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남을 수도 있고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 무지는 지금까지의 어떤 확신보다 야엘에게 잘 어울렸다.

나가기 전, 야엘이 덧붙였다.

“당신은 나를 잘못 봤어요.”

이리아는 그 말을 받아냈다.

“알아요.”

“전부는 아니지만.”

야엘은 문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직 할 일이 조금 남아 있는 거겠죠.”

꼭대기 없는 보고서


총리에게 전달된 보고서는 스물일곱 쪽이었다.

클레르는 그것을 아름다운 글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견뎠다. 엘렌은 지나치게 절묘한 표현 세 개를 덜어냈다. 이리아는 대회의실에 국가적 양심의 역할을 부여하는 문장 두 개를 그었다. 모드는 시민 동원이라는 표현 하나를 너무 더워서 문을 연 사람들로 바꾸자고 했다. 정확히 그렇게 쓰지는 않았다. 그들을 얕보아서가 아니라, 도지사도 책상을 물어뜯지 않고 읽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회의실은 자신이 전달받은 것을 빈약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하나의 답으로 결론 내릴 수 없다.

세 가지 행동 방침을 서로 혼동하지 않으면서 함께 유지해야 한다.

당장 생명을 보호할 것.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개방과 공동 운용을 소유하려 들지 않으면서 지원할 것. 집단의 자명한 합의처럼 위장해서는 안 될 분배상의 선택들을 정부와 의회로 돌려보낼 것.

요약문의 마지막 문장은 클레르가 제안했다.

그녀는 거의 부끄러워하며 소리 내어 읽었다.

“우리가 얻은 명료함은 해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법만을 결백한 것처럼 내세우는 일이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관한 것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모드가 말했다.

“조금 길어요.”

클레르는 눈을 내리깔았다.

“네.”

“그래도 숨은 쉬네요.”

클레르는 그 문장을 남겼다.

정부는 보고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용했다.

쓸모 있는 글은 흔히 그런 식으로 살아남는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심기를, 좋아할 수 없을 만큼만 거스르고 감히 버릴 만큼은 거스르지 않으면서.

저녁에 마레스코는 아직 남아 있는 구성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메모 없이 말했다.

“대회의실은 위기가 끝나는 대로 활동을 정지합니다.”

클레르는 눈을 감았다.

엘렌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리아는 그 말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몸으로 느꼈다.

“정지한다고요?” 법무 책임자가 물었다.

“네. 지위를 다시 정립할 때까지.”

“실패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그렇겠죠.”

마레스코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어쩌면 조금은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지도와 화면, 빈 물병, 문을 찍은 사진, 수첩, 케이블, 서류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리아가 그에게서 들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우리는 국가가 혼자 결정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어제 우리는 세상이 이미 우리 없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 보았습니다. 그것을 대회의실의 승리로 바꾼다면, 우리가 발견한 것에 관해 거짓말을 하는 셈입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적보다도 세심하게 자기 도구를 부수고 있었다.

양립할 수 없는 세 가지 답


위기는 그 뒤로도 여드레 더 이어졌다.

세 문안은 정확히 그것들이 만들어내야 했던 것과 두려워해야 했던 것을 만들어냈다.

생명을 구했고 혼란을 낳았다.

도지사들에게 버팀목과 난점을 함께 주었다. 시장들이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 수 있게 했다. 일부 경제계 책임자들에게는 협력할 이유를 주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책임을 떠넘길 말도 주었다. 격렬한 의회 토론과 소송, 기고문, 모호함으로 통치한다는 비난, 지역의 지혜를 열렬히 옹호하는 목소리, 의자 공화국을 둘러싼 농담이 쏟아졌다.

어느 저녁 방송에서 전직 장관 한 명이 선언했다.

“열린 문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모드가 이리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하지만 닫힌 문으로는 제법 잘 질식시킬 수 있지.”

이리아는 그 메시지를 간직했다.

의회에서 총리는 대회의실이 논쟁의 여지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기를 거부한 선택들을 공개적으로 떠맡아야 했다. 어떤 활동부터 중단할 것인지, 어느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것인지, 어떤 용도를 유지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손실을 받아들일 것인지, 어떤 보건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토론은 추악했다.

때로는 품위마저 없었고,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었다.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온 메시지를 읽었다. 어떤 이들은 읽는 척만 했다. 한 장관은 인내심을 잃었다. 농촌 지역의 한 여성 의원은 아이들이 의자 두 줄 사이에서 잠들었던 개방 시설에 관해 말했다. 대도시 출신 의원은 왜 쇼핑센터들이 시민단체보다 먼저 보상받았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의원은 문들의 이미지를 국가의 상징으로 만들려 했다. 그 시도는 실패했다. 방청석에 있던 한 여성이 외쳤기 때문이다.

“그건 당신들 것이 아니야!”

여성은 쫓겨났다.

그 장면은 전국에 퍼졌다.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다. 또 지지했다. 그의 말을 포스터에 찍었다. 물론 그 문장에서도 얼마간의 뜻을 빼내버렸다. 그래도 무언가가 버텼다.

그건 당신들 것이 아니야.

이리아는 그것이 옳은 말인지는 몰랐다. 필요하다는 것만은 알았다.

대회의실은 위기가 끝날 때까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지역의 방들은 계속 운영되었다. 아주 잘되는 곳도 있었다. 형편없는 곳도 있었다. 어떤 방들은 스스로를 역사의 현장이라 여기느라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완전히 놓쳤다. 이름조차 없는 다른 장소들이 더 잘 버텼다. 사람들은 그릇된 이유로 문을 열고도 누군가를 구했다. 어떤 이들은 초과근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집단적 현존을 입에 올렸다.

하나의 순수함에서 풀려난 세계는 다시 사랑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좋은 징조였다.

제20장

명료한 방들

정지 조치 이후


대회의실의 활동 정지는 평가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 단어가 모두를 보호했다.

마레스코는 자리를 지켰지만, 그의 기획은 더 이상 전과 같은 탄력을 받으며 나아가지 못했다. 조사단 하나와 지원단 두 곳, 경험 평가 위원회 하나, 예상보다 작은 원칙 위원회 하나가 생겨났다. 상위 회의체는 폐지되지 않았다. 제도는 좀처럼 말끔한 끝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바람이 빠지고, 자리를 옮기고, 덜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야엘은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이미지에 한 번 쓸모가 있었던 사람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형 인터뷰를 거절하고 강연 두 건을 취소했으며, 대신 명료한 방들의 한계를 다룬 짤막한 문서를 보냈다. 어떤 이들은 귀족적인 후퇴라 비난했고, 다른 이들은 비겁하다고 했다. 몇몇은 어쩌면 이해했을 것이다.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엘렌은 사흘 휴가를 다녀왔다. 햇볕에 그을린 흔적이 너무 희미해서 소문처럼 보였다.

클레르는 위기 동안 문을 열었던 장소들의 사후 관리를 임시로 맡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보상 처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이리아는 클레르가 무엇보다, 모든 문장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방에서 얼마간 지내고 싶은 것이라고 짐작했다.

모드는 항구로 돌아갔다.

제롬은 자기 케이블들 곁으로.

세실은 순회 업무로.

토마 리비에르는 아무도 분류하지 못한 글을 썼다. 제목은 그저 이랬다.

“환대는 상시 대기가 아니다”

사라는 새 표찰이 붙지 않은 상자에 그것을 넣어 지하 기록보관소에 보관했다.

“저들이 너무 빨리 어디에 써먹을지 알아내지 못하게 하려고요.”

이리아는 계속 일했다.

하지만 그 일의 무게는 달라져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방이 명료한지, 지나치게 명료한지, 거짓으로 명료한지, 위험할 만큼 고요한지만 묻지 않았다. 그 방이 아예 열려야 하는지를 물었다. ‘방’이라는 이름 자체가 여전히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 이름 없이 이미 하고 있던 일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는지를 물었다.

어느 아침, 이리아는 욘의 작은 코뮌에서 초청장을 받았다.

제목은 이랬다.

“지역 회의 - 학교 / 보건소 / 공동 공간 갈등”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명료한 방을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빨리 조직되지 않도록 막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리아는 그것을 인쇄했다.

그리고 웃었다. 아주 조금, 하지만 충분히.

이름 없는 방


코뮌의 이름은 빌루아쉬르스랭이었다.

이름과 달리 시청에서는 강이 보이지 않았다. 길 하나, 일주일에 이틀 문을 닫는 빵집 하나, 약국 하나, 택배 수령점 노릇도 하는 카페 하나, 그리고 도 전체의 기후 적응 계획보다 더 많은 그늘을 아직 품고 있는 플라타너스 세 그루가 선 광장 하나뿐이었다.

회의는 옛 급식실에서 열렸다.

시장이 지나치게 엄숙하고 덥다고 여긴 의회실이 아니었다. 옛 급식실에는 노란 벽과 접이식 탁자, 세제와 오래된 우유 냄새, 한쪽 구석에 쌓인 의자들이 있었다. 문은 안뜰로 이어졌다. 닫을 때마다 삐걱거려서 누군가 의자 하나로 괴어놓았다.

이리아는 사람들보다 먼저 그 의자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탁자 주위에는 시장과 교사 두 명, 은퇴를 앞둔 의사 한 명, 간호사 한 명, 학부모 세 명, 축구클럽 책임자, 시설관리 직원, 길 건너편에 산다는 이유로 초대도 없이 찾아온 노인 여성,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코뮌 웹사이트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는 일을 맡았지만 무엇보다 수업 한 시간을 빠지는 것이 즐거워 보이는 십 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갈등은 평범했다.

보건소는 옛 급식실을 일주일에 이틀 오전씩 출장 진료에 쓰고 싶어 했다. 학교는 그곳에서 계속 실습 수업을 하고 싶어 했다. 축구클럽은 서면 허가도 없이 여러 해째 장비를 보관하고 있었다. 시청은 여름이면 그곳을 무더위 쉼터로 바꾸고 싶어 했다. 간호사는 아이들이 있으면 노인들이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이미 너무 많은 공간을 빼앗겼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예산 이야기를 피하려고 언제나 노인과 아이들부터 내세운다고 했다. 시설관리 직원은 어차피 전기 설비가 세 가지 용도를 더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역사적인 것도, 국가적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세계는 바로 그런 작은 다툼들에 기대어 있다.

시장이 회의를 시작했다.

“다노 씨,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리아는 의자가 붙들고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아니요.”

시장의 얼굴이 조금 무너졌다.

“뭐라고요?”

“제가 없었다면 하셨을 방식으로 시작하세요.”

교사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럼 시작부터 엉망이겠네요.”

“아마도요.”

회의는 엉망으로 시작되었다.

의사가 너무 오래 말했다. 한 어머니가 말을 끊었다. 시장은 의사일정을 되찾으려 했다. 시설관리 직원은 의사일정이 콘센트의 전기 용량을 늘려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십 대 중 한 명은 창문을 열려고 촬영을 멈췄다. 노인 여성은 왜 아무도 수요일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수요일에는 손자를 봐야 하지만 자신도 의사를 만나야 했다.

모두가 그에게 대답하려 했다.

이리아가 손을 들었다.

가로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붙들어두려는 몸짓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급식실다운 침묵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침묵은 아니었다. 냉장고가 윙윙거리고, 의자가 바닥을 긁고, 한 아이가 코로 너무 거칠게 숨을 쉬고, 포스터 한 장이 유리창에 부딪치며 펄럭였다.

노인 여성은 탁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의사와 아이들 중 하나를 고르고 싶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두 삶을 따로 꾸릴 만큼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아서 같은 방을 쓰는 거예요.”

아무도 받아 적지 않았다.

시설관리 직원이 열쇠를 탁자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그럼 콘센트부터 시작합시다. 전부 꽂으면 차단기가 내려가요. 그러면 의사도 없고, 실습도 없고, 무더위 쉼터도 없습니다. 용도들이 서로 별개인 척하는 건 이제 그만하죠.”

십 대 중 한 명이 종이 한 장을 가져다가 방을 그렸다.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아주 쓸모 있게 그렸다. 사각형과 화살표, 콘센트, 문, 안뜰, 축구용품 벽장, 냉장고, 노인들이 통로를 막지 않으면서 앉고 싶어 할 탁자를 표시했다.

아무도 당장 사진부터 찍으라고 하지 않았다. 종이는 한가운데 남아 손가락과 실수, 비뚤게 더해지는 것들을 받아들였다.

의사가 다시 말을 시작하려 했다.

간호사가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잠깐만요.”

그는 기다렸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시작이었다.

회의가 순식간에 현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영토를 조금씩 내주며 나아갔다. 축구클럽은 안뜰에 창고를 마련받는 대신 안쪽 벽장을 비웠다. 학교는 오전 실습 수업을 지켰지만, 탁자를 더 이상 교실처럼 배치하지 않기로 했다. 의사는 세 번이 아니라 두 번의 진료 시간을 얻었다. 시청은 여름이 오기 전에 전기 설비를 손보겠다고 약속했고, 시설관리 직원은 약속이라는 말을 미소가 아니라 날짜와 함께 적으라고 요구했다.

어느 순간, 십 대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럼 이게 명료한 방인 거예요?”

모두 이리아를 돌아보았다.

이리아는 높은 곳의 방들과 지도, 루안, 열린 문들, 낡은 공책들, 곳곳에 흩어진 몸짓들, 자기들의 두려움보다 더 큰 지성 속에 세계를 떠받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활동이 정지된 대회의실, 화면을 거부하던 야엘의 얼굴, 자기 도구에서 꼭대기가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인 마레스코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문을 붙들고 있는 의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십 대는 실망한 눈치였다.

“그럼 뭔데요?”

노인 여성이 이리아보다 먼저 대답했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회의지.”

아무도 곧바로 웃지 않았다.

이윽고 시장이 웃었다. 교사도 웃었다. 의사마저 웃었다. 결론을 맺는 웃음은 아니었다. 방이 공기를 조금 돌려주는 소리에 가까웠다.

이리아는 그럴듯한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열린 채 남는 것


돌아오는 길에 이리아는 상스역에서 멈췄다.

기차는 27분 연착이었다. 확성기에서는 ‘사고’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람이 써준 것 같은 사과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강장의 여행객들은 아무도 먼저 화내고 싶어 하지 않을 때 연착이 만들어내는 그 똑같은 자세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리아는 벤치에 앉았다.

야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빌루아에 관한 문서를 읽었어요. 이름은 바깥에 두었더군요.”

이리아가 답했다.

“네.”

야엘의 답장.

“어쩌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네요.”

이리아는 웃었다.

“조심해요.”

일 분 뒤 야엘에게서 답이 왔다.

“알아요. 제안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이리아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있었다.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마레스코였다.

“정지 조치가 연장될 겁니다. 총리는 더 가벼운 구조를 원해요. 구조라는 말부터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리아가 썼다.

“뭐라고 답하던가요?”

“내가 질 나쁜 사람들과 어울릴 때가 제일 싫다더군요.”

이번에는 승강장에서 혼자 소리 내어 웃었다.

기차는 육중하고 지친 느림으로 역에 들어왔다. 이리아는 올라타 창가 자리를 찾았다. 창에 비친 얼굴은 7번 방의 첫날 아침보다 덜 굳어 보였다. 아니면 옳았던 탓에 그저 더 지쳐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리아는 가방에서 빌루아의 십 대가 그린 종이를 꺼냈다. 방은 종이 안에 제대로 들어맞지 못하고 기울어져 있었다. 어린아이의 그림 같았다. 콘센트들이 너무 컸다. 문도 그랬다. 문을 열어두고 있는 의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공들여 그려져 있었다. 가방 안에서 한쪽 귀퉁이가 접힌 탓에 도면은 덜 공식적으로 보였고, 그래서 실제와 더 닮아 있었다.

그 아래 누군가가 이렇게 적어두었다.

“누가 오는지 알기 전에는 치우지 말 것.”

이리아는 누가 그 문장을 덧붙였는지 몰랐다.

영영 모르기를 바랐다.

명료한 방들


몇 달 뒤에도 명료한 방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덜 높은 곳에서.

덜 반듯한 모습으로.

어떤 방들은 사라졌다. 다른 방들은 지역의 실천과 짧은 교육, 말을 끊는 규칙, 의자와 문과 침묵을 다루는 습관, 범주에 앞서 이름을 적는 습관으로 변했다. 물론 악용도 있었다. 컨설턴트들은 ‘복잡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주의력’에 관한 세미나를 팔았다. 한 컨설팅 회사는 ‘명료한 문’을 상표로 등록하려 했다. 사라는 그 기사를 “세계가 지쳤다는 증거”라는 이름의 서류철에 보관했다.

하지만 무언가는 빠져나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디서나 그런 것은 아니었고, 결코 충분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제 몇몇 장소에서는 문을 다시 닫기 전, 새롭게 망설이는 순간이 생겨났다.

이리아는 아름다운 방과 지나치게 차분한 사람들, 자기 겸손을 통해 무엇을 얻어낼지 이미 알고 있는 장치들을 계속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함께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올바름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끝내 낫지 않은 열망을 품고 몇몇 방에 계속 들어갔다.

그 열망을 더는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다만 왕좌를 세울 권력만은 주지 않았다.

어느 저녁, 이리아는 다시 7번 방 앞을 지나갔다.

첫 번째 방. 이제는 정확히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리아에게는 첫 번째였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는 의자들이 한쪽 벽에 쌓여 있었다. 코르크판에는 오래된 압정 자국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탁자는 옮겨져 있었다. 다음 날 그곳에서는 소규모 산부인과의 업무 연속성 계획에 관한 교육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리아는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거의 어두웠다.

불을 켜지 않았다.

어스름 속에서 방은 덜 명료해 보였고, 그편이 더 잘 어울렸다. 7번 방의 아침이 조각조각 돌아왔다. 항구, 법원, 산부인과, 너무 오래 손에 쥐고 있던 메모. 이어 다른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무더위 속에서 열린 문들, 대야에 담긴 열쇠들, 침묵 뒤에 불린 이름들.

명료함은 더 강한 빛이었던 적이 없었다.

자기가 본 것 앞에 혼자 서 있지 않는 방식이었다.

등 뒤 복도에서 누군가 물었다.

“뭘 찾으세요?”

이리아는 돌아섰다.

청소 직원 한 명이 카트를 밀고 있었다. 피곤해 보였고 어서 일을 끝내고 싶어 했지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아니요.”

그러고는 쌓인 의자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맞아요. 내일 쓰지 않는 의자가 하나 있을까요?”

남자는 잠시 이리아를 살폈다.

“여기서 쓰이지 않는 의자요? 찾다 보면 나오겠죠.”

그는 더미에서 하나를 꺼냈다. 밝은 나무로 된 의자였다. 좌판에는 흠집이 났고, 다리 하나가 다른 다리들보다 조금 짧았다.

“이건 절뚝거려요.”

“아주 좋겠네요.”

이리아는 의자를 문까지 들고 가 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비스듬히 괴었다.

청소 직원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 하려고요?”

이리아는 의자를 바라보았다.

설명할 수도 있었다. 방들, 빈 의자, 문, 열린 장소들, 중심들이 저지른 오랜 오류,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현존. 하나의 문장으로 그 모든 것을 붙들 수도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숨을 쉬게 하려고요.”

남자는 그 정도면 받아들일 만한 이유라는 듯, 아니면 이 건물에서 그보다 더 이상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카트를 밀고 갔다.

이리아는 잠시 더 그곳에 머물렀다.

의자는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

문이 다시 닫히는 것을 막고 있었다.

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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